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르익기 위해 10년, 15년을 투자해야 한다면. 난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10년간 꾸준히 한 경험이 무엇인지 떠올려 본다. 다이어트, 편지 쓰기, 일기 쓰기, 직장 다니기, 탁구, 독서모임, 글쓰기 대회 참가, 교육시민 활동이 있다. 나열된 이 경험들 속에서 무엇을 얻고 성장했는지 유심히 들여다본다. 고등학교 때 외모에 관심이 생기며 지금까지 꾸준히 한 다이어트는 나를 관리하게 하였다. 일기와 편지 쓰기는 수줍음 많은 나에게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였다. 직장뿐 아니라 인연을 맺고 크게 문제가 없으면 꾸준히 이어가는 편이라 첫 직장을 10년 다니다 회사 어려움으로 문을 닫는 바람에 그만뒀다.
첫 직장을 잃고 세상의 쓴맛을 보았다. 돈의 더러움과 치사함, 굴욕감을 맛보며 세상이 호락하지 않다는 걸 알았다. 일개 직원들이 아무리 노동청에 고발을 해도 돈 있는 자들은 끄떡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맛보았다. 그 후 우울증에 빠져 있을 때 남편의 권유로 탁구를 시작했고 다양한 사람들이 공존하는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탁구와 독서모임, 교육시민 활동 등 정적이었던 난 점점 동적인 사람으로 변했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도 말랑해졌다. 만약 한 직장에서 계속 근무하고 있었다면 지금도 쳇바퀴 돌아가듯 내가 아는 세상 안에서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넘어져 본 경험 덕분에 주변을 둘러보게 되었고 억울하고 약한 자들의 심정을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건 모험이다. 탁구와 독서모임, 글쓰기 대회와 교육 시민활동은 모든 게 처음이었다. 일도 모르는 낯선 분야에서 하나씩 쌓아가는 단계였기에 늘 조심스럽고 초조했으며 분위기를 읽어가며 눈치껏 배웠다. 이를 잘하기 위해 홀로 시간을 들여야만 했다. 거울을 보며 스윙 연습을 하루 백 번씩 했고, 이해 안 가는 책에 빠져들기 위해 조금씩 읽는 습관을 들였다. 수십 번 떨어지는 글쓰기 대회에 참가하며 창피하기도 했지만 용기를 내었고 교육 분야에 문외한이기에 매주 회의에 참석해 귀동냥을 했다. 모르는 것은 절대 부끄러운 것이 아니란 걸 배웠고 꾸준히 시간을 들이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하지만 새로운 분야를 다시 시작하는 건 역시 낯설다.
이제 더 이상 들여다보기만 해서는 안 된다. 진짜 나를 만나기 위해 나를 가꾸는 시간이 필요하다. 무엇부터 해야 할까. 그동안 내가 축적한 것이 무엇인지 들여다보자. 우선 책상과 책장 정리를 하고 USB에 담긴 폴더 및 블로그 카테고리 정리도 해야겠다. 온오프라인이 어느 정도 정리되면 마음이 가벼워질 수 있을까. 지금 나를 억누르는 감정에서 벗어나고 싶다. 남이 아닌 나로 살고 싶다.
책장을 정리한 후 제일 먼저 읽고 싶은 책이 있다. 처음 글쓰기를 배울 때 읽었던 나탈리 골드버그의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이다. 초심으로 돌아가 다시 읽어보고 싶다. 2017년 3판 8쇄 발행 본에 줄 긋고 포스트잇 붙여진 책을 보니 열정적으로 읽었던 그 시절이 떠올랐다. 전 세계 독자들을 사로잡은 혁명적인 글쓰기 방법론이라 했지만 소제목에 구분이 없어 내가 연필로 1장 글쓰기와 친해지는 단계, 2장 친구 되는 단계, 3장 멀리 보는 단계, 4장 깊어지는 단계라고 써 놓은 게 눈에 띄었다. 다시 읽을 땐 눈으로 읽는 게 아닌 마음에 새겨보려 한다. 이 시간들을 통해 글쓰기와 진정한 친구가 되어보려 한다. 2023년 5월 스터디 플래너의 슬로건은 ‘말보다 행동으로’이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 브런치 작가에도 도전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