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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록, 미국 최대 에너지기업에 반대표 던진 이유

연세대학교 경영혁신학회 28기 이민희


투자계 대장 블랙록, 에너지계 대장 엑슨모빌


   미국의 블랙록(BlackRock)은 운용 자산(AUM) 기준 세계 최대의 자산운용사이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블랙록은 작년 4분기 기준 8조 6800억 달러로 사상 최대 수준의 운용 자산 규모를 기록했다. 8조 6800억 달러가 얼마나 큰 돈인지 감이 잡히지 않아 한화로 계산해봤더니 대략 9900조 원으로 계산되었다. 말그대로 1경에 가까운 거대 자본을 운용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최대 규모 기금인 국민연금의 작년 운용 자산이 785조 원이라는 점에 비교해보면 블랙록의 어마어마한 규모가 실로 크게 와닿는다. 블랙록이 어떤 기업에 투자했다는 사실이 공시되면 그 기업의 주가가 급등할 만큼, 이들은 규모로 보나 영향력으로 보나 세계적으로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엑슨모빌(Exxon Mobil)은 미국에 본사를 두고 석유와 천연가스를 주력으로 판매하는 에너지 기업이다. 한때 세계 시가총액 1위를 달리기도 했고, 작년 기준으로는 시가총액 270조 원의 세계 최대의 정유회사 중 하나로 꼽힌다. 미국 투자은행인 모건스탠리는 올해 1월 엑슨모빌에 대한 투자 의견을 ‘중립’에서 ‘매수’로 상향하고, 목표주가로 1월 말의 주가(47달러) 대비 20% 가량 높은 57달러를 제시했다고 한다. 코로나19 백신 보급으로 경기가 회복 국면에 접어들면서 엑슨모빌이 수혜주가 될 것으로 내다봤기 때문이다.


블랙록 본사와 엑슨모빌 정유공장의 모습



블랙록, 엑슨모빌에 반대표 던지다


   미국 최대 에너지 기업인 엑슨모빌은 여전히 많은 투자사들이 좋은 투자처로 바라보고 있는 곳이다. 실제로 앞서 언급한 블랙록도 엑슨모빌의 2대 주주로 11% 넘는 지분을 가지고 있다. 세계 최대의 자산운용사와 최대의 에너지 기업이 만나면 엄청난 규모의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지 않을까, 단순한 생각이 든다. 그런데 작년 6월, 엑슨모빌의 연차총회에서 블랙록은 엑슨의 현 경영진 운영에 반대표를 던졌다. 엑슨모빌 사업 전략의 미흡함을 지적하고, 앞으로도 이들의 행보를 감시하고 강력하게 개입할 것임을 경고했다. 그렇다면 왜? 왜 블랙록은 최상위권 에너지 기업인 엑슨모빌의 행보에 반대한 것일까?



ESG를 담아 러브레터를 보냅니다


   이러한 결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블랙록이 지금껏 어떤 방향으로 걸어왔는지를 먼저 살펴봐야 한다. 블랙록 CEO 래리 핑크(Larry Fink)는 작년 1월 세계의 최고경영자들에게 아래와 같은 연례 서한을 보내며, 기후 변화가 투자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요인이 되었다면서 앞으로는 기후변화를 고려하여 투자하겠다고 선언했다.


블랙록 CEO의 연례 서한 [출처: 블랙록 공식 홈페이지]


   "기후 리스크의 증거들을 직면하면서 투자자들은 금융업에 대한 기본 가정들을 재검토하고 있습니다. (…) 예를 들어, 기후 리스크로 인해 지방채 시장이 재편되면 향후 개별 도시들은 인프라 투자에 필요한 재원을 충당할 수 있을 것인지, 대출 기관들이 기후변화의 장기적 영향을 측정할 수 없고, 재해지역을 위한 유효한 보험 시장이 없어진다면, 금융의 핵심인 30년 만기 모기지 시장은 어떻게 될 것인지. 빈번한 가뭄과 홍수로 인해 식료품 가격이 상승한다면, 인플레이션과 그로 인한 금리는 어떠한 영향을 받을 것인지. 폭염 등 악천후의 영향으로 신흥시장의 생산성이 하락할 경우 경제성장 모델은 어떻게 구축해야 하는지. 투자자들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더욱 더 깊이 고민하고 있으며, 결국 기후 리스크는 투자 리스크임을 인지하고 있습니다. (…) 이러한 질문들은 리스크 및 자산 가치에 대한 근본적 재검토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자본시장은 미래 리스크를 현재가로 반영하므로, 기후 변화의 속도보다는 당연히 자본 배분의 변화가 훨씬 신속하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멀지 않은 미래에, 예상보다 빠르게, 상당한 규모의 자본 재분배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 금융업에 40년간 종사하면서, 저는1970년대와 1980년대초의 인플레이션 급등, 1997년의 아시아 통화위기, 닷컴 버블, 그리고 글로벌 금융위기 등 다수의 위기와 난제들을 경험했습니다. 이러한 위기들이 다년간 지속된 경우도 있지만, 큰 그림으로 보자면 모두 본질적으로는 단기적인 문제들이었습니다. 기후변화는 다릅니다. 현재 예측되는 영향의 일부만 실현되더라도 훨씬 더 구조적이고 장기적인 위기를 불러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업, 투자자, 정부는 상당 규모의 자본 재분배에 반드시 준비해야 합니다.



