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찾아서

소소한 근심거리를 하나씩 풀어가는 게 바로 행복이 아닐까.

by 빛글사랑

갑자기 네 번째 글감에서 글쓰기를 멈췄다. 주변을 돌아보니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빈껍데기가 된 것처럼 모든 게 낯설었다. 남들 앞에서 가식적으로 웃고 있었다. 마음은 불편하고 슬픈데 아무 일 없는 사람처럼 웃었다. 이게 바로 연예인들이 갖는 우울증일까. 남들이 보기에는 화려하고 행복해 보이지만 실상은 초라하고 빈 껍데기 같은 기분. 난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왜 이러고 있는지 초라했다. 내 마음을 갉아먹는 소리가 자꾸 귓가에 맴돌았다.


마음의 병이라고 했던가. 나의 MBTI는 ENFJ-T 형이다. 다른 사람의 문제에 개입해 해결하려고 발버둥을 치는 유형. 자신이 변화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에게 매우 불편한 존재가 될 것이다. 통찰력이 뛰어나지만 가끔씩 상황을 잘못 파악하거나 자신도 모르게 잘못된 조언을 건넬 수 있는 ENFJ형. 이런 위험한 단점은 가까운 사이일수록 강약 조절이 안 된다. 외향형이라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야 속이 편하다 보니 하고 싶은 말을 무심결에 쏟아부었다. 남편의 반응에 나의 치부가 드러난 듯 자기 검열을 했다.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우연히 만난 책은 제목부터 눈길을 끌었다. 『남편 성격만 알아도 행복해진다』 나도 행복해지고 싶었다. 본론에 들어가기 전부터 전남대 정신과 이무석 교수와 아버지학교 국제운동 김성묵 본부장은 추천사로 날 위로했다. 읽을 용기가 생겼다. 이무석 교수는 ‘틀려먹은 사람은 없다, 다만 다를 뿐이다’라며 부부 갈등의 원인은 서로 다른 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했다. 김성묵 본부장은 ‘성격차이가 아니라 무지가 문제다’고 했다. 서로가 서로에 대해 알아야 한다고. 상대방을 알지 못하고 사랑한다면 오히려 최악의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위협했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고 했던가. 힘들게 갈등하지만 끝내 헤어지지 못하고 회복하게 된다. 물론 무한 반복이겠지만. 1장의 소제목을 보는 순간 숨이 멈췄다. ‘내 아내는 불량품’이라니. 마치 나를 빗대어 이야기하는 양 얼굴이 빨개졌다. 남편에게 나도 불량품일까. K마크가 찍힌 정품이고 싶은데. 더 열심히 읽었다. 남편 작가는 처음에 생기발랄한 아내의 매력에 빠졌지만 결혼 후 충동적이고 덜렁대는 아내 모습에 힘들어했다.

문득 남편은 나의 어떤 매력에 사로잡혔는지 궁금했다. 그 매력을 다시 뽐내고 싶었다. 처음 만났을 때 내향형인 남편은 어색한 분위기를 없애기 위해 끝없이 이야기했다. 난 그저 남편의 말에 귀 기울이며 웃어주었다. 내향형이지만 남편은 나와 가장 많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었다. 다시 매력을 뽐내기 위해 남편이 이야기하면 눈을 마주쳤다. 점점 남편도 나와 눈을 마주치며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갈등이 사라지진 않았지만 서서히 약해졌다.


출산 후 이상하게 생리 전이면 작은 일로 다퉜다. 맛있게 먹은 저녁으로 이번에는 잘 넘어가겠지 했지만 역시 터지고 말았다. 동호회 유니폼 주문으로 피곤해 있던 남편이 최종 주문 내역을 나에게 말해주지 않은 게 화근이었다. 유니폼비를 이체하고 여자 회원들은 브이넥 파란색을 주문했다고. 대회에 나갈 때 함께 맞춰 입기 위한 유니폼인데 여자회원들과 맞추는 건 당연한데 나에게 얘기를 안 한 것이다. 처음부터 라운드넥보다 브이넥이 좋다고까지 이야기했는데. 나의 물음에 짜증 섞인 말투로 그것까지 이야기해야 하냐며 반문했다. 오고 가는 말에 감정이 실렸고 아들 앞에서 다투는 모습을 보이지 말자고 약속했기에 그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난 홀로 집 밖으로 나갔다.


다음 날 아침을 먹고 설거지를 한 후 도서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커피 한잔을 마시며 차분하게 어젯밤 일을 남편에게 문자로 보냈다. 남편은 내 문자에 그제야 기다렸다는 듯 사이즈와 색상을 한번 더 확인해서 이야기해 달라고 했다. 갑자기 더 화가 나고 얄미웠다. 어젯밤 무서움에 떨며 밤거리를 거닐던 내 모습이 떠올라 수긍할 수 없었다. 끝내 자존심을 내세우며 번거롭게 안 하고 싶다는 말과 함께 어젯밤 부부의 올바른 대화문을 예시로 써서 장문의 문자를 보냈다. '어젯밤 당신은 내게 토요일 여자들 유니폼이 라운드가 아닌 브이넥으로 변경된 걸 이야기 못 했네, 그럼 당신도 여자들이 맞추는 파란색 브이넥 유니폼으로 동일하게 바꿀 거야, 우리 가족유니폼으로 갈 거야,라고 물었어야 해요. 눈에 힘주며 내가 가족 유니폼으로 우긴 것 마냥 몰아붙이는 게 아니고요.'


나도 늘 부족하고 모자라서 지혜롭고 현명하게 대처하지 못했다는 문자와 함께. 5분 후 남편에게 답문이 왔다. 자기도 미안하다고, 당연히 이야기되었는지 알았다고, 경솔했다고, 사과했다. 다음부터는 확인을 더 하겠다고. 기쁨의 눈물이 흘렀다. 어젯밤 감정을 누르고 참은 나의 행동에 감사하는 것처럼 남편의 달라진 문자에 마음이 풀렸다. 내가 한 이야기를 인정해 주니 고마웠다. 책의 힘이었을까, 책에서 강조하는 게 대화와 타협이었다. 내 말만 맞다고 밀어붙이는 건 절대 위험한 행동이라고. 상대가 처한 상황과 기분도 배려해줘야 한다고 했다.


총무로서 유니폼을 맞추느라 주말 포함 바빴다.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수렴해야 하고 두세 번 주문을 수정하며 부탁하는 중간 입장에서 피곤하던 차, 마지막에 나까지 그 힘을 보탰다. 모든 화가 나에게 왔으리. 이해한다. 나는 행동과 문자로 남편이 불편해하는 지점을 조금씩 피해 갔다. 부부사이는 숙제다. 쉬운 문제가 있고 어려워서 꽉 막혀 풀지 못할 거 같은 문제도 있지만 분명 답은 있을 것이다. 책을 읽다 보니 난 이미 남편 성격을 알고 있었다. 이렇게 소소한 근심거리를 하나씩 풀어가는 게 바로 행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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