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이라는 착각, 비트코인이라는 현실

비트코인

by 이필립

2018년, “블록체인”이라는 이름의 낯선 기술이 갑작스레 시장의 전면에 등장했다. 정부와 학계, 대기업은 저마다 이 기술을 이해하려 애썼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으려는 열망 속에서 앞다투어 담론을 생산했다. 그러나 당시 대중이 의존할 수 있었던 자료는 극히 제한적이었다. 2016년에 출간된 『블록체인 혁명』이 사실상 유일한 교과서처럼 소비되었고, 안드레아스 안토노풀로스의 『비트코인 마스터링』 같은 전문 서적은 일반인이 접근하기엔 난도가 높았다. 그 결과, 시장의 이해는 얕은 해석이 반복 재생산되는 구조에 빠졌다.


여기서 중요한 분기점이 존재한다. 일반적인 기술 서적은 출판 시점이 크게 문제 되지 않지만,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은 다르다. 2017년을 기점으로 기술의 작동 방식과 생태계의 성격이 질적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대학 시절을 고등학생 때 쓴 글로 설명할 수 없듯, 2017년 이전의 책으로 이후의 비트코인 본질을 규정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시장은 과거의 해석을 현재에 덧씌웠고, 특히 2016년의 관점을 교수, 금융권, 언론이 그대로 복붙하는 관행이 2026년인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 왜곡의 핵심에는 ‘후광효과’가 있다. 영향력 있는 누군가가 말하면 검증 없이 진실이 되어버리는 구조, 그리고 정책 역시 이해보다 모방에 기초한 지난 10년의 관성이 겹쳐졌다. NFT, STO, 스테이블코인을 둘러싼 논의도 마찬가지다. 따라 하기 전에 최소한의 기술적 현실을 직시해야 하지만, 시장은 여전히 유행을 좇는 데 급급하다. 과거에는 법이 기술을 억지로 끌고 갈 수 있었으나, 이제는 기술을 이해하지 않은 법은 실효를 잃을 수밖에 없다.


결국 문제는 “틀린 책”이 아니라 “시기적으로 부적절한 책”을 기준 삼아 변화하는 현실을 보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로 인해 잘못된 정설이 굳어지고, 진실은 왜곡된 정보 속에 묻혔다. 비트코인을 버블이라 말하는 이들이 있지만, 지난 8년간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한 것은 오히려 ‘블록체인 열풍’이었다. 튤립 버블의 비유는 비트코인이 아니라, 실체 없는 블록체인 만능주의에 더 가깝다. 이제 필요한 것은 유행이 아니라, 기술의 본질을 직시하는 냉정한 성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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