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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글사랑 Dec 06. 2023

성북동에 남긴 발자취

난 내가 가진 것에 얼마나 감사하는가

11월 2일 법정스님의 무소유 덫에 빠졌다. 매일 한 편의 수필을 찍어서 올리는 문우 덕분에 우리는 마법에 걸렸다. 법정스님은 어떤 분일까. 성북동 문학탐방에 대한 호기심은 부풀어갔다. 바빠서 몰아 읽는 사람, 매일 수필 한 편으로 하루를 여는 사람. 온화하고 따스한 법정스님 글은 나와 주변을 돌아보게 하였다. 그렇게 하루하루 깊어졌다.


드디어 12월 2일. 오래 기다리고 준비한 만큼 떨렸다. 한성대 입구에서 버스를 타기 위해 신호를 기다리는데, 하늘은 파랗고 버스도 신호대기에 걸려 우리를 기다렸다. 첫 시작부터 순조로웠다. 처음 간 곳은 성북동의 맨 끝자락에 있는 우리 옛돌 박물관이었다. 작품을 보기 전 ‘돌이 뭐가 그리 중요하다고 박물관까지 만들지'라고 생각했다. 우리 것을 지키기 위해 바다를 건너온 돌사람들. 고향에 돌아온 듯 표정이 온화했다. 눈과 코, 곳곳이 닳아 뭉개졌지만 선조가 지키고자 한 삶의 철학과 지혜는 고스란히 전해졌다. 돌박물관 입구에 늠름하게 서 있는 범의 둥근 눈과 코는 정겨워 웃음이 나오기까지 했다.


겨울이라 추웠지만 돌조각 사이에 심어진 무궁화가 온기를 더했다. 무궁화는 추운 날씨에도 돌을 지키고 있었다. 정상에 오르니 큰 라일락 나무가 서 있었다. 라일락 꽃향기만 맡았지 나무를 본 건 처음이었다. 우리는 봄이 되면 라일락 향기를 맡으러 다시 오자고 약속했다. 뒤돌아 내려오는데 바람결에 라일락 향기가 나는 것 같았다.


길상사에 가기 위해 걸었다. 주말 아침이라 인적이 없었다. 산과 나무, 작은 개울은 성북동의 깊은 역사를 말해주었다. 오래된 만큼 지금 볼 수 없는 귀한 것이 눈에 띄었다. 크고 웅장한 고급저택이 아기자기한 자연을 품고 있어 더 멋스러웠다. 어디선가 나무 타는 냄새가 났다. 마음까지 따뜻했다. 두 번째 간 길상사지만 겨울은 처음이었다. 발걸음은 법정스님 유골을 모신 진영각으로 향했다. 단정한 소품은 그의 성품을 말해주었다. 백석의 여인 자야는 무소유의 어떤 점에 반했을까. 부와 지성을 겸비했지만 크게 버리고 크게 무엇을 얻고 싶었을까. 부를 손에 넣고도 더 많은 걸 얻으려는 물질만능주의는 우리를 더 피폐하게 만들고 있다.


옛 돌, 옛것. 선조의 지혜는 알아야 볼 수 있다. 딱딱하고 거친 돌이 비바람에 예술품이 되는 것처럼 때론 비바람도 견뎌야 한다. 내가 흘린 눈물이 헛되지 않게 난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얻고 싶은가. 고즈넉한 거리에 자리한 가게들은 튀지 않고 아기자기한 자연물처럼 작고 정갈했다. 각각의 개성을 품고 그 자리를 지키듯. 난 내가 가진 것에 얼마나 감사하며 살고 있는가. 하루를 보내고 내려오는 길목이 아쉬웠다. 마음이 무겁고 탁해지면 모든 걸 벗어던지고 다시 찾아오리라.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가벼워졌다. 무언가 시작하고 픈 힘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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