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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 채 시작된 혁신은 언제나 실패로 귀결된다. 블록체인 기술도 예외가 아니다. 기술이란 본래 문제 해결을 위한 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다. 그런데 지난 10여 년간 우리는 ‘블록체인’이라는 이름에 현혹되어, 정작 그것이 무엇을 위한 기술이며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은 외면해 왔다.
보물섬을 찾기 위해선 지도가 필요하다. 지도 없이 금을 찾겠다는 것은 그저 모래밭을 파헤치는 일과 다를 바 없다. 그런데도 수많은 기업과 기관들이 블록체인이라는 이름에 기대어, 아무런 설계도 없이 기술 구현에 나섰다. 언론과 정책은 “블록체인은 미래 기술”, “4차 산업의 핵심”이라 치켜세웠고, 이에 눈이 먼 기업들은 기술적 이해나 필요성은 뒤로 한 채 개발에 착수했다. 마치 ‘무한동력’을 만들겠다고 투자하는 꼴이다. 기술적 실현 가능성이 없음에도 그럴싸한 포장을 입혀 정부의 예산만 따내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이러한 왜곡된 흐름의 중심에는 정부의 잘못된 기술 정책이 있다. 정부는 본래 산업 발전을 위한 지원자가 되어야 하나, 오히려 정책 주도자가 되어 산업을 끌고 가려했다. 기술이 실제로 어떤 구조로 작동하고, 어떤 경우에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를 따지기보다는, ‘블록체인’이라는 키워드를 가진 프로젝트에 연구비를 쏟아붓는 방식으로 접근했다. 결국 연구개발의 목적은 ‘기술의 실현’이 아니라 ‘정책 부응’으로 전락했다.
이 과정에서 ‘도덕적 해이’가 발생했다. 기술의 타당성과 필요성은 부차적인 문제로 밀려났고, 기업과 기관은 정부 지원금만 받으면 된다는 식의 행태를 보였다. 이른바 ‘묻지 마 R&D’가 성행한 것이다. 일부 대기업조차도 블록체인을 외면한 것은 단지 수익성이 없어서가 아니다. 기술적 실현 가능성과 명확한 비즈니스 모델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중소기업과 스타트업, 일부 학계는 블록체인 기술이 무엇인지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정책이니까’, ‘정부가 하라니까’라는 이유로 무비판적으로 사업을 추진했다.
이러한 현실은 블록체인이라는 기술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배경을 설명해 준다. 기술은 본래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도구이며, 그 도구는 철저한 이해와 문제의식 위에서만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블록체인 산업은 문제의식이 아니라 정책 이슈에서 출발했고, 기술 이해가 아닌 정치적 방향성에 의해 추진되었다.
따라서 블록체인 기술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단순히 기술적 한계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그보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기술을 도구로 보지 않고 상징으로만 소비하며, 실체 없는 혁신 담론에 기대어 자금을 집행한 정책 환경과 그에 편승한 산업계, 학계의 무책임함에 있다. 진정한 기술혁신은 문제에 대한 깊은 이해와 정확한 해법에서 출발한다. 지도를 그리지 않고 떠나는 항해가 끝내 난파에 이르듯, 본질을 외면한 블록체인 산업 역시 결국 실패라는 목적지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