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가 거기 모인 이의 주머니를 턴 거야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 예수의 존재도 의구심을 갖고 있다. 그런데도 어느 순간, 예수의 존재는 믿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무위당 장일순 선생의 이야기를 책으로 접하면서였다. 마음에 와닿는 말씀을 들으며, “믿음이 부족하다”라며 모든 것을 덮어버리는 성직자가 도대체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다시 묻게 되었다.
어렴풋이 알고 있던 ‘오병이어의 기적’. 성경에 따르면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이 먹고도 남았다고 한다. 처음에는 말도 안 되는 얘기라 치부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이야기를 믿고 싶다.
궁금해서 목사에게 물어보았다.
“믿어라. 그러면 알게 될 것이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에게도 물어보았다.
“그것이 예수님의 힘이다.”
그러나 그 어떤 대답도 내 마음을 시원하게 풀어주지 못했다. 예수를 마술사로 만드는 말뿐이었다.
그때 생각난 이가 있었다. 장일순. 그러면 다를 거라 믿었다. 그래서 물어보았다.
그는 껄껄 웃으며 말했다.
“별거 아냐. 예수가 거기 모인 이의 주머니를 턴 거야.”
순간 번쩍했다. ‘턴다’는 거친 표현이지만, 예수가 강제로 빼앗은 것이 아니라 주머니를 열도록 만든 힘, 그것이야말로 진짜 위대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기적은 단순했다. 가진 것을 아낌없이 나누게 만든 힘.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보다 더 큰 기적은, 움켜쥐고 있던 것을 내놓게 만든 예수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그 길밖에 다른 길은 없었다.
나는 늘 의아했다. 동학과 최해월을 이야기하던 장일순 선생이 천주교 신자라는 사실이. 그런데 이제는 알겠다. 본질은 다르지 않다는 것을.
한 번은 이런 일화도 있다. 합기도장을 운영하던 김진홍과 장일순, 지학순 주교가 함께 치악산으로 향하던 길, 상원사에 들러 불상을 마주하게 되었다. 대웅전 안에서 두 이는 합장을 하고 공손히 절을 했다.
“천주님을 따르는 이가 왜 불상에 절을 합니까?”
김진홍이 묻자, 장일순이 웃으며 답했다.
“성인이 저기 앉아 계신데, 나 같은 소인이 어찌 허리를 굽히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 말에 김진홍은 깊이 감동했다고 한다. 자신이 믿는 것만 옳다고 우기는 이와는 달리, 두 사람은 달랐다. 오히려 성인처럼 보였다.
김진홍은 이렇게 말했다.
“목사나 신부는 자신이 믿는 신이 아니면 안 된다고 하잖아. 성경에만 답이 있다고 하잖아. 그런데 진짜 된 이는 그렇지 않더라고. 가르침은 똑같다 이거야.”
나와 다름이 곧 틀림이 아니라는 것.
서로를 인정하고 함께 살아가는 세상.
그것이 장일순 선생이 꿈꾸던 세상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 길은 내가 함께 내디뎌야 할 길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