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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님! 새로 온 수석코치인데요, 사람이 아닙니다.

연세대 경영혁신학회 28기 윤재이

[제목 사진 출처 : 프로그래머스]


좋은 코칭스태프는 필수


무리뉴 감독과 그의 오른팔 사크라멘투 수석코치. [출처 : Spurs Web]


지난해, 세계적 감독 주제 무리뉴가 손흥민 선수가 뛰고 있는 잉글랜드 토트넘 핫스퍼 FC에 부임했다. 무리뉴 감독은 부임과 동시에 코칭스태프 구성에 힘쓰며 프랑스의 릴 OSC로부터 주앙 사크라멘투 수석코치를 영입했다. 이에 릴의 크리스토퍼 갈티어 감독은 엄청난 분노를 쏟아냈다. 시즌 중 팀의 중요한 자산인 코칭스태프를 데려가는 것은 너무나도 비매너적인 일이라는 것이다. 갈티어 감독의 분노에서 볼 수 있듯, 팀 운영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는 코칭스태프는 팀 내에서 매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감독을 보좌하고, 여러 자료들을 공부해 선수들을 발전시킨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수석코치를 데려갔으니 화가 날 만도 했을 것이다. 반대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무리뉴 감독도 남의 팀에서 시즌 중 수석코치를 데려올 만큼 코치를 중요하게 생각했던 모양이다. 코치의 역할이 정말 중요함을 알 수 있다.



우리 팀은 방금 최고의 수석코치를 영입했습니다.


그런데 여기, 사람은 아니지만 누구나 마음에 들어 할 만할 최고의 수석코치가 있다. 사실 수석코치이자 공격, 수비, 전술 코치, 전력 분석관으로 말하는 게 맞을듯하다. 


바로 축구 분석 플랫폼 '비프로일레븐'이다. 비프로일레븐은 지난 2015년 설립된 스타트업으로, AI를 기반으로 축구 영상을 분석하는 기업이다. 이들은 축구 경기를 촬영하고 분석한 후, 가공된 데이터를 각 구단에 제공한다. 


비프로일레븐 서비스의 프로세스는 크게 4단계로 이루어져 있다.

비프로일레븐의 경기 영상 촬영 및 트래킹 기술 [출처 : platum.kr]


첫째, 경기/훈련 영상을 촬영한다. 촬영을 위해서, 경기장에 자체 4K 카메라 3대를 설치한다. 서로 다른 각도로 설치된 카메라들은 저마다의 위치에서 경기/훈련을 촬영한다. 3대의 카메라로부터 3개의 영상이 얻어지고, 이 영상들은 3D 카메라 스티칭이라 불리는 기술을 활용해 하나의 영상으로 합쳐진다. 다양한 각도를 한 영상에 담아 파노라믹 뷰를 제공하는 것이다. 동시에 트래킹 기술을 통해 선수 사이사이의 간격, 이동 동선, 포메이션 형상 등을 자동으로 추적한다. 기존처럼 단순 영상 정보만이 아닌 다양한 입체적 정보가 담긴 영상이 제공된다는 장점, 선수들이 현재와 같이 GPS 장치를 착용한 채로 경기를 뛰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다. 


비프로일레븐의 트래킹 기술. 보다 더 정밀한 분석이 가능하다. [출처 : 비프로일레븐 공식 유튜브 채널 캡쳐]


이후에는 촬영된 영상에 대한 분석 과정이 진행된다. 2명 이상의 분석관들이 영상과 AI가 제공하는 데이터를 토대로 경기를 분석한다. 평균적으로 경기 종료 후 평균 24시간 내에 슈팅, 패스, 태클 등 경기 내 모든 상황이 분석된다. 


이렇게 분석된 데이터는 구단의 감독 및 코칭스태프에게 전달된다. 경기별, 선수별로 데이터 리포트가 제공되는 것은 물론이고, 비디오도 함께 전달되어 구단에서 손쉽게 필요한 영상을 편집하여 사용할 수 있다. 


이제 이 데이터를 무궁무진하게 활용하기만 하면 된다. 제공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해당 경기에서 놓쳤던 부분은 무엇인지, 부족했던, 또 실수했던 부분은 무엇인지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예전처럼 이를 기억하기 위해 고생할 필요가 없다. 수기로 기록할 필요 또한 없다. 원하는 정보들은 자동으로 리스트업되고, 필요시 언제든 데이터를 다시 열람할 수 있다. 선수들은 분석된 저마다의 플레이들을 다시 보며 자신만의 오답노트를 만들어나갈 수 있다. 더 나아가 팀원 모두가 각자의 기기로 플랫폼에 접속해 커뮤니케이션을 하며 개선점을 함께 찾아나갈 수 있다. 

 

이 4단계가 비프로일레븐의 전반적 서비스라고 할 수 있다. 일련의 과정들이 하나의 플랫폼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은 분명한 장점이다. 기존에는 경기 비디오를 보며 경기를 분석하고, 후스코어드닷컴 등에 접속해 선수 히트맵을 따로 파악해야 했다. 선수들에 대한 데이터를 얻으려면 Wyscout에 접속해야 했다. 비프로일레븐은 이렇게 산발적이고 번거롭던 경기 분석의 과정을 하나로 합침으로서 경기 분석의 효율성을 비약적으로 향상시켰다. 



