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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루장 Nov 29. 2024

오늘 저녁, 나는 누구와 먹을 것인가?

연말이 되면 어김없이 다이어리를 사고, 새해 계획을 세운다. 운동을 더 해야지, 책을 더 읽어야지, 술자리를 줄여야지. 하지만 매년 같은 결심을 반복하면서도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그렇게 다짐만으로는 인간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걸 깨닫게 된다.


오마에 겐이치는 인간을 바꾸는 방법은 세 가지뿐이라고 했다. 시간을 달리 쓰는 것, 사는 곳을 바꾸는 것, 그리고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것. 하지만 나처럼 살 날이 산 날보다 적게 남은 사람에게 사는 곳을 옮기거나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결국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다. 시간을 다르게 쓰는 것.


그렇다면 시간을 다르게 쓴다는 건 무엇을 의미할까?


서른 즈음의 일이다. 만일 내가 마쓰시타 고노스케처럼 산다면 앞으로 몇 번 저녁을 하게 될까, 계산해 보았더니 1만 8000번이라는 답이 나왔다. 1만 8000번이라 할지라도 결국은 유한하다는 것을 알고부터 저녁을 대충 하지 않게 되었다. 다음 저녁은 누구와 어디에서 먹을지 항상 신중하게 계획한다.  

—『난문쾌답』, 오마에 겐이치


생각해 보았다. 앞으로 먹을 저녁이 얼마나 될까? 아마도 절반 정도는 거동이 불편하거나 혼자 먹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머지 저녁은 누구와 함께할 것인가?


남은 저녁을 누구와 먹을지는 단순히 배를 채우는 문제를 넘어선다. 그것은 곧 누구와 시간을 나누고, 누구와 관계를 맺고 싶은지를 결정하는 행위다. 억지로 끌려간 술자리나 의미 없는 만남에 남은 저녁을 허비하고 싶지 않다. 진심으로 마음을 나누고 싶은 사람에게만 내 저녁을 내어주고 싶다.


좋은 저녁은 깊은 관계를 만들어준다. 오랜 친구와의 저녁,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가족과의 저녁, 나를 성장시키는 멘토와의 저녁은 단순한 식사를 넘어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어 준다. 반대로, 서로의 시간을 갉아먹는 관계나 피곤함만 남기는 자리라면 과감히 거절하는 것이 옳다.


그렇다고 모든 저녁을 누군가와 보내야 하는 것도 아니다. 혼자만의 저녁도 충분히 의미 있다. 책을 읽거나,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나만을 위한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내가 남은 저녁을 누구와 어떻게 채울지, 그 무게를 고민하는 태도다.


남은 저녁은 유한하다. 그 소중한 시간을 아무렇게나 흘려보내고 싶지 않다. 저녁을 함께한다는 것은 그 사람과 내 삶의 일부를 나누는 것이다. 그러니 매일 저녁마다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오늘 저녁, 나는 누구와 먹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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