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의 이해, 그리고 사회적 책임

비트코인

by 이필립


학문은 단순한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이해’를 필요로 한다. 누군가가 써놓은 글이나 이론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는 겉보기에는 학습의 효율성을 높여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위험한 함정을 내포한다. 이해 없는 수용은 결국 앵무새처럼 지식을 흉내 내는 것에 불과하며, 이는 학문 본래의 정신과도 배치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양자역학이다. 많은 사람들이 “양자역학을 이해했다”라고 말하지만, 정작 양자역학의 본질은 그 ‘이해 불가능성’에 있다.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리처드 파인만(Richard Feynman)조차도 “나는 양자역학을 이해하지 못한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는 기존 학문과 달리, 양자역학이 단순한 지식의 습득을 넘어 근본적인 사고의 전환을 요구한다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대부분의 학문은 충분한 이해를 바탕으로 비로소 응용과 발전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를 단순히 암송하거나 맹목적으로 수용하는 순간, 사회는 심각한 위험과 손실을 떠안게 된다.


이 점은 블록체인의 사례에서도 명확하게 드러난다. 2017~2018년 전 세계 수많은 전문가와 기관들이 블록체인을 “미래 기술”이라 치켜세웠다. 정부 보고서와 학술 발표, 컨설턴트의 브리핑에서 쏟아져 나온 말들은, 깊은 이해 없이도 장밋빛 전망을 반복하는 데 치중했다. 이른바 ‘앵무새 효과’였다. 그 결과 수많은 국가와 기업, 개인 투자자들이 연구와 자금을 쏟아부었지만, 2025년 현재까지도 그들이 약속한 블록체인의 미래는 실현되지 않았다. 오히려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라는 모호한 변명만이 남았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중요한 교훈을 얻어야 한다. 전문가라 불리는 사람들의 책무는 단순히 유행을 좇거나 권위를 빌려 말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다. 학문을 깊이 이해하고, 그 이해를 토대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만약 전문가와 행정 집행자들이 충분한 이해 속에서 정책과 실행을 준비했다면, 국민 행복은 물론이고 국가의 대외 경쟁력 강화, 정부의 투명성 확보까지 가능했을 것이다. 반대로 이해 없는 결정과 무분별한 실행은 국민 신뢰를 무너뜨리고 사회적 자원 낭비라는 결과를 초래한다.


오늘날 우리는 지식과 기술이 넘쳐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많은 지식’이 아니라 ‘깊은 이해’이다. 이해 없는 지식은 허상일 뿐이며, 허상 위에 세운 사회는 언젠가 무너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전문가라면 반드시 자기 이해의 깊이를 점검해야 하고, 정책 결정자라면 앵무새처럼 되풀이되는 구호가 아니라, 이해와 성찰에 기반한 실천을 선택해야 한다.


학문은 단순한 ‘배움’이 아니라 ‘이해와 책임’을 전제로 한다. 블록체인과 양자역학의 사례는 우리에게 이 단순하지만 본질적인 교훈을 다시 상기시킨다. 이해 없는 학문은 사회를 위험에 빠뜨리지만, 충분한 이해에 기반한 학문은 국민에게 신뢰를 주고, 국가와 사회의 미래를 튼튼하게 한다. 이것이 전문가와 학자가 지켜야 할 진정한 책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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