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에 응급실 찾기
새벽, 전화가 울렸다. 생전 새벽에 전화를 한 적 없던 노모의 번호였다.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떨리는 손으로 전화를 받으니, 평소와 달리 힘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배가 너무 아프다.”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곧바로 옷을 챙겨 입고 차를 몰았다. 거리는 한산했지만, 신호가 길게만 느껴졌다. 다행히 10분도 채 되지 않아 어머니 집에 도착했다. 상태를 확인할 겨를도 없이 부축해 차에 태우고 근처 응급실로 향했다. 다급한 마음에 병원 문을 밀쳐 열었고, 접수 후 의사를 만났다.
진찰을 마친 의사는 내시경 검사가 필요하지만, 해당 병원에는 장비가 없어 다른 병원으로 이송해야 한다고 했다. 문제는 이동이었다. 의료진은 사설 119를 불러 직접 병원을 수배하라고 했다.
“지금 바로 검사를 받아야 하는데, 병원이 어디 있나요?”
“보호자분께서 직접 알아보셔야 합니다. 병원마다 상황이 다 달라서요.”
어처구니가 없었다. 응급실까지 왔는데, 또 다른 병원을 찾아야 한다니. 환자의 생명이 걸린 문제를 보호자가 해결해야 하는 시스템이라니, 이게 말이 되는가?
응급실을 나와 차에 앉아 사설 119를 기다렸다. 어머니는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몇 분 후 도착한 119 요원은 병원을 찾기 위해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한 곳, 두 곳, 세 곳… 20여 분이 지나서야 겨우 환자를 받아줄 병원을 찾았다. 이미 너무 많은 시간이 흘렀다.
이 상황이 과연 21세기 IT 시대에 걸맞은 응급의료 시스템인가?
생명을 위협하는 비효율적인 구조
응급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이다. 그런데 현재 응급의료 시스템은 환자가 직접 병원을 찾아야 한다. 병원 간 실시간 협업 시스템이 없으니, 119 요원이 일일이 전화를 돌려 병상 유무와 진료 가능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그 사이 환자는 차 안에서 기다려야 하고, 의료진은 전화를 받느라 시간을 허비한다. 이 구조적인 비효율성이 응급환자의 생명을 얼마나 위협하는지 생각하면 답답하기 그지없다.
이 문제가 이번만의 일일까? 아니다. 몇 년 전, 지인이 사고를 당해 응급실을 찾았을 때도 같은 경험을 했다. 응급실에 도착해도 병상이 없거나 특정 장비가 없다는 이유로 다른 병원으로 가야 했다. 그렇게 몇 군데나 돌고 나서야 겨우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응급실을 찾는 순간부터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때까지, 그 사이 과정이 지나치게 비효율적이다.
해결책이 없는 것이 아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분명히 있다. 병원 간 실시간 협업 시스템이 구축된다면, 119 출동 단계에서 가장 적절한 병원을 배정할 수 있다. 응급실의 병상 수, 의료 장비 유무, 진료 가능 여부 등을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시스템을 만든다면 119 요원의 업무 부담도 줄고, 환자는 보다 신속하게 응급 치료를 받을 수 있으며, 병원도 불필요한 전화 업무에서 벗어나 진료에 집중할 수 있다.
이미 IT 기술이 충분히 발전한 시대다. 전국의 병원 응급실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정부가 의료 시스템 개선을 위한 지원금을 제대로 활용한다면, 병원과 응급의료센터 간 데이터 공유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응급의료 시스템,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응급의료 시스템은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문제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주먹구구식 시스템 속에서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응급환자가 병원을 찾아 헤매는 것이 아니라, 병원이 응급환자를 찾아야 한다. 응급의료 시스템이 빠르고 효율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정부와 의료 기관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다.
더 이상 생명이 위태로운 순간에, 보호자가 직접 병원을 찾아야 하는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생명을 살리는 시스템이라면, 그에 걸맞은 체계를 갖춰야 한다. IT 강국이라 자부하는 대한민국에서, 응급의료 시스템만큼은 더 이상 뒤처져 있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