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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킥보드의 시대는 온다

연세대 경영혁신학회 28기 김태연


통학러의 한 줄기 빛, 퍼스널 모빌리티


 필자는 삶의 많은 부분을 '이동'과 함께해왔다. 애석하게도 집과 학교의 거리가 꽤 되기 때문에, 아침마다 서울에 가기 위해서는 대개 다음과 같은 전쟁을 치러야 한다.


8:30 - 8:35 집에서 버스 정류장으로 걷기

8:35 - 8:50 버스를 타고 근처 지하철역으로 이동

9:00 - 9:30 공항철도를 타고 홍대입구역으로 이동

9:30 - 9:40 홍대입구역에서 국내 최장의 환승 거리(414m)를 걸어 2호선 환승

9:40 - 9:43 2호선을 타고 신촌역으로 이동

9:43 - 9:50 걷거나 마을버스를 타고 캠퍼스 정문까지 이동

9:50 - 10:00 강의실 도착


  사실, 따지고 보면 지하철을 타고 ‘인천에서 서울까지’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집에서 지하철역, 다시 역에서 학교까지의 시간이 거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이니 말이다. 이 아까운 시간을 줄이기 위해 매일 아침 택시 회사에 눈물을 머금고 ‘장투’하던 도중, 실낱같은 희망이 찾아왔다. 바로 공유 전동킥보드였다. 어느 날 캠퍼스에 하나둘 생기기 시작한 킥보드는 필자의 눈을 사로잡았고, 호기심에 타 본 킥보드는 빠르게 삶의 일부로 녹아들었다. 홍대입구역에서 나와 눈에 보이는 킥보드를 바로 타고 연희관까지는 11분 남짓 걸렸는데, 평소 같으면 이제 막 신촌역에 도착할 즈음이었다.


필자의 '킥고잉' 이용 내역.  정말 꾸준히 쓰고 있다.


  필자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최근 들어 모빌리티 산업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서비스는 퍼스널 모빌리티(Personal Mobility) 혹은 마이크로 모빌리티(Micro Mobility)다. (*둘은 비슷한 개념으로, 본 글에서는 이하 퍼스널 모빌리티로 통칭하겠다.) 공유 전동킥보드, 전기자전거 등 여러 교통수단이 퍼스널 모빌리티에 포함되는데, 이들은 기존 자동차 중심의 교통 생태계의 보완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퍼스널 모빌리티는 라스트마일(Last Mile), 주 교통수단을 이용하고 최종 목적지까지 남은 마지막 1마일(1.6km)를 책임지는 이동수단으로써 활용되며 여정에서 발생하는 빈틈을 촘촘히 연결하여 이동수단들을 빠르고 편하게 잇는 것을 목표로 한다.


씽씽의 봄 시즌패스. 라이프스타일 및 연령대로 요금제를 구분했다. (출처: 씽씽 홈페이지)


  현재 국내의 퍼스널 모빌리티 업체들은 기존 쏘카, 그린카의 자동차 기반 모빌리티 서비스들이 온라인 기반의 O2O 플랫폼 방식의 공유 플랫폼을 활용하는 것과 궤를 같이한다. 결제 정보를 미리 등록해놓고, 앱을 통해 서비스 지역에 놓여 있는 킥보드를 이용한 뒤, 목적지에 도착한 후 반납하면 자동으로 요금이 결제되는 식이다. 여기에 더해 최근에는 구독 경제까지 녹여내는 모양새다. 미국에서 시작된 라임(Lime)은 주 단위 구독 서비스를 운영 중이고, 씽씽이 업계 최초로 작년 준비한 1년 치 구독모델 ‘씽씽 프리패스’는 일주일 만에 완판됐다. 현재는 계절을 주기로 시즌패스를 운영 중이다.




폭발적인 성장, 그리고 코로나19


공유 모빌리티 유형별 이용 증가율. 퍼스널 모빌리티의 증가율이 눈에 띈다. (출처: 신한카드 trendis)

