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블코인 논쟁의 본질: 우리는 이미 스테이블코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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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필립

스테이블코인 논쟁의 본질: 우리는 이미 스테이블코인을 사용하고 있다


스테이블코인이란 무엇인가. 가장 간단한 정의는 “법정화폐를 담보로 한 디지털 토큰”이다. 즉 화폐를 은행 계좌에 보관하고, 그에 상응하는 값을 디지털 토큰으로 발행해 거래하는 방식이다. 사용자 입장에서 보면 디지털 토큰을 송금하는 행위와 은행 앱에서 숫자를 보내는 행위는 기능적으로 다르지 않다. 어떤 이는 블록체인 기반이라는 사실을 들어 기술적 혁신을 주장하지만, 블록체인이라고 해서 해킹이 불가능하다는 믿음은 오해다. 실제로 주요 거래소와 프로젝트 해킹 사례는 다수 존재하며, 기술적 안전성은 설계 구조와 운영 방식에 따라 달라진다.

참고: https://ciphertrace.com/cryptocurrency-wallet-hacks-analysis/


그렇다면 왜 시장은 스테이블코인을 새로운 미래처럼 포장하는가. 그 배경에는 암호화폐 시장의 반복된 키워드 마케팅이 있다. STO, NFT, RWA 같은 용어들이 등장해 큰 관심을 끌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대부분 실질적 대중 금융으로 확장되지 못했다. 혁신이라는 외피 아래 화제성은 있었지만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탓이다. 지금 스테이블코인이 떠오르는 이유는 USDT, USDC 같은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이 이미 거대한 시장을 형성했고, 이를 기반으로 다시 한번 “새로운 키워드”를 만들어내기 쉬운 환경이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논의에는 중요한 사실이 빠져 있다. 현재 시장에서 스테이블코인이 활발히 사용되는 핵심 이유는 익명성이다. 중앙화된 금융망을 통하지 않고, 상대적으로 빠르고 저렴하게 자금을 이동할 수 있기 때문에 암호화폐 거래에서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감시를 피하거나 수수료를 줄이기 위한 목적이 큰 것이다. 실제로 탈중앙 거래소(DEX), 글로벌 OTC 거래, 특정 국가 간 송금 등에서 스테이블코인은 사실상 디지털 달러 역할을 한다.

참고: https://www.bis.org/publ/bisbull65.pdf


그렇다면 정부나 기업이 스테이블코인을 만든다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익명 형태가 아니라 KYC 기반의 기명 스테이블코인이 된다. 이미 세계 각국은 자금세탁방지(AML), 테러자금 방지(FATF), 디지털 금융 규제 강화를 진행 중이며, “익명 스테이블코인 발행”은 정책 방향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거래 기록을 추적할 수 없는 화폐를 정부가 발행하는 일은 없으며,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논의가 보여주듯, 목적은 투명성과 통제에 있다.


결과적으로 사용자는 현금을 스테이블코인으로 전환하고, 식별 절차(KYC)를 거쳐 송금하며, 다시 법정화폐로 환전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지금처럼 은행 앱에서 즉시 송금하고, 카드 결제로 실시간 정산하는 방식보다 편리하다고 볼 이유가 없다. 특히 안정적 결제 시스템을 위해서는 운영비용이 필요하며, 중개 비용을 제거한 “무료 글로벌 결제”라는 이상은 현실 금융 인프라와 충돌한다. 달러 현금을 들고 여행하더라도 결국 환전 수수료를 내듯, 디지털 달러 역시 글로벌 결제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비용 구조를 피해 갈 수 없다.


중요한 결론은 이미 우리는 스테이블코인의 결과물을 경험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금을 은행에 넣는 순간, 우리는 실물 대신 디지털 숫자를 거래한다. 계좌이체, 모바일 결제, 카드 승인 시스템은 본질적으로 “디지털화된 법정화폐 거래”다. 이는 스테이블코인의 목적이었던 “화폐의 디지털화”를 이미 완성하고 있다. 오히려 법정화폐를 다시 토큰화해 사용하는 것은 디지털 금융의 진화라기보다, 기존 시스템을 한 번 더 포장하는 과정에 불과하다.


결국 질문은 이렇게 정리된다. 이미 디지털 숫자로 거래하는 사회에서, 굳이 스테이블코인이라는 중간 단계를 거칠 이유가 있는가. 익명성이 제거된 스테이블코인은 기존 금융보다 불편하고, 비용 구조는 사라지지 않는다. 현재 스테이블코인이 유용한 영역은 규제 밖의 영역이며, 정부 주도 스테이블코인은 이 핵심을 제거한다. 새로운 미래의 포장처럼 보이지만, 실체는 “기존 시스템의 복사와 역행”일뿐이다.


스테이블코인이 금융 혁신의 중심에 서려면, 익명성과 규제의 갈등을 해결하고, 기존 금융 인프라보다 월등한 편의성과 신뢰를 입증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스테이블코인은 단지 또 하나의 키워드로 소멸할 것이다. 진짜 변화는 이미 눈앞에 있다. “디지털 숫자 기반의 금융 시스템”이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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