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작가양성독서회에 왔던 저를 떠올려 봅니다. 무엇을 써야 할지 늘 고민이었습니다. 주어진 글감을 찾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고 생각을 끄집어 내려했지만, 제 안에 숨겨진 나와 마주하는 건 어려웠습니다. 그때 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지조차 몰랐습니다. 저는 가면을 쓰고 과제에 충실하듯 남들에게 보여주기 식으로 글을 쓰고 있었습니다. 제 글에 제가 없다는 걸 저만 몰랐습니다. 글을 쓸수록 빈껍데기가 드러났습니다.
감정을 억누르고 참는 게 미덕이라 배웠습니다. 누구에게도 말 못 한, 가슴속에 묻어놓은 이야기 꼭지를 하나씩 써 내려갈수록 감정은 눈물되어 녹아내렸습니다. 감정의 알갱이가 너무 커 부담스럽고 불편하기도 했지만 서서히 숨통이 트였습니다. 목이 메어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던 감정을 글에 담다 보니, 평온이 찾아왔습니다. 실타래처럼 뒤엉켰던 일상이 제자리를 찾아갔고 그제야 제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지쳐가는 일상 속에서 글은 생기를 불어넣어주었고 삶에 애착을 갖게 하였습니다.
그 애착 덕분에 일상이 새로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을 기록하고 싶었습니다. 모두가 소중하게 다가왔습니다. 글은 절대 의무적으로 써서는 안 되지만 꾸준히 써야 결실을 맺을 수 있다는 것을 글을 쓴 지 오 년이 되어서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겪은 슬픔과 아픔, 기쁨과 행복이 흔적 없이 사라져 허무했습니다. 매주 주어지는 작가양성독서회의 글감 덕분에 흩날리는 감정은 씨앗이 되었습니다. 감정 씨앗은 합평과 첨삭을 통해 영양분을 받았고 여러 번 퇴고로 작품이라는 열매를 맺었습니다. 민들레꽃이 지고 홀씨가 되어 멀리 날아가듯 자유로운 기운은 저를 꿈꾸게 해 주었습니다.
어느 날 우연히 SNS에 글을 올렸습니다. 용기 내어 전체공개도 하였습니다. 얼굴을 모르는 이들이 제 글에 깊이 공감하며 응원해 주었습니다. 막연하게 갖고 있던 SNS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자 새로운 공간을 맞이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한 명의 선한 영향력은 저에게 큰 파급 효과를 주었고, 서서히 제 마음의 문은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한 명, 두 명 댓글로 공감하는 메시지가 오자 제 글이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독자를 배려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롯이 저를 위한 글이 아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생각이 확장되는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어디서든 마음이 통하는 사람을 만나면 소통할 수 있다는 걸 배웠습니다. 하나씩 선입견의 벽이 허물어졌습니다.
서서히 저를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드러낼수록 얕은 지식도 드러났습니다. 이때 책은 제가 꾸준히 글을 쓸 수 있는 용기를 주었습니다. 저만의 세상에 갇히지 않고 밑바닥까지 제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게 말입니다. 문학을 더 일찍 알았더라면 덜 아팠을까요. 그동안 묵혀둔 작품을 하나씩 꺼내 읽기 시작했습니다.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감이 오지 않는 작품도 있었습니다. 읽고 또 읽었습니다. 언젠가 고치고 고치다 보면 제가 말하고자 했던 의도가 선명해지지 않을까요. 눈에 보이지 않지만 글을 쓰면서 마음으로 보는 법을 배웠습니다.
처음 작가양성독서회에 오던 날이 생각납니다. 글을 쓸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 몹시 설레었습니다. 엄마와 며느리로 살면서 꿈을 꿀 수 있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제 안에 싹튼 꿈 덕분에 행복했습니다. 최명숙 선생님의 문학 자양분과 문우들의 따스한 햇살 조언은 풍성한 잎으로 광합성할 수 있게 도와주었습니다. 2023년, 7년 차 <그린에세이> 문학 전문지 신인작가에 당선되었습니다. 혼자서 절대 할 수 없는 기적을 수정도서관 작가양성독서회에서 이뤄주었습니다. 수정도서관 3층 모두의 공간에는 지역 작가들의 저서가 꽂혀 있습니다. 그들의 강연을 듣고 저서를 읽으며 저도 성남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꾸었습니다. 오늘이 처음이란 생각으로 다시 시작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