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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고유의 영역을 넘보다, AI 예술가

연세대 경영혁신학회 28기 이민희


AI가 정복할 수 없는 영역이 존재할까


   더 이상 ‘4차 산업혁명 시대’라는 말은 우리에게 새롭지 않다. 세계적인 프로 바둑 기사가 알파고에게 패배했다는 사실도 이제는 받아들일 만하다. AI(인공지능, Artificial Intelligence)가 지금 얼마나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지는 가늠하기도 어려운 현실이다. 인간보다 훨씬 빠르고 정확한 연산능력을 가진 AI는 산업, 계산, 연구, 노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으며, 나아가 충분히 인간을 대체할 수도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다만 사람들은 아직까지 AI가 결코 정복할 수 없는 분야가 있다고 말한다. ‘예술’, 인간의 감정과 창작을 바탕으로 시작되고 완성되는 이 영역만큼은 AI로 대체될 수 없다는 견해가 많다. 스스로 감정을 느끼고 직접 창작하는 과정은 인간과 기계를 구분 짓는, 인간 고유의 영역이라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견고했던 우리의 예상이 깨질지도 모른다. 실제로 AI가 그린 그림, AI가 작곡한 음악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AI는 정말로 정복할 수 없는 영역이 없는 것일까. 지금까지 인간 고유의 영역이라 여겨졌던 예술마저 정복하러 나선 것일까. 


구글의 AI화가 '딥드립'이 그린 그림(좌측)과 AI작곡가 '에밀리하웰'의 디지털 싱글앨범(우측) [출처: 시사위크]


   구글이 만든 AI화가 ‘딥드림(Deep Dream)’, 세계 최초로 경매장에 나와 높은 가격에 낙찰된 미국 AI화가 ‘오비어스(Obvious)’, 미국 UC산타크루즈 대학교 데이비드 코프 교수진이 개발한 AI작곡가 ‘에밀리 하웰’(Emily Howell)‘, 룩셈부르크의 스타트업 에이바 테크놀로지의 AI작곡가 에이바(Aiva)’.     

   미술부터 음악까지, 우리의 예상과는 다르게 AI 예술가는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이들은 수많은 데이터를 분석하여 스스로 예술 작품을 창조하고, 딥러닝 알고리즘에 기초하여 최적의 행동을 새롭게 선택하는 과정을 통해 나름의 창작물을 만들어낸다.



세계 최초 AI와 인간의 예술 협업, 아이아(AI.A)


   여기 AI 예술가의 '존재'에서 더 나아가, 인간 예술가와 '합작'을 한 세계 최초의 사례가 있다. 국내 AI 딥러닝 스타트업인 ‘펄스나인(Pulse9)’의 AI 아트 갤러리 ‘아이아(AI.A)’에서 이루어진 일이다. 아이아는 AI와 인간의 협업을 뜻하는 ‘AI X HUMAN’ 모토로 설립된 예술 플랫폼이며, 인간과 AI가 만나는 지점에서 다양한 창작 활동을 도우며 실험적 협업을 모색하고 다양한 예술 시도를 지원하는 곳이다.

   아이아는 앞으로 AI 장르에서 활동할 작가를 발굴 및 지원하고 그 속에서 탄생한 작품을 해외에 소개할 예정이라고 밝혔으며, 작년에는 실제로 자체 개발한 AI 화가 ‘이메진AI’와 실제 화가가 공동으로 작업한 작품을 공개한 바 있다.

      

   현재 아이아는 2020년 6월 15일부터 내년 6월 15일까지 열리는 제 1회 ‘찾아가는 AI아트갤러리’ 전시를 금융감독원 9층에서 진행 중이다. 바로 이곳에서 화가 두민과 AI 화가 ‘이메진AI’가 협업해 독도를 그려 큰 화제를 모은 ‘Commune with...’의 판화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화가 두민의 말을 빌려 소개하자면 이 작품은 AI와 인간, 기술과 예술, 추상과 구상이라는 세 가지의 경계를 하나로 나타낸 결과물이다. 서로의 각기 다른 형식의 작품이 하나의 작품으로 형상화되면서 AI와 인간의 무형의 경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주어진 ‘경계’의 키워드를 시각화한 것이다. 

   아래 두 개의 작품에서 수면위 지상의 독도는 두민 작가가, 수면에 비치는 독도는 이메진AI가 담당했으며 서로 다른 기법으로 그림을 그려냈다. 예컨대 좌측 작품에서 두민 작가는 서양화 기법으로, 이메진AI는 동양화 기법으로 표현했으며 교차 부분은 두민작가가 동서양 혼합 표현으로 그림을 완성해냈다. 우측 작품에서는 두민 작가가 붉은색 드로잉재료로, 이메진AI가 푸른색 드로잉재료로 그림을 그렸다. 수면아래 부분인 AI영역을 먼저 이메진AI 아트 알고리즘 과정을 거쳐 한지 위에 인쇄 작업 후 작가에게 건네 오면, 그 작업 위에 수면 윗부분인 작가영역을 두민 작가가 표현했고, 중간영역인 수면영역은 AI와 작가영역의 교차지역으로 붉은색과 푸른색의 혼합색인 보라색이 되도록 두민 작가가 마무리했다.


