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필립 Dec 08. 2024

화폐를 꿈꾸는 암호화폐의 몰락

암호화폐 투자는 왜 실패하는가?


2008년, 사토시 나카모토는 현대 금융 시스템의 불합리성을 보완하기 위해 비트코인을 세상에 내놓았다. 이는 단순한 전자화폐가 아니라 지역화폐의 효율적 운영을 위한 탈중앙화 시스템이었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비트코인의 운영 방식은 화폐 발행권을 독점하던 중앙은행 시스템에 도전하며 금융 민주화를 꿈꾸었다.


이어 등장한 이더리움은 비트코인 운영의 기술적 한계를 극복하고, 일반인들도 손쉽게 자신만의 암호화폐를 만들 수 있도록 설계된 플랫폼이었다. 비트코인이 ‘디지털 금’이라면, 이더리움은 ‘디지털 세계의 프로그래밍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하며 암호화폐 생태계 확장의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15년이 지난 오늘날, 암호화폐는 그 본래의 이상과 달리 대부분 기존 화폐를 대체하려는 결제 도구에 머물렀다. 스테이블코인, 지역화폐, 마일리지 등으로 분화된 암호화폐들은 기부나 결제 등 특정 용도에 최적화된 형태로 발전해 왔다. 이런 시도들은 개별적으로 흥미로운 실험이었지만, 이들 암호화폐가 기존 화폐를 근본적으로 대체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최우선 문제는 법적 테두리와의 충돌이다. 암호화폐는 특정 국가에서 결제 수단으로 인정받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그렇지 않다. 법적 불확실성 속에서 암호화폐의 사용 범위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더 큰 문제는 암호화폐의 운영 방식이다. 비트코인은 탈중앙화를 통해 누구나 자율적으로 참여하며 화폐 발행에 기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다른 암호화폐는 중앙 주체가 사전에 대량의 화폐를 발행하고, 가치 상승을 부추긴 뒤 이를 매도하는 구조로 운영되었다. 이러한 방식은 초기 투자자에게는 막대한 이익을 안겨주었지만, 그 뒤를 이은 투자자들에게는 필연적으로 손실을 초래했다. 이는 많은 암호화폐 프로젝트가 ‘먹튀’라는 오명을 쓰게 된 주요 원인이다.


또 다른 본질적 문제는 암호화폐가 ‘화폐로서의 기능’을 상실한다는 점이다. 암호화폐의 가치가 지나치게 상승할 경우, 그 자체가 투자 자산으로 변질된다. 화폐는 본질적으로 교환의 매개체 역할을 해야 한다. 하지만 가치 변동성이 극심한 암호화폐는 거래나 교환 수단으로 사용되기 어렵다. 이는 암호화폐가 본래의 취지를 잃고 투기적 자산으로 변질되는 악순환을 낳는다.


결국, 화폐의 역할을 자처한 암호화폐는 그 비즈니스 모델 자체가 모순임을 드러낸다. 화폐로서의 안정성과 투기적 자산으로서의 수익성은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중앙집권적 운영과 과도한 가치 상승을 노린 암호화폐 프로젝트는 초기 비트코인이 지향했던 이상과는 거리가 멀다.


암호화폐는 현대 금융 시스템의 혁신적인 대안으로 등장했지만, 대부분이 본래의 취지에서 벗어나 투기적 자산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는 비트코인이 던졌던 금융 민주화의 메시지를 왜곡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진정한 혁신은 투기적 열망이 아니라, 비트코인이 처음 꿈꾸었던 탈중앙화와 금융 평등이라는 원칙으로 돌아갈 때 비로소 실현될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