우물을 뛰어넘은 개구리


비프로일레븐의 성장 과정 또한 이들의 서비스 못지않게 흥미롭다. 비프로일레븐은 대학생 축구 동아리에서 시작됐다. 강현욱 대표는 서울대학교 내 축구 리그의 기록들이 수기로 일일이 기록되는 것을 보고, 수치들을 일괄적으로 기록해 주는 시스템을 고안해냈다. 이 시스템을 처음에는 교내 축구 동아리에 제공했고, 이것이 좋은 반응을 얻자 다른 대학 축구 리그들을 거쳐 K리그 주니어에서도 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후의 행보가 매우 신선하다. 강 대표는 주저 없이 독일 함부르크로 진출했다. 다들 의아하게 생각했지만, 시장이 작은 국내보다 축구의 본고장 유럽에서 더 크게 성장하겠다는 포부가 담겨있었다. 유럽에 진출해서도, 신생 서비스 사용을 망설이는 프로 클럽을 두드리는 대신 3부, 4부, 5부 등의 하부리그 팀들과 프로 클럽 산하 유소년 팀들을 공략했다. 별다른 경쟁상대가 없었던 비프로일레븐의 서비스는 막강했다. 서비스했던 팀들 중 상당수가 이 시스템의 효과를 체감했고, 이를 바탕으로 입소문을 탄 비프로일레븐은 현재 AC밀란, AS로마, 레알 소시에다드, 호펜하임, 뉴캐슬 등 유럽 곳곳의 명문 클럽들을 고객으로 두고 있다. 



토탈 풋볼, 티키타카, 게겐 프레싱을 거쳐 비프로일레븐으로


축구 분석의 틀을 바꾼다, 비프로 '라이브 코딩' [출처 : 비프로일레븐 공식 유튜브]


비프로일레븐은 더 나아가 라이브 코딩이라 불리는 실시간 경기 분석 서비스를 발전시켜나가는 중이다. 분석관은 경기 종료 후에 영상을 따로 분석할 필요 없이, 중계되는 영상을 바로 분석할 수 있다. 빌드업, 역습, 수비 전환 등 축구 경기 내 다양한 시나리오를 분석해 코칭스태프, 감독에게 전송하고 소통하며, 이 정보는 선수들에게까지 전달된다. 경기가 끝나야만 개선점을 발견하고 이를 고칠 수 있었던 과거와 달리, 경기 내내 즉각적인 피드백을 주고받을 수 있으며, 팀 구성원 모두가 바로바로 데이터를 기반으로 소통할 수 있는 것이다. 라이브 코딩 기술은 이미 K리그에서 서비스되고 있다. 


이런 실시간 데이터 분석 시스템이 더 대중화된다면, 축구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물결을 맞이할지도 모른다. 현대 축구에서는 경기 내 다양한 상황들을 포괄하기 위하여 위험 요소를 줄이고 여러 시나리오를 아우를 수 있는 전술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극단적 전술 여러 개를 시도하기에 부담이 큰 것이다. 그러나 데이터가 즉시 제공된다면, 극단적 전술일지라도 그 필요에 따라 계산된 시간에 맞추어 사용하기만 하면 된다. 축구 자체가 한층 더 역동적으로 변화할 수 있을 것이다.


2018년 MLB 휴스턴의 극단적인 수비 시프트. 좌익수를 제외한 모든 야수가 우측에 포진해있다! [출처 : CBS Sports]


다양한 데이터를 통한 스포츠의 발전은 이미 야구에서 증명되었다. 2000년대 세이버메트릭스라는 새로운 통계 방법론이 도입됨에 따라, 그 이전에는 단순히 '높은 타율 = 좋은 타자, 팀에 도움이 되는 선수'의 공식이 성립했다면 이제는 그 공식이 '높은 출루율 = 좋은 타자', '높은 WAR(승리 기여도) = 팀에 도움이 되는 선수'로 변화했다. 새로운 지표들이 각광받으며 이전에는 빛을 보지 못했던 선수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또, 각 타자들이 주로 공을 어디로 치는지에 대한 데이터가 축적되며 '수비 시프트' 역시 만연한 문화가 되었다. 극단적인 수비 시프트는 공격팀에게는 시프트를 뚫고 안타를 쳐냈을 때의 희열을, 수비팀에게는 시프트를 통해 안타를 아웃으로 만들었을 때의 희열을 더해준다. 경기의 재미 요소가 더해질 뿐만 아니라 전술의 다양화로 인해 스포츠 자체가 다이나믹해진 것이다. 


축구 역시 마찬가지이다. 물론 90분 내내 공격과 수비가 격하게 전환되는 축구와 3시간가량 진행되는 야구를 동일선상에 놓는 것은 무리가 있지만, 비프로일레븐과 같은 경기 분석을 통해 축구가 더욱 발전하리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역으로 생각해보면 실시간 데이터가 제공됨에 따라, 상대 팀에 대한 대응은 계속해서 바뀔 것이다. 90분 동안의 각축전에 보여지는 전술이 다양화될 가능성이 매우 높고, 이전에 보이지 않았던 요소들이 대두됨에 따라 새롭게 주목받는 선수도 등장할 수 있다. 


비프로일레븐은 지난달 축구 종가라 할 수 있는 영국의 런던으로 다시 한번 본사를 옮겼다. 더 다양한 팀과 접속함은 물론, 미식축구, 하키 등 다른 스포츠로도 분석 서비스를 넓혀나간다고 한다. 강현욱 대표는 비프로일레븐의 목표가 축구계의 구글이 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데이터가 스포츠에 접목되는 이 시기에 비프로일레븐이 새로운 트렌드의 선구자적 역할을 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연세대 경영 윤재이

jstud331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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