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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가족앓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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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글사랑 Jul 02. 2023

부모 자격증은 어디서 따나요?

정답 없는 부모 자격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 초년생 때 남편을 만났다. 일 년 연애 후 결혼을 했고 두 달 뒤 임신을 했다. 스물다섯 뭐가 그리 급했다고, 난 엄마가 되었다. 오산은 남편이 성공을 위해 정착한 곳이고 우리의 새 출발을 시작한 곳이다. 양재로 출퇴근이 멀었지만 정든 사람들과 헤어지는 게 싫어 장거리 출퇴근을 택했다. 퇴근 후 집에 일찍 오는 남편은 청소와 빨래, 저녁을 준비했다. 매일 여행하는 기분으로 오산과 양재를 오갔고 주말이면 남편은 도서관에서 공부했다. 낯선 곳, 낯선 사람들과 친해지지도 못했는데 남편은 아빠가 된다는 책임감에 자격증 공부를 시작했다. 임신 주기가 늘어갈수록 몸을 가누기 어려웠고 장거리 출퇴근 때문인지 태아가 아래쪽으로 내려와 있어 위험하다고 했다.


   막달이 되니 남편은 불안했는지 부모님과 합가 하자는 제안을 했다. 그렇게 나의 시집살이는 시작되었다. 맞벌이하는 며느리에게 모든 걸 챙겨주었지만 마음 한 구석은 외로웠다. 몸살로 아프기라도 하면 뭐가 그리 서럽던지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시부모와 합가 한 후 남편은 더 자유로워졌다. 마치 장거리 출퇴근이라는 왕관을 쓴 듯 회식이 잦고 일이 늦어지는 날은 자연스레 외박을 했다. 맞벌이한다고 어머니는 손자를 데리고 주무셨고, 남편이 없는 밤이면 눈물의 소설을 쓰다 잠들었다. 임신과 출산으로 몸뿐 아니라 마음이 축나기 시작했고 아들이 돌 되었을 때 체중이 10kg 이상 빠졌다. 갑상선 항진증이라고 했다. 약을 계속 먹어야 했고 6개월에 한 번씩 피검사를 받아야 했다.


   약을 먹는 동안 임신은 절대 안 된다고 했다. 아이 넷을 낳고 싶은 나에게 날벼락같은 이야기였다. 약 때문인지, 호르몬 때문인지, 일상은 우울했고 쳇바퀴를 돌 듯 하루하루를 사는 기분이었다. 이런 내가 신경 쓰였는지 남편은 퇴근 후 저녁 시간에 함께 운동을 하자고 했다. 어린 시절 테이블 사이에 휴지를 올려놓고 똑딱거리며 치던 탁구를 레슨 받으라고. 자세와 기본기부터 잘 배웠으면 좋겠다고 나를 계속 닦달했다. 레슨비가 비싼 점도 있지만 라켓과 운동화, 운동복 등 모두 사놓고 얼마나 할지 걱정이 되었다. 탁구장 분위기는 밝고 활기찼으며 밤의 신세계를 보는 기분이었다. 탁구는 두 명에서 네 명이 호흡을 맞추며 하는 운동이라 화기애애하고 승부욕으로 열기가 뜨거웠다. 20분 레슨 후 2시간의 운동시간은 금세 흘렀다. 운동이 끝나면 남편과 시원한 맥주를 마셨고 하루를 의미 있게 마무리하는 기분이었다.


   서서히 몸과 마음은 가벼워졌고 서른이 되었다. 아들은 엄마 아빠가 집에서 거울을 보며 스윙 연습하는 걸 옆에서 따라 했다. 아버님은 손자의 그 모습이 신기했는지 동네에 손잡고 나가 네 살 꼬마의 스윙 자세를 선보였다. 아들 덕분에 우리는 탁구 입문 일 년 만에 국가대표 탁구선수라는 소문이 돌았다. 소문 덕분일까. 탁구대회에 빈자리가 나면 대타로 나갔다가 실력은 안 되지만 파트너를 잘 만나 복식과 단체전에서 준우승을 하였다. 실력보다 자세로 기선제압을 해야 한다는 남편 말대로 레슨을 받고 매일 연습한 덕분에 탁구동호회 꿈나무가 되었다.


   탁구로 부부 사이가 좋아졌고 결혼 생활에 적응해 갔다. 주말이면 아버님 손님으로 집안은 늘 북적거렸고 아들은 어른들의 사랑 속에 무럭무럭 자랐다. 네 살은 뭐든지 재능이 된다. 아들이 쓰레기를 주면 쓰레기통에 가서 버리고 오는 것에 재미를 두고 있었는데 어른들이 쓰레기를 줄 때마다 쓰레기통에 가서 버리고 와 혼자 잘했다고 손뼉 치는 모습이 얼마나 귀엽던지. 반복되는 행동이지만 아이가 품어내는 빛과 에너지는 집안 가득 사랑으로 채웠다. 말이 늦어 재잘재잘 말하지 못하는 답답한 상황을 나는 늘 대신 이야기 하듯 설명해 줬다. 그럴 때마다 환하게 웃는 아들의 표정이 얼마나 해맑던지. 역시 우리 엄마는 내 마음을 안다는 표정으로 웃어주었다.


    그림책도 열심히 읽어주었다. 잘 때 읽는 그림책은 열 번을 읽어줘도 또 읽어달라고 해서 외울 정도였다. 다섯 살이 되고 처음 말을 하기 시작했을 때 그 그림책을 통으로 외우는  바람에 남편은 아들이 글자를 읽는 줄 착각했다. 아들은 모든 게 느렸다. 말을 하기까지 얼마나 혼자서 노력했는지 느낄 수 있었다. 늦은 말이 터지자마자 우리를 놀라게 하는 유창한 언변으로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하였다. 아이는 한 단계씩 성장하기 위해 넘어지고 일어서는 과정을 반복했다. 그 과정을 알기에 빛나는 순간을 맞이할 때마다 울컥하여 눈물이 났다. 이렇게 함께 웃고 울며 나는 부모 자격을 쌓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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