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3차원을 넘어 4차원이다. 남편이 술 먹고 한 농담을 진심이라 믿었다. 그동안 쌓였던 분노가 종지부를 찍는 줄 알았다. 뿌리까지 뽑아내기 위해 한 마디 꺼냈다가 그 사실이 거짓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대화가 물 흐르듯 다른 주제로 넘어가는 바람에 거짓에 대해 따지지 못했다.
남편 핸드폰을 몰래 보았다. 전자책을 보다가 잠이 든 남편 핸드폰을 충전해 주기 위해 만졌다가 우연히 본 카카오톡. 아무리 봐도 숨기는 게 없고 찔리는 게 없는 정직한 사람이다. 오히려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본다면 내 카카오톡과 문자는 싸움의 원인이 되고, 나의 오지랖은 부부의 불화를 키울 소재가 짙다. 그런 내 눈에 띈 단체 사진. 동호회 마지막 술자리에서 찍은 단체사진에 꽂혀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그 사진을 물고 늘어진 나의 상상은 나만의 착각이었다. 타 동호회 지인이 찍어 남편에게 보내준 사진을 바로 공유했기에 남편 갤러리에 남을 리 없었다. 남편이 올린 사진이 갤러리에 남아야 하는데, 지웠다고 의심했다. 내가 사진 찍자고 하면 억지로 몇 번 찍어주는 게 다였기에 사진 한 장으로 소설을 써 내려갔다. 내 추측이 거짓이란 게 드러나자 쥐구멍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남편은 이때다 싶었는지 말을 꺼냈다.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기승전결 중 결에 연연한다고. 그게 나의 단점이라고. 기승전결이란 단어에 재미난 대화가 시작될 거 같아 설렜던 마음은 단점이라는 말에 싸늘하게 식었다. 그래도 들어야 했다. 그동안 내가 거짓으로 씌운 프레임 안에서 가해자가 된 남편은 얼마나 억울했을까. 본인이 의도하지 않은 억측 같은 상황을 받아들이며 얼마나 불편하고 화가 났을까.
밤 10시가 넘어 집으로 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는데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내가 약속이 있어 밖에 나가면서 전화 한 통 안 하는 남편에게 무심한 거 아니냐며 서운해하곤 했다. 늦은 시간 걱정이 되어 전화한 줄 알고 반갑게 남편의 전화를 받았다. 힘들게 야근하고 집에 왔는데 내가 없어 서운했다고. 남편이 모임 갔다 밤 10시가 넘으면 집에 언제 오냐고 닦달하던 내가 생각났던 모양이다. 모임에서 와인을 마셔 기분이 좋은 터라 그런 남편의 불편한 어투는 들리지 않았다. 나는 항상 이런 식이었다. 내 기분대로 모든 상황을 해석하고 판단했다.
남편이 불편하다고 말할수록 내가 보이기 시작했다. 남편은 오해했던 상황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했고 난 조금씩 착각 속에서 벗어났다. 언제나 솔직하게 말하는 남편의 이야기를 내 방식으로 해석하며 들었다. 이 문제의 원인은 나였다. 곰곰이 생각하니 난 어릴 적부터 착한 아이였다. 내가 정한 기준에서 벗어나지 않았고 벗어나면 큰일 나는 줄 알았다. 모두의 생각이 같을 수 없고, 원하는 바가 다를 수 있는데 난 그걸 강요하고 있었다. 남편이 우리의 대화를 물 흐르듯 다른 주제로 넘긴 건 내가 더 이상 상처받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나와 조금씩 대화하기 시작했다. 내가 사실이라고 믿는 사실이 거짓일 수도 있다. 뾰족하게 던지던 말속에 담긴 의미가 보이기 시작했다. 사실은 사랑받고 싶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