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아는 사실이 모두가 진실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자가 얼마나 될까?
신은 과거를 바꿀 수 없지만, 역사가는 그럴 수 있다. _새뮤얼 버틀러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모두 진실일까? 우리가 사실로 알고 있는 사실이 진짜 사실일까?
고병권의 《고추장, 책으로 세상을 말하다》 중에서 ‘사실’이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저자가 어떤 모임에 가서 모임 참석자 중 하나가 한 말을 옮겨놓았다.
“사실이 말하지 않은 것은 함부로 말하지 마라.”
“우리 역사학은 역사적 사실에 기초한 객관적 진실만을 말합니다.”
고병권은 “그런 그의 모습이 내게는 마치 자기 신앙을 고백하는 종교인처럼 보였다”라고 말한다. 다시 말하지 않았더라도 “많은 학자가 자기의 말의 객관성을 내세우고 싶을 때 내뱉는 말”이다. 또한, 매번 말을 하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 아니라 ‘사람’이다. 자신의 말이 아니라 ‘사실’이 말하고 있다고 늘 말하고 있다.
이러한 점은 먹물에게만 국한된 게 아니다. 대부분 인간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경험, 데이터를 신봉한다. 소위 배웠다는 인간에게 더 많이 나타날 뿐이다. 또 그 족속은 데이터를 볼 때도 자신의 경험과 일치하는 자료는 존중하지만, 그와 다른 데이터가 나오면 ‘데이터가 틀렸다’라 간주하고 무시한다.
고병권은 니체를 빌어 이 점을 다시 말한다.
누군가 ‘사실로 하여금 말하게 하라’고 외칠 때 사실만 보아서는 안된다. 우리는 사실을 모으고 배열하고 해석하는 행위, 즉 사실 바깥에서 이루어지는 그런 행위를 보아야 한다. 그때에만 우리는 어떤 사실이 왜 그런 말을 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가. 결론적으로 말하면 사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거나 너무 많은 말을 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것을 하나의 목소리로 듣는다. 그리고 그것이 참된 목소리라고 너무 쉽게 믿어버린다. 하지만 우리는 다시 물어야 하지 않을까. 사실 뒤에서 누가 말하고 있는가. 왜 그렇게 말하는가. 그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지금은 기억에만 남아있는 출판사 ‘뿌리깊은 나무’의 책 하나를 들려준다. 《민중자서전》이라는 이름으로 구술을 적은 책 중에서 《사삼 사태로 반 죽었어!! 반 - 제주 중산간 농부 김승윤의 한평생》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책은 “4·3 항쟁 시절 살았던 중산간 지역의 생활사가 온전히 담겨있다”라고 한다. 그러한 점보다는 이 책에 나오는 이름은 모르고 송지관이라고 불리었던 도술에 능한 할아버지에 관한 대목이다. 축지법을 사용하여 밤이면 땅을 줄여 다니곤 하였다고 구술하고 있다. 정말로 축지법을 사용하는 할아버지가 있었을까.
여기서 고병권은 역사학자나 사회학자가 이 대목을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하여 궁금해한다. 사실 나도 몹시 궁금하다. 아마도 ‘사실’을 말하며 근거 없는 ‘사실’이라 말할 것이다. 4·3 항쟁에 관한 다른 기억(구술)은 인정하지만 축지법에 관한 내용은 인정하지 않겠다는 이중적 잣대를 사용할 것이다.
역사가란, 역사적 사실을 재구성하는 자.
이때 사실을 모두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을 선택하며, 거기에 해석을 가해서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다. _로빈 조지 콜링우드(Robin George Collingwood)
우리가 역사적 사실이라고 평하는 모든 것이 정말 사실인지는 모호하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우리가 사실로 받아들이기에는 이상한 이야기가 너무나 많다. 모든 것을 “(역사적) 사실에 기초한 객관적 진실만을 말한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우리가 아는 사실이 모두가 진실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자가 얼마나 될까?
덧_
고병권, 《고추장, 책으로 세상을 말하다》, 그린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