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 예탁원 부재의 이유

비트코인

by 이필립

암호화폐 시장은 지난 10여 년 동안 폭발적으로 성장해 왔다. 비트코인의 가격이 5만 달러를 넘어선 지도 이미 오래되었고, 전 세계적으로 수천만 명이 암호화폐를 보유하고 있다. 그런데도 주식시장에서의 한국예탁결제원 같은 ‘암호화폐 예탁원’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단순히 제도가 늦은 것이 아니라, 암호화폐 자체가 가진 구조적인 이유 때문이다.


주식시장을 예로 들어보면, 투자자는 증권사를 통해 거래하지만 실제 보관은 예탁결제원 같은 중앙기관이 맡는다. 덕분에 증권사가 파산하거나 사고가 나더라도 고객의 주식은 안전하게 보호된다. 중앙화된 관리 체계와 제도적 장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암호화폐는 전혀 다르다. 암호화폐의 소유권은 공개키와 개인키를 기반으로 성립하는데, 결국 암호화폐를 보관한다는 것은 곧 개인키를 안전하게 관리한다는 뜻이다. 문제는 이 개인키를 중앙기관에 모아 보관하는 순간, 그것이 해킹과 내부 도덕적 해이에 무방비로 노출된다는 점이다.


개인키는 암호화폐 자산의 유일한 접근 수단이다. 이 키를 빼앗기면 자산은 바로 외부로 유출된다. 암호화된 형태로 저장한다고 해도 복호화할 수 있는 관리자나 내부자가 존재하는 이상 보안은 완전하지 않다. 마치 길가에 황금덩어리가 떨어져 있는데 수많은 사람이 그 앞을 오가면서도 아무도 손대지 않기를 기대하는 것과 같다. 결국 누군가는 그것을 집어 들 것이며, 중앙화된 기관에 보관된 개인키는 언제든 표적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이유로 지난 10여 년간 전 세계의 거래소들은 수십억 달러에 이르는 해킹 피해를 입어왔다. 대부분의 원인은 단순한 기술적 취약점이 아니라 내부 관리 소홀이나 도덕적 해이였다. 그렇다면 예탁원이 생긴다 하더라도 구조적으로 거래소와 다를 바 없고, 동일한 위험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대안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수탁 자산의 투명한 공개가 일정 부분 신뢰를 줄 수 있다. 실제로 일부 해외 거래소는 자신들이 보유한 비트코인 지갑 주소를 공개해 외부에서 보관 자산 규모를 검증할 수 있도록 한다. 이는 투자자에게 최소한의 안도감을 주지만, 국내 거래소는 아직 이 부분에서 소극적이다. 특히 향후 국내에서 암호화폐 ETF가 도입된다면, 그 수탁 자산의 지갑 주소 공개는 신뢰 확보를 위한 필수 조건이 될 것이다.


결국 암호화폐 예탁원은 태생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중앙화된 보관소는 해킹에 취약하며, 개인키 관리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이는 단순한 제도의 결핍이 아니라 암호화폐 자체가 가진 탈중앙화 구조 때문이다. 앞으로의 논의는 ‘예탁원을 만들 수 있느냐’가 아니라, 탈중앙화 구조 속에서 어떻게 신뢰와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느냐로 이동해야 한다. 투명한 자산 공개, 다중서명 방식, 분산형 커스터디 설루션 등이 보완책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암호화폐는 본질적으로 스스로 키를 관리하는 자율적 시스템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주식과 달리 보호의 책임이 중앙기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 자신에게 있다. 따라서 암호화폐 시대의 진짜 과제는 제도를 흉내 내는 새로운 기관이 아니라, 탈중앙화라는 본질을 유지하면서도 신뢰와 안정성을 구축하는 새로운 방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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