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가리고 아웅 하는 성과 사회, 왜 반복되는가

비트코인

by 이필립



오늘날 우리 사회 곳곳에서는 ‘성과를 냈다’는 보고가 넘쳐난다. 수치상으로는 성공이고, 문서상으로는 진전이 있다. 그러나 그 실체를 들여다보면 묘한 공허함이 남는다. 실질적 변화는 없고, 문제는 그대로이며, 책임지는 주체는 보이지 않는다. 이른바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성과 내기가 일상화된 것이다.


이 구조의 중심에는 오래된 관행처럼 굳어진 학연·혈연·지연 카르텔이 자리 잡고 있다. 정책, 연구, 사업 선정 과정에서 능력과 결과보다 관계가 우선되는 순간, 성과는 목적이 아니라 명분으로 전락한다. 성과는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포장’되며, 실패조차도 다음 예산을 위한 근거 자료로 재활용된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는 자연스럽게 지출 부풀리기와 예산 소진 중심의 행정이 뒤따른다. 쓰지 않으면 다음 해 예산이 줄어든다는 논리, 남기면 능력이 없는 것으로 평가받는 구조는 ‘얼마나 효율적으로 썼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많이 썼는가’를 기준으로 삼게 만든다. 그 결과 돈은 쓰였지만 사회적 가치는 남지 않는 기형적 지출이 반복된다.


이 모든 일이 가능한 이유는 단 하나다. 감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감사가 존재하더라도 형식에 머무르고, 결과에 대한 책임 추적이 이뤄지지 않으며, 구조를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만 반복된다. 잘못을 찾아내기 위한 감사가 아니라, 문제없음을 확인하기 위한 감사가 되어버린 것이다.


과거 산업화 시기, 그리고 양적완화가 실물경제를 자극하던 시절에는 이러한 방식이 일정 부분 작동하기도 했다. 아날로그 산업 중심 사회에서는 ‘일단 돈을 풀고, 시설을 짓고, 사람을 투입하는 것’ 자체가 성장의 동력이었다. 속도가 중요했고, 완성도보다 확장이 우선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전혀 다른 시대다. 기술은 실시간으로 진화하고, 시장은 국경을 초월하며, 선택지는 빠르게 갈라진다.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예산이 아니라 투명성, 공정성, 그리고 정확한 판단 구조다. 그럼에도 과거의 방식이 여전히 반복된다면, 그것은 성장이 아니라 명백한 퇴보다.


불투명한 집행 구조는 기술 발전의 기회를 왜곡한다. 공정하지 않은 선정은 유능한 개인과 기업을 시장 밖으로 밀어낸다. 형식적 성과는 정책 실패를 은폐하고, 사회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된다. 결국 가장 큰 피해자는 국민이며, 가장 늦게 도착하는 것은 미래다.


성과는 숫자가 아니라 검증 가능한 결과로 말해야 한다. 예산은 집행이 아니라 책임으로 완결되어야 한다. 감사는 사후 절차가 아니라 구조를 바로잡는 장치여야 한다. 이것이 무너지면 어떤 정책도, 어떤 기술도, 어떤 혁신도 제자리를 찾을 수 없다.


눈을 가린 채 “잘되고 있다”라고 말하는 사회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보고서가 아니라, 불편하더라도 진실을 직시하는 용기다. 성과를 만드는 사회가 아니라, 성과를 속이지 않는 사회로 나아갈 때 비로소 다음 시대를 선택할 자격이 생긴다.

작가의 이전글몽상가가 시작한 비트코인 비즈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