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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자산 정부정책에 대하여

비트코인

by 이필립


시장경제에서 가격은 기본적으로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된다. 제품 본연의 가치가 상승하여 가격이 오르기도 하지만, 본질적 가치와 무관하게 수요의 증가만으로 가격이 상승하는 경우도 많다. 주식은 회사의 성장 가능성과 미래 수익에 따라 가치가 형성되며, 미술품은 희소성과 취향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이들 자산은 모두 실체가 존재하는 ‘현물’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반면, 암호화폐는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 디지털 숫자에 불과하다. 이 디지털 숫자에 비즈니스 모델을 입히고, 토큰이라는 이름으로 유통시킨다. 대부분의 암호화폐는 거래 수수료로 사용되거나, 서비스 이용 시 보상 형태로 지급된다. 결국 이는 화폐의 기능을 대체하거나, 마일리지와 같은 현금 유사 수단으로 작동하는 수준에 머무른다.


일부 암호화폐는 자산을 토큰화하여 증권의 기능을 대체하겠다는 시도를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기존 제도권 금융과 비교해 법적 안정성과 현실 적용 가능성에서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암호화폐 시장은 활황을 보이고 있을까?


가장 큰 이유는 발행자에게 주어지는 강력한 권한 때문이다. 암호화폐 발행자는 일종의 중앙은행처럼 화폐를 발행하고, 이를 유통시키며 초기 투자자와 함께 막대한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구조를 만든다. 이를 위해 가격을 인위적으로 끌어올리는 펌핑이 자주 발생하고, 그 과정은 규제 밖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주식시장에서 호재 뉴스로 주가를 띄운 후 차익을 실현하는 수법과 유사하지만, 암호화폐 시장은 상대적으로 제재가 약하다. 여기에 복잡한 신조어와 기술 용어로 일반 투자자를 현혹시키며 시장을 과열시킨다.


많은 개인 투자자들은 비트코인이 수만 달러까지 오른 전례를 떠올리며, ‘제2의 비트코인’을 찾는 꿈에 돈을 넣는다. 그러나 대부분의 암호화폐 비즈니스 모델은 사회 제도와 법적 규제를 고려하지 않은 채 제시되며, 현실의 벽 앞에 번번이 실패한다. 해당 사업 모델이 성공하려면 기존 질서가 무너지고 새로운 사회구조가 필요할 정도의 수준이기 때문이다. 지난 10여 년간 수많은 암호화폐 프로젝트가 현실화되지 못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 정부는 지난 5년간 블록체인에 희망을 걸고 연구개발 및 다양한 실증사업에 예산을 투입했으나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런데도 이번 정부는 다시 스테이블코인, ICO, STO 등 유사한 키워드를 새로운 정책의 기조로 삼고 있다. 문제는, 전 정부는 ‘암호화폐’를 빼고 ‘블록체인’만 이야기했고, 현 정부는 ‘블록체인’을 빼고 ‘암호화폐’만 이야기한다는 점이다. 두 기술이 실과 바늘처럼 얽혀 있는 상황에서, 한쪽만 취사선택해 정책을 설계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정부가 과거 블록체인 정책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았다면, 지금과 같은 방향은 피했을 것이다. 이미 블록체인은 기술적 효용성과 산업적 파급력 측면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것이 국내외에서 공통된 평가다. 그 기반 위에 ICO, STO, 스테이블코인을 올린다고 해서 실질적인 가치가 창출될 리 없다. 그런데도 정부가 한국 시장만을 바라보며 이러한 정책을 계속 추진한다면, 이는 결국 국민의 자산을 빼앗아 가는 고속도로를 깔아주는 셈이다.


정책은 시장의 유행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기술에 대한 본질적 이해와 미래 예측을 바탕으로 수립되어야 한다. 단순히 시장 수요에 편승해 정책을 펴는 것은 매우 일차원적이며, 향후 발생할 사회적·경제적 부작용을 고려하지 못한 안일한 접근이다. 지금 정부에 필요한 것은 유행을 좇는 정책이 아니라, 본질을 꿰뚫고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철학과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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