 우선 퍼스널 모빌리티의 성장 과정을 살펴보자. 지난 2019년 초를 기점으로 국내에는 킥고잉, 카카오티바이크, 일렉클, 빔 등 수많은 업체가 시장에 등장했고, 이들은 빠른 속도로 서비스를 확장하며 새로운 이동수단으로 자리잡고 있다. 실제로, 신한카드 빅데이터 연구소에 따르면 작년 1월부터 7월까지의 퍼스널 모빌리티 이용건수는 117만3000건으로 19년의 같은 기간(25만4000건)보다 무려 362% 급증했다. 이용금액 또한 20억원으로 전년(5억3000만원)보다 280%나 늘어났다. 미래 전망도 밝다. 한국교통안전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퍼스널 모빌리티 교통수단은 2016년 약 6만대, 2017년 7만5000대에서 2022년 20~30만대 수준으로 급속히 늘어날 전망이다. 시장규모는 연평균 20% 이상의 고속 성장을 거듭해 2022년 약 6000억원 규모로 확대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러한 급격한 성장의 배경에는 단순히 1) 모바일로 간편하게 이용할 수 있고 2) 택시보다 가격이 저렴하고 3) 걷기에는 애매한 긴 거리를 빠르게 도착할 수 있다는 퍼스널 모빌리티 자체의 장점 이외에도, 코로나19의 확산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 사람들이 밀집하는 기존 대중교통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며, 언택트 이동 수단으로써 퍼스널 모빌리티가 각광받게 된 것이다. 즉, ‘같이’ 타는 행위에 대한 불안감이 곧 ‘혼자’ 타는 퍼스널 모빌리티로 연결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수치적인 측면에서도 잘 드러난다. 수도권에서 교통카드를 이용한 대중교통 통행 횟수는 코로나19 발생 이후 3개월간 약 23% 감소했다. 반면, 모바일 빅데이터 플랫폼 ‘아이지에이웍스’의 모바일 인덱스에 따르면 ‘킥고잉’, ‘씽씽’, ‘라임’ 등은 코로나19가 확산했던 지난해 5월 중에도 꾸준히 이용자 수가 증가했다.




'킥라니'. 필연적인 성장통을 겪는 퍼스널 모빌리티


무분별하게 주차된 전동킥보드. (출처: 동아일보)

 한편, 이런 찬란한 성장에 밝은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새롭게, 또 너무 급하게 우후죽순 적으로 퍼스널 모빌리티 산업이 성장하며, 사회적 측면에서 여러 문제점 또한 발생했다. '킥라니'(킥보드 + 고라니)라는 말을 들어봤는가? 이는 전동킥보드 유저가 늘어나며 도로 위에서 위험하게 운행하는 행태나, 교통법규를 지키지 않아 사고를 내는 전동킥보드 유저를 비판하고자 생긴 신조어다. 실제로, 전동킥보드 사고는 2018년 225건, 2019년 447건, 작년 897건으로 매해 거의 두 배씩 늘어났고, 특히 작년의 경우 10명이나 사고로 숨질 정도였다. 또한, 급격하게 늘어난 전동킥보드가 도시 미관을 헤치기도 한다. 길가 한복판에 쓰러져 있거나,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채 길가 한 가운데에 몇 대의 킥보드가 모여있는 모습은 킥보드 이용 가능 지역에 가본 사람이라면 쉽게 포착할 수 있는 장면이다.

 이러한 퍼스널 모빌리티의 어두운 모습에는 유저, 전동킥보드 공유 업체, 사회제도적 측면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데, 이중에서도 사회제도적인 측면을 조금 더 살펴보자. 작년 필자는 직접 전동 킥보드를 구매할 계획까지 세웠지만, 결국 '차도'로만 다닐 수 있다는 법령 때문에 구매하지 못했다. 매일 왕복 4km의 거리를 타야 하는데, '자전거'의 형태가 아니어서 자전거도로를 이용하면 불법이 되는 것이다. (실제로 페달을 밟으면 모터가 보조하여 킥보드와 똑같이 25km/h까지 달릴 수 있는 전기자전거는 자전거 도로를 이용할 수 있다.)

 결국 이 문제는 며칠 전에서야 해결됐는데, 2018년 공유 전동킥보드 업체가 등장한 지 3년 째에서야 퍼스널 모빌리티의 현실을 반영한 도로교통법으로 개정이 이뤄진 것이다. 문제는 이 법안 또한 무조건 헬멧을 써야 하는 등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당연히 헬멧은 꼭 필요한 안전도구지만, 본 개정안에서는 현재 주된 퍼스널 모빌리티 이용 방식인 공유 서비스에 대하여 어떠한 고민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법이 개정된 지 한 달이 채 안 되었지만 이용자 수가 급감하고 있다는 업계의 푸념이 들려오기도 한다.

 다만 그럼에도 희망을 찾을 수 있는 점은 기술의 변화에 아주 느리게라도 제도가 반응하고 있고, 이 과정에서 새로운 서비스인 퍼스널 모빌리티가 제도권에 편입되고 있다는 점이다. 당분간 위와 같은 성장통의 시간은 필연적이겠지만, 이미 사용자 수와 패턴에 있어서 안정궤도에 올라온 퍼스널 모빌리티가 앞으로도 우리 사회에서 유효한 도구로 활용될 여지는 충분하다.




