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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을 찾는 사람들

연세대 경영혁신학회 27기 김재민

표지 출처: 유튜브 '채널 십오야'

   


TV 예능의 몰락?


    요즘 사람들에게 "TV 예능이 재밌어? 유튜브 동영상들이 재밌어?"라고 묻는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튜브의 손을 들어줄 것이다. 나만 해도 지금은 TV를 거의 보지 않고, 하루종일 손 안에서 유튜브를 켜놓고 있다. 여기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는데, 우선 현재 생활 환경에서는 TV 시청이 어렵다. 기숙사에 살거나 자취를 하는 대부분의 학생들은 TV를 통한 영상 시청 빈도가 굉장히 낮다는 것에 동의할 것이다. 또한, TV에서 방영하는 대부분의 프로그램들의 핵심(예능의 경우에는 웃긴 부분)은 거의 방송 직후에 유튜브에 업로드된다. 즉, 굳이 TV에서 모든 방송 내용을 보지 않아도 재밌는 부분만 찾아서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이유는 그냥 재미가 없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예전에 가족끼리 모여 앉아 토요일에는 무한도전, 일요일에는 1박 2일을 보던 일상은 지금은 사실상 기대하기 어렵다. 물론 아직도 재밌는 프로그램이 많긴 하지만, 소재가 고갈되고 있다는 점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소재가 고갈되면서, 방송 내용들이 비슷해지고 재미가 떨어지고 있다. 특정한 프로그램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지만, 요즘 방송의 대부분은 음악 방송/먹방/쿡방/관찰 방송 등 몇 가지 주제에 한정돼 있다. 그럼 앞으로 TV 예능은 점점 힘을 잃어가기만 할까?


    개인적으로 얼마 전 이 문제에 대해 혼자 고민해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올해 7월 SBS에서 신입 예능 PD 공개 채용이 있었는데, 나는 지원서라도 한번 써보자는 마음에 도전했었다. 너무 당연하게도 떨어졌지만, 지원서 문항 중에서 새로운 프로그램을 기획해보라는 문항은 아직도 내 기억 속에 남아있다. 당시 어떻게든 재밌는 프로그램 아이디어를 짜보려고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친구들과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해보기도 하고, 정처 없이 인터넷 곳곳을 뒤지며 요새 무엇이 유행인지 알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오 이거 괜찮은데?'라고 생각이 드는 소재가 단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물론 이건 내 역량이 부족하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이미 TV 예능에서는 엄청나게 많은 소재를 다뤘고, 어느 정도 선을 지켜야 하는 TV 예능의 특성상 다루지 못하는 소재들도 많다는 것도 명백한 사실이었다. 이렇게 공채 탈락이라는 아픔을 뒤로 하고, 나는 'TV 예능은 어떤 방향으로 바뀔까?'에 대한 깊은 고민 속에 빠졌다.


사진 출처: 유튜브 '채널 십오야'

나영석의 5분 편성


    그래서 나영석 PD가 시작한 일종의 '실험'인 5분 편성을 높게 평가하고 싶다. 뭐 누굴 평가할 입장은 아니지만, 그만큼 혁신적이고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소재'가 떨어져가고 있으니 '형식'을 바꿨다는 점이 놀라웠다. TV를 통해서는 신서유기 본방송이 끝난 뒤에 5분 내외(길어도 10분 내외)로 영상을 송출하고, 유튜브를 통해서 풀버전을 공개하는 방식이다. 'TV 예능 = 1시간 내외'라는 고정관념을 깨면서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고, 유튜브라는 현재 세대들이 가장 자주 찾는 플랫폼을 통해 자연스럽게 영상을 시청하도록 했다. 일단 5분 편성에 대한 칭찬은 여기까지 하고, 대체 5분 편성이 어떻게 시작됐는지 짚어보자.


    때는 작년(2019년), '신서유기 6' 방송을 하고 있을 때였다. 프로그램 중에서 다양한 상품을 뽑는 코너가 있었는데, 은지원이 약 1%의 확률을 뚫고 '오로라 여행권'을 뽑았다. 당시 그는 스케쥴도 많은데 오로라 보러 갈 시간이 어딨냐며 싫어했다. 하지만 말이 씨가 됐고, 결국 은지원과 이수근은 '아이슬란드 간 세끼'라는 방송을 하게 됐다. 당시 방송을 보던 나는, 뭐 '강식당'이나 '꽃보다 청춘 - 위너'처럼 신서유기의 외전 형식을 띄고 같은 시간대에 방송할 줄 알았다. 하지만 나영석 PD는 '5분 편성'이라는 파격적인 방식을 선택했고, '아이슬란드 간 세끼'의 전체 내용이 궁금한 사람들은 유튜브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현재 나영석 PD의 유튜브 채널 '채널 십오야'(구 '채널 나나나')는 232만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거대한 채널이 됐다.


