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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의 바다를 헤엄치는 AI

연세대 경영혁신학회 27기 김재민

    코로나 19가 확산된 이후,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코로나 19 치료제나 백신의 개발 여부에 관심을 가졌을 것이다. "어떤 제약 회사가 임상을 시작했다더라, 어떤 물질이 치료에 큰 도움을 줬다더라" 하는 제목의 기사가 있으면 한껏 기대감을 가지고 클릭하곤 한다. 하지만 결국 아직도 상용화까지는 적어도 몇년이 걸릴 거라는 사실만 알고서 시무룩해서 나오기 마련이다. 이런 기사를 몇번 관심을 가지고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신약을 개발하는 일이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리면서도 엄청난 비용이 드는 일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기업은 "신약 개발은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일이다"라는 인식을 깨부수며, AI를 통해 신약 개발을 빠르고 저렴하게 하는 소프트웨어를 운용하는 기업 '슈뢰딩거'다.


출처: 한미약품(일반적인 의약품 개발 단계)

전통적 신약 개발 프로세스: 시간이 필요해!


    신약 개발 프로세스를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많은 경우 '질병의 원인이 되는 타겟 분석 - 후보 물질 발굴 - 전임상 - (1~3차) 임상 - FDA 승인'의 순서를 따른다. 우선 질병의 원인이 되는 타겟에 대한 분자 생물학적 연구가 끝나면, 그 타겟을 공략하는 후보 물질들을 선정하기 시작한다. 후보 물질을 선정하는 과정은 실험실에서 분자들을 직접 합성하는 실험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수많은 화학 물질들을 조합해보며 어떤 물질들의 조합이 질병에 효과가 있는지를 일일히 분석하는 것이다. 때문에 평균 5~6년이라는 긴 시간이 소요된다. 후보 물질들 중에서 유력한 것들을 선정해 전임상 단계에 들어가는데, 전임상에서는 대부분 동물에게 먼저 약물을 투여해 효과를 테스트한다. 그 뒤에는 실제로 우리가 '임상 몇차~'라고 부르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 약물 투여 단계가 시작된다. 점점 사람의 수나 범위를 늘려가면서 임상을 진행하며, 수차례 임상에서 그 효과를 인정받으면 공식적으로 인증을 받고 생산/유통되는 것이다.


    신약 개발의 과정 속에서 가장 중요한 건 '후보 물질 발굴' 단계라고 생각한다. 셀 수도 없이 많은 화학식 속에서 질병 치료에 효과가 있는 물질을 찾는 건 신약 개발의 가장 근본적인 목표라는 간단한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중요한 단계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비용이 많이 들고, 사람이 실험하는 경우엔 각 후보 물질 간의 비교가 어렵고, 후보 물질들을 선정한 뒤에도 임상에서 문제가 있으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야 한다. 후보 물질을 찾아내는 과정이 빨라지면, 신약을 개발하는 전체 시간이 단축될 가능성은 당연히 올라갈 것이다.


출처: 슈뢰딩거 홈페이지(슈뢰딩거의 프로그램을 통해 후보군을 추리는 과정. 1-2일 정도로 빠른 선별을 보여줌)

신약 개발, 조금 더 빠르게 할 수는 없을까?


    이 질문에, 슈뢰딩거가 답을 하고 있다. 슈뢰딩거는 1992년 창립된 기업으로, 꽤나 역사가 오래 됐다. 화학 물질들을 AI나 물리 기반 머신러닝 과정을 통해 조합해 새로운 화합물을 만들고, 그 효과를 예측하는 'Glide'나 'FEB+'같은 소프트웨어를 판매하는 회사다. 'Glide'같은 경우 신약 후보군과 실제 단백질의 결합 여부와 정도, 모양새를 계산해주는 프로그램이고, 'FEB+'는 신약 후보군과 단백질, 체내 수분이 뒤섞이기 전후의 자유 에너지 변화량을 계산해주는 프로그램이다.


    'Glide'나 'FEB+', 그리고 슈뢰딩거의 다른 소프트웨어들은 서로 상호 보완적으로 작용한다. 프로그램들을 순차적으로 사용하면서 차례로 후보 물질들을 솎아내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AI 소프트웨어를 위에서 언급한 '후보 물질 선정' 단계에 이용하고 있다. 기존 약 5~6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다면, 슈뢰딩거의 소프트웨어를 활용해 빠르면 2~3년 안에 사람이 직접 실험하는 것과 비슷한 좋은 결과물을 낼 수 있다고 한다. 실험실에서 직접 실험하는 전통적인 방법으로는 1년에 약 1,000개 정도의 결과를 확인할 수 있는 반면, 슈뢰딩거의 프로그램으로는 한 주에 수억 개의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또한 후보 물질이 한 타겟에만 영향을 주는지, 다른 기전에도 영향을 끼치는지, 화합물의 용해성이나 대사 과정은 어떤지에 대한 다각적인 분석까지 할 수 있다. 시간을 절약하면서 자연스럽게 후보 물질을 찾는 비용도 절반 가까이 줄일 수 있다고 한다.


