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국열차 - 봉준호
혁명이란 게 김수영의 말처럼 “혁명은 안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버렸다.” 진정 원하는 게 혁명이 아니라 일탈이 아니었는지.
‘기차’라는 견고하게 짜인 공간은 사회체제의 상징이다. 견고하지만 통로(출구가 아니다)가 앞, 뒤밖에 없는 좁고 폐쇄적인 공간이다. 밖은 너무 춥다. 기차는 무한 괘도를 돌고 있다. 살아남은 인류는 각자의 부여받은 공간에서 생활한다. 각자의 계급사회가 각 탄에서 계급별로 살고 있다. 밖의 세상과도 같이 ‘의 · 식 · 주’가 계급별로 사는 모습이 다르다. 춥고, 굶주리는 사람이 바글대는 꼬리칸, 술, 마약 그리고 희귀한 음식까지 즐기는 선택받은 계급이 모여있는 앞쪽 칸, 열차 안 세상도 바깥세상과 같이 공평, 평등하지 않다.
혁명을 꿈꿨다. 사실 폭동이지만. 억압하는 쇠사슬을 깨뜨리면 새날이 올 것이라 여겼다. 배도 고프다. 그저 앞으로 앞으로 달려만 간다. 왜 달려가는지 모른다. 진정 원하는 게 뭔지 알 수 없다. 그저 달릴 뿐이다.
혹자는 영화를 보고 나서, 말하기도 한다.
인간의 잔인함, 계급사회와 빈부격차를 날카롭게 비판했다고.
기차 안에서 보여주는 세상이 현실의 세상과 똑같아 소름 끼친다고.
하지만 현실은 기차 안의 세상보다 더 끔찍한 계급사회이다. 빈부격차는 더 심하다.
우리는 그것을 애써 피하고 있다.
좋은 것만 보고 싶어 한다. 그저 남의 일이라 생각하고 싶다.
그저 그 현실이 나에게만 오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영화에 대한 몇 가지 의구심.
많은 제작비가 들 필요가 있었을까? 어디에 돈이 들어갔지? 열차를 진짜로 만든 것도 아닐 텐데.
송강호가 왜 그 역을 맡아야 ‘만’ 했나? 송강호가 나오지 않으면 한국에서 개봉해 승산이 없었을까? (외국인 배우가 많지만 어차피 국내 개봉용이 아니던가?)
열차 밖으로 나가고 싶다고 (의도하였던 하지 않았던) 열차를 멈추는 게 정당한 행동일까? 그로 인해 모두 죽는다면 결국 인류가 멸망할 수도 있었는데도. 정당한 행동일까? (밖으로 나가는 게 무려한 것보다 백 배는 나아 보이지만)
결국, ‘황색’과 ‘흑색’만 살아남았다. 열차 안의 인류가 현존하는 모든 인류라면, (물론 밖에도 살아남은 인류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또 다른 인종주의가 아닌가? 악의 원인인 ‘백색’을 모두 저 세상으로 보냈나? 애초 현존 인류의 기원인 유색인만이 세상을 다시 만들 수 있는 건가?
계속 외친다. 밸런스,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톱니바퀴가 돌기 위해서는 크기에 상관없이 각자의 위치에서 역할을 해야 한다. 그것이 세상이 돌아가는 조화이다. 자리를 이탈하는 것은 조화를 깨뜨린다. 그러면 세상이 돌아가지 않는다. 늘 위정자는 자리를 지켜라, 분수를 알아야 한다, 변혁은 반역이라고 말한다. 세상은 늘 그래 왔다.
덧_
봉준호, 《설국열차》, 201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