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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지나간다. 지금 이 순간이 봄이다.

by 비루장

봄은 그 기운을 잃은 지 오래다.

봄인가 싶으면 어느새 반팔이 정겨운 여름이다.

햇살은 따뜻한데, 마음은 여전히 겨울 언저리에 머문다.


그러니 지금은 봄이다.

여름을 향해 가지만, 마음은 겨울을 지나오는 중이다.

그 사이, 잠깐 머무는 계절. 봄이다.


오랜만에 따사로운 햇살이 비추는 봄날이다. 이런 날엔 달달한 게 먹고 싶어진다. 카페에 앉아 카라멜 마키아토를 시켰다. 책장을 바라보니, 대부분의 책이 달달하고 가볍다. 마키아토와 어울릴 법한 책 한 권을 집었다. 정호승 시인의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


목차부터 달달하고 다정하다. 손 가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읽었다. 달달한 책의 좋은 점은 어디를 펼쳐도 아무렇지 않다는 것이다.


“아, 맞아.”를 몇 번이고 중얼거렸다.

어디선가 본 듯한 이야기라는 느낌을 떨칠 수는 없었지만,

그래서 오히려 좋았다.


다 공감하지는 않았지만, 그럴 필요도 없었다.

달달한 이야기다. 그리고 햇살처럼 따뜻하다.


홍신자는 “막걸리를 먹으면서 와인 향을 그리워하지 마라.”라고 했다.

지금 여기가 아닌 것에 마음 줄 필요가 없다.

··· 포기해 버린 지난 일을 안타까워하면 현재 나를 이루고 있는 것이 소중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 현재 사랑하는 사람이 때때로 부족해 보이더라도 그 부족함의 향기를 맡아야 한다. 사랑은 한 사람에게 하나뿐이다.

··· 모든 壁은 門이다.


따스한 봄날,

달달한 커피 한 잔과 따뜻한 문장을 곁들이는 건

봄을 맞이하는 일이 아니라,

지나가는 봄을 조용히 배웅하는 일이다.


봄이 지나간다.

아니,

지금 이 순간이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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