    슈뢰딩거는 현재 약 1,266 군데에 그들의 소프트웨어를 판매하고 있고, 고객들과는 평균 15년 수준의 긴 계약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다양한 곳에서 시시각각 데이터가 축적되고 있기 때문에, 슈뢰딩거의 AI 소프트웨어가 가지는 힘은 나날이 늘어갈 것이다. 또한 자체적으로 신약 개발도 하고 있는데, 현재 암 관련해서 5개의 물질을 실험 중이다. 2021~22년에 임상 1상 진입을 목표로 하고 있다.


출처: 슈뢰딩거 공식 유튜브(슈뢰딩거 프로그램의 구동 모습. AI에 입각한 분자 시뮬레이션 방식)

슈뢰딩거의 마법


    슈뢰딩거의 소프트웨어는 AI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 더 많은 화합물 합성 데이터가 쌓일 수록, 후보 물질을 찾고 선별하는 과정은 점점 빨라질 것이다. 즉, 지금은 약 2~3년의 시간이 걸리지만, 머지 않은 미래에는 단 몇 달, 아니 며칠 만에 후보 물질을 찾아낼 것이다. 신약 개발 속도가 향상되면, 자연스레 팬데믹에 대한 인간의 빠른 대처가 가능해질 것이다. 코로나 19가 퍼지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다음 팬데믹에 대한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 팬데믹이 닥쳤을 때 가장 중요한 건 '얼마나 빠르게 치료제/백신을 개발할 수 있는가?'여부이다. 팬데믹 기간이 길어지면 자연스럽게 전 세계의 정치/경제/사회/문화에 엄청난 타격이 가해지는데, 빠른 신약 개발은 이런 전 분야의 회복 탄력성을 향상시키는 데 크게 일조할 것이다.

*참고로 길리어드, 노바티스, 다케다 같은 제약 회사에서 슈뢰딩서 프로그램으로 코로나 치료제를 찾고 있다.


    또한 슈뢰딩거의 프로그램을 통해서 미리 다양한 후보 물질을 만들어 언제든 닥칠 수 있는 미래를 대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질병이 생긴 후에 그것을 분석해서 치료제/백신을 만드는 것을 넘어 미리 다양한 후보 물질들을 준비해 추후 어떤 질병이 발생해도 대비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즉, 질병에 효과가 있는 후보 물질을 '탐색'하는 것이 아니라 미리 준비해둔 여러 후보 물질들에서 '선택'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이 실제로 가능해진다면, 신약 개발 과정 중 '후보 물질 탐색' 단계가 더욱 줄어들지 않을까.


    그리고 AI를 통한 화학 물질 합성 프로그램은 신약 개발에 활용되는 것을 넘어 더 많은 범주의 실험을 가능하게 하지 않을까. 예를 들어 대체육/GMO 등 식품 합성 실험에 이용하거나, 각종 광물을 화학적으로 생산하거나, 새로운 화학 소재를 개발하는 데에 사용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화학 물질의 합성이 필요한 모든 곳에 슈뢰딩거의 소프트웨어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아직은 신약 개발 분야에만 사용되고 있어 확장 가능성에 대한 확신을 할 수는 없지만, 화학 물질을 합성하는 범용 소프트웨어로 발전할 가능성도 개인적으로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슈뢰딩거 홈페이지에 있던 문구를 소개하면서 글을 마치려고 한다. 이 문구를 통해서 아직 인류가 가진 숙제를 체감할 수도 있고,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기대할 수도 있을 것이다.


    "화학 물질들이 퍼져 있는 '화학 우주'를 상상해보라. 인류는 화합물에 대해서 지금까지 한 방울의 물방울만큼 밖에 발견하지 못했다. 그 한 방울에 혈압약과 핸드폰 기술이 녹아 있다. 우리가 스마트하게 조합을 찾을 수 있다면, 가능성은 실로 무궁무진하다."




연세대 영어영문 김재민

kimjaemin7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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