    그렇다면 '아이슬란드 간 세끼'의 소재가 참신하다고 볼 수 있을까? 나는 절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신서유기라는 인기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어느 정도의 초반 관심을 끌었고, 은지원과 이수근이라는 실패 없는 예능 보증 수표와 함께했다. 하지만 '소재'의 측면에서 단순한 여행 테마의 방송은 다른 방송사에서도 끊임없이 제작하고 있다. 즉, 그렇게 특별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이슬란드 간 세끼'는 성공했고, 그 이후로 '마포 멋쟁이', '라끼남', '이식당', '언제까지 어깨춤을 추게 할 거야' 등의 방송은 큰 호응을 얻고 있다. 5분 편성, 무엇이 그렇게 특별하고 어떤 의미를 지닌 걸까?


사진 출처: 신서유기 8 공식 포스터

5분 편성이 예능에 불어온 바람


    나영석 PD의 5분 편성은 몇 가지 측면에서 엄청난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예능 PD도 아니고 그냥 학생일 뿐이지만, 예능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5분 편성이 가져온 파급 효과를 분석해보고 싶었다.


1) RT 고정관념의 붕괴: 위에서도 간단하게 언급했지만, 기존에 예능 프로그램은 1시간 내외라는 고정 관념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TV 방송에서 5분 만에 끝나는 프로그램을 찾아봐도 뭐 스포츠 뉴스나 일기 예보 정도가 끝이었다. 그런데 예능 프로그램을 5분으로 편성한다니, 이젠 '방송 시간'보다 '방송의 임팩트'가 중요해진 걸까? 사람들은 갈수록 긴 콘텐츠에 지루함을 느낀다. 사람들은 쉬는 시간 동안, 잠깐 지하철을 탈 때, 식당에서 음식을 기다리면서 짧은 시간 동안에도 충분한 희열을 느끼길 원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영석 PD의 5분 편성을 평가하면, 5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방송의 핵심을 농축해서 보여줘 관심을 끌고 자연스럽게 유튜브로 이끌었다는 점에서 요즘 세대를 잘 겨냥했다고 생각한다.


2) TV와 유튜브 중요성의 전복: 대부분의 TV 프로그램이 방송 하이라이트를 편집해서 유튜브에 업로드하고 있다. 현재 방송하고 있는 프로그램 뿐만 아니라, 과거에 인기를 끌었던 프로그램의 클립을 재업로드하는 경우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즉, 이제 유튜브가 TV 프로그램을 보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TV에서만 송출했다면 관심을 가지지 못했을 프로그램들도, 유튜브라는 플랫폼을 통해 관심을 끌어 긍정적인 결과를 내는 경우가 많다.


3) '선'을 지키지 않는다는 것: TV와 유튜브의 '선'은 확실히 다르다. TV 프로그램에서는 하지 못할 말들을 유튜브에서는 자유롭게 할 수 있다. 시청자들의 원초적인 본능을 자극시키는 측면에서는 유튜브가 압도적이다. TV 프로그램과 유튜브 동영상들이 '재미' 측면에서 차이가 나는 것도 이런 이유가 클 것이다.


사진 출처: 유튜브 'KBS Entertain: 깔깔티비'

4) 캐릭터 활용의 극대화: 나영석 PD의 5분 편성, 그리고 '채널 십오야'는 신서유기 멤버들의 캐릭터를 잘 살리고 있다. 친한 친구 사이이면서 패션에 일가견이 있는 피오 & 송민호와 '마포 멋쟁이'를, 라면에 대한 애정은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강호동과 '라끼남'을 제작했다. 또, 어떤 일이든 만능이라 혼자서도 잘 하는 이수근과 '이식당'을, 조정뱅이 규현과 '언제까지 어깨춤을 추게 할 거야'를 제작했다. TV 프로그램으로는 단독으로 내기 조심스러울 수도 있는 방송이다. 1~2인의 출연진만으로 하나의 프로그램을 이끌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튜브라는 플랫폼을 활용해 짧고 강렬하게 출연진의 캐릭터를 극대화했다. 신서유기 멤버들의 별명이 거의 무한대로 늘어나고 있는 만큼, 제작할 수 있는 방송 컨셉도 점점 늘어날 것이다.


5) 시청자 PD: 5분이라는 짧은 시간, 마련하기 엄청 어려운 정도는 아니다. 그렇다면 이 시간을 시청자에게 제공하면 어떨까? 누구나 TV를 보면서 '아~ 이런 방송 해보면 재밌을 것 같은데!'라는 생각을 한번은 해봤을 것이다. 이와 동시에 방송계는 현재 소재 고갈로 힘들어하고 있다. 그렇다면, 5분 정도의 시간을 시청자의 아이디어로 채우는 것도 긍정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이제 어디서 웃음을 찾을 수 있을까? 사람들은 계속 웃긴 소재를 찾아왔고, 분명히 또 새로운 웃음의 영역을 개척할 것이다. 이 점은 믿어 의심치 않는다. 개인적으로 유튜브에게 그 세력을 조금은 넘겨준 TV 예능이 다시 힘을 얻었으면 좋겠다. 가족과, 친구와 삼삼오오 TV 앞에 모여서 배가 아플 정도로 웃던 그 시절은 다시 올 수 있을까?



연세대 영어영문 김재민

kimjaemin7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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