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어할 수 없는 시스템, 비트코인의 역설적 탄생

비트코인

by 이필립


인류는 문명을 이루며 수천 년간 끊임없이 새로운 도구와 시스템을 창조해 왔다. 그리고 그 모든 창조물에는 하나의 전제가 깔려 있다. 바로 ‘인간에 의한 제어 가능성’이다. 비행기, 원자력, 심지어 핵무기조차도 마지막 결정과 통제는 인간에게 귀속된다. 사람이 만든 것이므로 사람의 통제 하에 놓인다는 믿음은 기술 문명의 기반이자 안전장치였다.


하지만 2009년 등장한 비트코인(Bitcoin)은 이 상식을 정면으로 뒤엎는다. 처음에는 실험적 디지털 화폐로 주목받던 비트코인은, 어느 순간부터 아무도 제어할 수 없는 시스템으로 진화했다. 핵심은 데이터의 저장 방식에 있다. 기존 중앙집중형 구조와 달리, 비트코인은 동일한 거래 장부를 전 세계 수천, 수만 대의 컴퓨터에 복제 저장한다. 이 데이터는 개별적으로 흩어져 있으나 논리적으로는 하나의 동일한 장부다. 특정 서버가 파괴되거나 일부 노드가 손상되어도 전체 시스템은 영향을 받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분산장부, 즉 탈중앙화(decentralization)의 본질이다.


그러나 단순한 데이터 분산만으로는 유지가 불가능하다. 비트코인은 여기에 보상 구조를 결합했다. 누구든지 네트워크 유지에 기여하면 비트코인이라는 보상을 받을 수 있다. 저장과 검증에 자발적으로 참여한 이들에게 경제적 인센티브가 주어지는 것이다. 접근이 자유롭고, 위법이 아니며, 지속적으로 활용 가능하고, 심지어 보상까지 제공된다면 전 세계 누군가는 반드시 그 네트워크를 유지하려 할 것이다. 이것이 비트코인이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멈춘 적 없는 이유다.


두 번째는 이 시스템이 스스로 강화되는 역동성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보상의 가치가 상승하자, 더 많은 참여자가 더 강력한 컴퓨팅 자원을 투입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보안성 점점 더 강해졌다. 공격자가 시스템, 정보를 조작하려면 전체 컴퓨팅 파워의 절반 이상을 점유해야 하는데, 이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상승하면서 사실상 외부 개입이 불가능해졌다. 이는 사토시 나카모토의 기본 설계 안에 있었지만, 실제로 이토록 강한 내성을 지닐 것이라고는 그조차도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세 번째 현상은 그로부터 파생된 무결성과 신뢰의 가치화다. 기술적으로 조작이 불가능한 장부, 누구도 손댈 수 없는 기록. 이 무결성이 시장에서 비트코인 자체의 희소성과 신뢰성을 높였고, 사람들은 이를 단순한 디지털 토큰이 아니라 하나의 ‘질서’로 보기 시작했다. 법정화폐와 달리, 정부나 중앙은행이 개입할 수 없고, 거래 기록을 수정할 수 없는 시스템. 이 인위적 조작이 불가능한 구조는 일부 국가가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인정하거나 국부펀드에 포함시키는 이유가 되었다. 미국의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이를 기반으로 비트코인 ETF를 승인하며 제도권 금융 시스템 안으로 끌어들였다.


이처럼 비트코인은 인간이 설계했으나 인간이 제어할 수 없는 최초의 디지털 시스템이다. 그것은 단순한 기술을 넘어, 인류가 처음으로 만든 ‘탈인간적 질서’이며, 그 누구의 개입도 허용하지 않는 자율적 구조다. 이는 다른 어떤 암호화폐, 즉 알트코인과도 명백히 다르다. 수많은 프로젝트들이 비트코인의 기능을 복제하려 했으나, 대부분은 중앙의 개입, 개발자의 통제, 재단의 운영 등으로 인해 본질적 의미의 탈중앙성과 무결성을 달성하지 못했다.


결국 비트코인의 본질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제어할 수 없음에 있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등장한, 사람의 손으로 만들었으나 사람이 다룰 수 없는 질서. 이것이 바로 비트코인이 혁명적이라 불리는 이유이며, 우리가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진짜 블록체인’의 완성형이다. 단순한 화폐를 넘어서 철학, 기술, 경제의 경계를 관통하는 거대한 구조. 그것이 바로 비트코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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