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 능력을 잃은 블록체인 정책

비트코인

by 이필립

수정 능력을 잃은 사회는 왜 비트코인이라는 혁명의 기회를 놓쳤는가


사회가 건강하다는 증거는 완벽함이 아니라 수정 능력에 있다. 잘못된 판단을 했을 때, 그것을 인정하고 방향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사회의 생명력이다. 그러나 오늘날 일부 정책은 그 능력을 상실한 사회를 마주하고 있다. 오류를 인정하는 순간 책임이 발생하고, 책임은 곧 지위와 이해관계의 균열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 사회는 틀린 결정을 반복하면서도 “문제가 없다”라고 말하는 법을 먼저 배웠다.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태도는 이 상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블록체인은 어느 순간부터 기술이 아니라 신념이 되었다. ‘위변조가 불가능하다’는 말은 검증의 대상이 아니라 주문처럼 반복되었고, 그 전제 위에 수많은 정책, 사업, 프로젝트가 쌓였다. 그러나 운영자가 존재하는 시스템, 권한이 집중된 구조, 규칙을 바꿀 수 있는 주체가 있는 블록체인은 신뢰의 주체가 될 수 없다. 그럼에도 이 허상은 인정되지 않았다. 허상을 인정하는 순간, 지난 결정 전체가 흔들리기 때문이다.


수정하지 못하는 사회의 특징은 분명하다. 실수를 분석하지 않고, 실패를 재포장한다. 실패는 교훈이 아니라 ‘외부 변수’가 되고, 구조적 문제는 ‘시기상조’라는 말로 덮인다. 이렇게 사회는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새로운 키워드를 붙이고, 다른 이름으로 다시 시도한다. STO, NFT, RWA, 그리고 또 다른 유행어들.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신뢰 구조였음에도, 질문의 방향은 끝내 바뀌지 않았다.


이 지점에서 비트코인은 불편한 존재가 된다. 비트코인은 “무엇을 더 할 수 있는가”를 묻지 않는다. 대신 “누가 바꿀 수 있는가”를 묻는다. 중앙이 없는 발행 구조, 누구도 임의로 규칙을 수정할 수 없는 합의, 시간이 쌓일수록 강해지는 보안. 이는 기존 시스템이 의존해 온 ‘관리자에 대한 신뢰’를 근본에서 부정한다. 그래서 비트코인은 기술이기 이전에 질서에 대한 질문이다. 이 질문을 받아들이는 순간, 지금까지 당연하다고 여겨온 권한과 역할이 재정의되어야 한다.


수정 능력을 잃은 사회는 이 질문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비트코인을 이해하지 못해서가 아니다. 이해하는 순간, 지금까지의 선택이 틀렸음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회는 비트코인을 ‘위험하다’, ‘투기다’, ‘통제 불가능하다’고 부른다. 그러나 그 말의 이면에는 더 솔직한 이유가 숨어 있다. **“우리가 고칠 수 없는 시스템이 존재하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는 두려움이다.


비트코인은 완벽한 해답이 아니다. 그러나 분명한 기준을 제시한다. 신뢰는 선언으로 만들어지지 않으며, 제도는 권력의 선의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기준이다. 혁명은 새로운 기술에서 오지 않는다. 잘못을 고칠 수 있는 구조를 받아들이는 용기에서 온다. 오늘날 비트코인이라는 물결을 놓치고 있는 사회의 문제는 기술 격차가 아니라, 스스로를 수정할 수 없게 만든 사고의 경직성이다. 사회가 다시 살아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블록체인이 아니라, 틀렸음을 인정할 수 있는 용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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