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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루장 Aug 04. 2021

비굴하면 비겁한 걸까?

비굴하면 비겁한가?

비굴함과 비겁함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혹자는 ‘적당히 비굴하면 사람이 모인다’고 했다. 하지만 ‘적당히 비겁하면 사람이 모인다’고 하면 이상하게 들린다. 그렇다면 비굴함과 비겁함은 차이가 있다. 어떤 차이가 있을까?

見義不爲 無勇也  견의불위 무용야
知而不爲 是無勇也 지이불위 시무용야

의를 보고 행하지 않는 것은 용기가 없는 것이다.
알고도 하지 않는 것은 용기가 없는 것이다.

공자는 《논어論語》, <위정편爲政篇>에서 용勇을 말하고 있다. 용기勇氣가 없는 것이 ‘비굴’ 한 것인지 아니면 ‘비겁’ 한 것일까? 먼저 국어사전에 나와 있는 설명을 살펴보자.

비굴卑屈하다 : 용기나 줏대가 없어 남에게 굽히기 쉽다.
굽히다 : 뜻, 주장, 지조 따위를 꺾고 남을 따르다.

비겁卑怯하다 : 비열하고 겁이 많다.
비열卑劣하다 : 사람의 하는 짓이나 성품이 천하고 졸렬하다.
겁 : 무서워하는 마음. 또는 그런 심리적 경향.
졸렬拙劣하다 : 옹졸하고 천하여 서투르다.
천賤하다 : 하는 짓이나 생긴 꼴이 고상한 맛이 없이 상되다.
상常되다 : 말이나 행동에 예의가 없어 보기가 천하다.
옹졸壅拙하다 : 성품이 너그럽지 못하고 생각이 좁다.

비굴하다는 것과 비겁하다는 것은 비슷한 의미처럼 혼용해 사용하고 있지만, 사전적 의미로는 어감이 다르다. 풀어본다면 비굴하다는 자신의 주장이나 지조를 버리고 남을 따르기 쉽다는 의미이다. 반면 비겁하다는 성품이 너그럽지 못하고 생각이 좁고 성품이 고상하지 못해 천박하며 무서워하는 마음이 많다를 의미한다.

하지만 어감의 차이에도 비굴과 비겁을 같은 뜻으로 혼용하고 있다. 우리글로 쓰인 글은 물론이고 번역된 글은 글쓴이나 번역자의 취사선택에 따라 혼용되어 사용되고 있다.




루쉰 《아Q정전》에 나오는 Q 비겁한가 아니면 비굴한가?

아Q는 타성에 젖은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명감도 목적의식도 없이 무기력하고 비겁한 인간상을 상징하고 있다. 다혈질적이고 자존심이 강할 뿐만 아니라 무지한 아Q는 아무리 경멸을 당하고 희롱을 당해도 적극 대항하지 못하지만, 마음속에는 자신이 이겼다고 합리화하는 일명 ‘정신 승리법’을 가지고 있다. 아Q는 “너그럽지 못하고 생각이 좁고 성품이 고상하지 못해 천박하며 무서워하는 마음이 많다.” 비겁함의 전형적인 인물이다.


진정한 비굴 정신을 보여준 이는 한신이다. 한나라를 세우는 데 큰 공을 세웠으며 초나라의 제후가 된 한신이 젊은 시절 백수 신세로 지낼 때 이야기이다. 한신이 하루는 회음이라는 지방을 지나고 있었다. 한 소년이 한신을 경멸하며 많은 사람이 보는 데서 모욕을 주었다. “당신이 만약 나를 죽일 수 있다면 차고 있는 그 칼로 나를 찔러보시지! 만약 나를 죽일 수 없거든 내 가랑이 밑으로 기어나가든지!” 그리고는 가랑이를 벌리는 것이었다. 한신은 잠자코 가랑이 아래를 바라보다가 생각 끝에 그 아래로 기어서 나갔다. 이것을 본 마을 사람은 한신의 칠칠치 못한 태도를 비웃으면서 비겁한 남자라고 손가락질을 했다. 그러나 한신은 나중에 크게 성공하고 나서 소년을 찾아서 벼슬을 주었다. 한신은 소년을 죽일 수도 있었지만, 전혀 명예로운 일이 되지 않기에 참았고, 그 일을 계기로 인내심을 키웠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신의 태도는 엄밀히 말하면 비굴함이 아니다. 훗날을 위해 현재를 참아내는 모략이 되기에 그런 처세술을 ‘엽전의 처세술’이라고 한다. 둥근 엽전 속에 네모난 구멍이 있다. 네모난 각이 진 내면은 반듯한 내면을 뜻하고, 둥근 테두리는 둥글게 처신하는 것을 뜻한다. 반듯한 내면의 철학과 인격이 있을 때 둥근 처세술은 빛이 나며 훗날을 기약할 수 있다. 그런데 반듯한 내면도 없이 오직 살아남기 위한 비굴한 상태가 된다면 그것은 비참하며 비겁한 행동이다.


용감한 자는 분노하면 칼을 빼 들고서 자기보다 강한 자에게 달려든다.

비겁한 자는 분노하면 칼을 들고서 자기보다 약한 자에게 달려든다.

구원의 가망이 없는 민족에게는 아이한테만 눈을 부라리는 영웅이 수두룩하다.

_루쉰魯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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