ESG 열풍의 시작에는 블랙록이 있었다


   기후 리스크에 대한 대비를 중심으로 전반적인 지속가능성 투자에 대해 공공연하게 선언한 이후, 블랙록은 ESG 투자의 선구자가 되었다. 여기서 ESG 투자란 ‘환경(Environment)과 사회(Social)으로 긍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지배구조(Governance)가 우수한 기업에 투자하는 것’을 의미한다. ESG 투자는 기업의 사회적인 책임을 강조한다는 측면에서 기존에 잘 알려진 SRI(Social Responsible Investment)와 비슷하나, 환경, 사회, 지배구조의 차이에 따른 경제적 가치(금융 수익률)를 좀 더 중시한다.


SRI와 비교되는 ESG 투자의 특징 [출처: Fiduciary Trust Company, 메리츠증권 리서치센터]


   이전부터 ESG 투자의 규모는 계속 확대되고 있었지만, 세계 최대의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의 공격적인 선언은 전 세계 기업과 투자자들에게 ESG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리는 신호탄 역할을 했다. 실제로 블랙록은 매출액의 25% 이상을 석탄발전을 통해 거둬들이는 기업에 대해 투자를 철수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동시에 블랙록은 미국 투자사 중 최초로 기후 변화 액션 투자자 그룹인 클라이밋 액션 100+(Climate Action 100+) 가입도 발표했다. 클라이밋 액션 100+는 세계 유수 기업들을 비롯해 전 세계 주요 투자사들이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기업 경영을 촉진하기 위해 결성한 네트워크로, 미국의 대표적인 대형 투자사들은 가입하지 않아왔다. 뿐만 아니라 블랙록은 기후 리스크를 분석하기 위한 다양한 도구를 계속 개발 중이며, 향후 이를 블랙록 자체의 리스크 관리 및 투자 플랫폼인 알라딘(Aladdin)에 통합하겠다고 계획했다. 



블랙록이 엑슨모빌에 날린 경고장


   이제 블랙록이 ESG에 얼마나 ‘진심인지’ 조금 파악이 된 것 같다. 작년 7월 자체적으로 발표한 지속가능성 보고서, ‘Our approach to Sustainability’에서 블랙록의 이러한 진심이 세계의 기업들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확인해볼 수 있었다. 블랙록은 자신들의 포트폴리오에 속한 회사 중 총 244개 기업이 기후 위기 대응에 적극적이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고 밝혔고, 그 중 53개 회사의 이사회에서 블랙록은 주요 결정에 반대표를 던지는 등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를 했다. 영향을 받은 53개 회사 중 에너지 관련 기업은 37개이며, 그 중 하나가 바로 엑슨모빌이다. 


블랙록 지속가능성 보고서 [출처: 블랙록 공식 홈페이지]


   블랙록은 엑슨모빌이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설정하지 못하고 이사회의 독립성이 결여되었다는 이유로 "회장과 CEO 역할을 분리하자"는 주주 동의안에 입장을 실었다. 또한 안젤라 브럴리 공보위원장과 케네스 프레이저 이사장의 재선임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블랙록이 이러한 결정을 한 이유는 엑슨이 기후변화에 대해 적절히 대응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년 12월 블룸버그 통신은 2020년 엑슨모빌이 연간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25년까지 크게 늘릴 계획이었다고 보도한 적도 있다. 작년부터 주요 에너지기업이 각국 정부와 투자자들을 의식해 탄소 배출량을 줄이겠다고 선언하고 있는 것과는 딴판이다. 

   더불어 엑슨모빌은 온실가스 및 지구온난화 감축 목표, 온실가스 배출량, 기업 지배구조 등의 공시와 관련된 우려를 해소하지 못했다. 이에 블랙록은 수년 동안 기후 위기와 관련하여 엑슨에 개입해왔고, TCFD와 SASB의 권고안을 기준으로 공시를 할 것을 요구했다. 이러한 투자사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 엑슨모빌은 2018년 ‘에너지 및 탄소 보고서(Energy and Carbon Summary)'를 발표했으나, 명확하고 장기적인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제시하지 못했고, 회사측은 그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 밝히지도 않았다. 이에 대해 블랙록은 이사회에서 기후 정책과 관련한 감독 및 리더십 의무를 소홀히 한 것으로 보고 반대표를 던지게 된 것이다.



엑슨모빌은 어떤 길을 가야 하는가


   투자자는 변하고 그에 따라 비즈니스도 변한다. 엑슨모빌이 온실가스 감축에 반대되는 행보를 보이자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의 결정을 중심으로 2019년 80달러대였던 주가가 2020년 30달러대까지 떨어지는 일을 겪었다. 이에 더하여 작년 엑슨은 92년 만에 다우존스 산업평균 지수에서 퇴출당하는 경험도 했다. 현재는 주가를 어느 정도 회복했지만, 화려했던 과거에 비교한다면 위험한 상황임을 이들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을 거다.

   오늘날 기업 환경은 주주의 이익, 직원 복지에 대한 책임, 공공선에 대한 기여가 뒤섞여 있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의 ESG 투자에 대한 굳은 결심은 향후 수많은 투자자와 기업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 예상한다. ESG를 향한 전세계의 발걸음이 한결 더 빨라질 지도 모른다. 이제 ESG 지표는 더 이상 착하기만 한 기업을 의미하지 않으며, 기업의 생존에 직결되는 방대한 방향성을 포괄한다. 엑슨모빌이 위기를 딛고 앞으로도 지속 가능 하려면, 즉 생존 가능 하려면 블랙록으로부터 받은 경고장을 무시하지 말고 신속히 대처해야할 것이다.



연세대 불어불문 이민희

2mini0315@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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