두민과 이메진AI의 협업 작품 'Commune with...' [출처: 아이아 공식 홈페이지]


   이러한 새로운 시도를 해낸 아이아의 행보는 크게 세 가지로 설명될 수 있다. 위에서 살펴본 전시회와 같은 AI 아트 갤러리를 열고, AI 화가의 미술품 경매를 진행하기도 하며, AI 관련 아트 클래스를 실시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해나가고 있다. AI의 딥러닝 기술을 예술에 어떻게 구현해낼 것인지, AI가 어떻게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구현할 수 있으며, 이를 어떻게 인간이 가진 능력에 융합하여 새로운 예술의 세계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끊임없이 하고있는 것이다.


아이아에서 진행중인 아트 갤러리, 미술품 경매, 아트 클래스 [출처: 아이아 공식 홈페이지]



대체가 아닌 상생


   그렇다면 아이아가 이러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계속해서 새로운 시도를 하고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 예술가를 AI로 대체하기 위함일까? 아니다. 그들은 오히려 AI와 인간의 상생을 통해 인간 예술가에게 새로운 자극을 주고자 한다. 이와 관련하여 앞서 소개한 두민 화가의 말을 빌려 설명해보겠다.


   "예술가와 AI 서로는 결국 물리적으로 구분이 명확히 되고 어쩌면 아직까지 현시점에서 두 존재는 공존할 수 없는 한계가 뚜렷해보인다. 어쩌면 이미 다가올 미래에는 공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미술에서 AI라는 존재의 등장은 미술사에서 사진기의 등장과도 같다고 볼 수 있다. 사진기가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 이제 인간이 그리는 그림은 더 이상 존재의 가치를 잃어버릴 것이라 했지만 예술가들은 이를 계기로 사진기가 담아낼 수 없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새로운 미술 사조를 탄생시켰다. (인상파, 추상표현, 초현실주의)처럼."


아이아의 AI 화가, '이메진AI' [출처: 아이아 공식 홈페이지]


   이처럼 두민 화가는 AI가 인간 예술가를 대체할 것이라고 걱정하기 보다는 오히려 새로운 예술의 흐름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이 배경에는 아직까지 AI를 인간과 유사한 수준의 '창작주체자'로 보기 어렵다는 견해들이 자리하기 때문인 것으로 판단된다. 김재인 비교문화연구소 교수의 말을 인용하자면 아래와 같다.


   "인공지능AI가 아무리 높은 수준의 창작물을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예술작품 창작'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십분 양보해서 AI의 창작물을 예술작품이라고 인정하더라도 AI를 창작주체로 인정할 수 없습니다. AI는 작품을 무작위로 내놓을 뿐 스스로 평가할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창작이라는 말이 성립하려면 자신이 내놓은 작품에 대한 평가가 필수적이기에, 평가 능력이 없는 AI는 작가가 사용하는 도구에 불과합니다."


   김재인 교수의 의견과 같은 맥락에서, 실제로 아이아는 AI와 인간의 협업 프로젝트의 목적이 인간과 AI의 공존에 있다고 밝혔다. AI는 예술가의 노동력을 대신하고, 인간은 예술가로서 사회적 지성과 창조적 지능을 개발한다. 따라서 AI로 인하여 인간이 설 자리를 잃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인간 예술가만이 할 수 있는 '능동적 발상, 선택, 결정, 평가' 등의 가치에 대해 새로이 인식할 수 있는 계기를 인간에게 부여한다. 즉 AI는 기존에 존재했던 예술에 대한 관점을 적극적으로 파괴하는 데 도움을 주고, 인간에게 상상력을 자극해주며, 인간에게 또 다른 미술도구를 선물해주는 것이다.


   이처럼 AI와 인간은 서로 경쟁의 상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상생과 보완의 관계로서 함께 발전해나간다. 역사적 흐름 속에서 예술가들이 다른 예술가와 협업을 진행해왔던 것처럼, AI도 하나의 예술가로서 자리를 잡고 다른 예술가와 협업하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정신을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 AI의 기하급수적인 발전을 보며 인문학도로서 걱정이 많았던 게 사실이다. 'AI가 결국 인간을 대체하면 어쩌지?', '시간이 지나면 아이로봇처럼 AI가 인간을 지배하는 게 아닐까?'하는 무능력한 상상도 해봤다. 하지만 아이아의 행보를 지켜보며 이러한 우려에 잠기기 보다는 새로운 배움을 얻게 되었다. AI가 현재 인간의 영역을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공존을 통해서 인간에게 또 다른 자극을 전달하고, 사회의 발전을 위한 소중한 가치로 작용할 것이라고 믿는다.



연세대 불어불문 이민희

2mini0315@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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