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 정책을 다시 생각한다

비트코인

by 이필립

무지한 낙관, 반복되는 실패


지난 10여 년간 대한민국 정부는 산업 발전의 핵심 키워드로 ‘블록체인’을 내세워 왔다. 초기에는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를 시작으로 프라이빗 블록체인, 컨소시엄 블록체인으로 이어졌고, 이어서 NFT, STO, 그리고 최근에는 스테이블코인, RWA(실물자산토큰화), ICO까지 거론되고 있다. 매년 새로운 키워드가 등장하고, 각종 포럼과 시범사업이 이어지며 블록체인은 미래 먹거리로 포장되었다.


하지만 결과는 명확하다. 기대와는 달리 이렇다 할 성과를 남긴 기술은 없었고, 실제 현장에서는 활용 사례가 전무하다시피 했다. 가장 적극적으로 추진되던 IBM의 하이퍼레저 프로젝트조차도 2023년 사업부가 전면 폐쇄되었다. 블록체인 기술에 대해 가장 정교한 이해와 검증 역량을 갖춘 글로벌 IT 기업들조차 외면한 현실이다.


반면, 암호화폐 시장의 흐름은 이와 대조된다. 실질적으로 시장에서 살아남은 것은 오직 비트코인뿐이었다. 비트코인의 시가총액은 전체 암호화폐 시장의 65%를 차지하며 구글의 시총을 넘어섰고, 그 외 수천 개의 코인들은 대부분 사라졌거나, 비트코인 대비 25% 수준의 잔존가치만을 남겼다. 이는 시장이 실질적으로 기술과 신뢰를 검증한 결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정부는 여전히 블록체인과 NFT, RWA, 스테이블코인 등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를 두 가지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다.


첫째, 반복되는 블록체인 프로젝트의 추진은 실효성보다 특정 소수의 이해관계자에게 당장의 이익을 제공하는 구조로 작동하고 있다. 실제 효과나 성과보다는 예산의 배정, 연구비 수주, 정부용역 등의 실익이 우선시되고 있다. 이는 본질적으로 경영자적 위치에 있는 공공기관 책임자들의 도덕적 해이에서 비롯된 문제다. 성과가 없어도 책임지지 않는 구조 속에서, 단기적 실적과 예산 소진만이 목표가 되어버린 것이다.


둘째는, 보다 본질적인 문제로, 기술에 대한 이해 부족이다. 정부와 자치단체는 블록체인의 핵심 구조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수많은 특구사업과 실증과제를 진행했다. 하지만 그 대부분이 실패로 돌아갔다. 이는 ‘블록체인’이라는 단어의 겉모습만 좇았을 뿐, 그 내면에 있는 ‘비트코인’의 구조와 기술적 기반—예컨대 PKI, 분산합의, 위변조불가성 등의 원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정책을 설계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이러한 정책 설계와 실행에 참여하는 학계 전문가, 정부 실무자, 특구사업 담당 기업들조차 기술 이해 없이 예산을 사용하고, 실패에 대한 책임도 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전문가’라는 이름으로 참여한 이들이 실제로는 블록체인 시스템의 작동원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단지 예산 집행의 도구가 되어 있었다면, 그 누구에게 정책의 실패를 물어야 할 것인가?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전문가 집단이 여전히 정책 현장에서 발언권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목소리가 크고, 특정 인맥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판단력 없는 시스템이 이들을 계속해서 선택하고 있다. 하지만 시스템이 무지한 집단의 주장에 반복해서 기대고 있다면, 결과는 자명하다. 기술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 없이, 반복되는 구호와 형식만이 남을 것이다.


이제는 진지한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블록체인이라는 단어를 더 이상 ‘미래 기술’이라는 명분으로 포장하지 말아야 한다. 실효성 있는 기술은 검증으로부터 비롯되며, 비트코인을 제외한 대부분의 프로젝트는 이미 시장에서 평가받았다. 기술의 본질을 직시하고, 헛된 기대가 아닌 진짜 혁신에 주목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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