그럼에도 꿈꾸는 밝은 미래


 앞서 퍼스널 모빌리티의 확장과 함께 발생되어 온 여러 사회적 문제를 살펴봤지만, 필자는 이 지점이 궁극적으로는 극복 가능하며, 따라서 퍼스널 모빌리티의 규모는 점점 더 커질 수밖에 없다고 판단한다. 그 이유는 1) 퍼스널 모빌리티의 대안 교통수단으로의 인정 2) 모빌리티의 경계 붕괴를 통한 무궁무진한 확장 가능성에서 찾아볼 수 있다.


1) 대안 교통수단으로의 인식 변화

  이러한 국내 퍼스널 모빌리티 서비스의 성장에 있어서 중요한 점은, 도입 초기만 해도 전동킥보드, 전기자전거가 하나의 ‘레져 수단’으로 활용되는 인식이 강했다면, 최근 들어서는 유저의 사용 패턴이 ‘이동’의 본질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한국교통연구원이 지난해 말 발간한 ‘개인형 이동수단 이용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동킥보드 이용 경험자 500명 중 59%(중복응답)가 본인의 통근·통학을 위해 이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업무상 필요(42%), 학원 가기(13%) 목적으로 이용한 사람도 많았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모빌리티’의 개념을 ‘목적지까지 빠르고 편리하며 안전하게 이동’하게 하는 기술로 생각할 때, 이제는 퍼스널 모빌리티 또한 진정한 ‘모빌리티’의 범주 안으로 들어왔다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성장의 과정에서는 코로나19의 큰 수혜를 입었지만, 적어도 2021년 한국에서의 퍼스널 모빌리티는 고객의 라스트마일을 효율적으로 잇는, 본질적 역할을 아주 충실히 수행하는 새로운 방법으로써 활용되고 있다. 이렇듯 대중에게 '인정'받는 단계를 이미 지나고 있으므로, 앞으로 퍼스널 모빌리티는 이동 수단의 하나의 엄연한 선택지로 자리 잡을 것이다.


2) 모빌리티의 경계 붕괴를 통한 무궁무진한 확장 가능성

 다음으로, 모빌리티 산업 전체로 봤을때 퍼스널 모빌리티는 그 확장의 가능성이 크다. 글의 서두에서 퍼스널 모빌리티의 역할 중 하나를 '라스트 마일'에서의 활용으로 언급한 바 있다. 이 지점을 조금 더 확대하여 생각하면, 퍼스널 모빌리티를 '라스트 마일 딜리버리'의 효율성을 높이는 하나의 해결책으로 제시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삼정 KPMG 경제연구원에 따르면, 배송 과정에서 생기는 전체 비용의 절반은 라스트 마일, 즉 마지막 과정에서 발생한다. 퍼스널 모빌리티 고유의 장점이기도 한 진입장벽이 낮고, 가격이 저렴하며, 쉽게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을 활용하여, 기존 물류 시스템에 퍼스널 모빌리티를 적용하여 비용과 시간을 동시에 절약할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서로 다른 서비스 간의 연결을 통해 이를 활용하려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특히, 최근 지속적인 성장을 이어가고 있는 음식 배달 시장에서도 이 경계가 무너짐을 확인할 수 있다. 빠른 배달 시장의 성장 속도에 비해 배달 대행 라이더가 부족한 문제점 속에서, ‘쿠팡이츠’는 이를 해소하기 위해 최근 공유 퍼스널 모빌리티 업체와 협업을 진행했다. 도보로 음식을 배달하는 배달파트너가 공유 킥보드를 더 싸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게 해주는 방식인데, 빔 모빌리티는 서초/송파구의 쿠팡이츠 배달파트너에게 이용 포인트를 제공했다. 이외에도 킥고잉과 일레클은 일반 고객보다 더 저렴하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배달파트너용 요금제를 출시하기도 했다.

 즉, 퍼스널 모빌리티가 가진 현재의 방향성인 단순한 소비자의 이동 니즈를 만족하는 것이 더 나아가 '모빌리티'의 개념으로 확장된다면, 더 큰 성장을 바라볼 수 있게 될 것이다.



퍼스널 모빌리티의 더 큰 성장을 기대하며


 서두에서 언급했듯, 퍼스널 모빌리티는 단순한 산업이 아닌 필자가 직접 경험하고, 많은 수혜를 받은 서비스이다. 덕분에 더 애정을 가지고 시장을 바라보고 있기도 하다. 킥라니와 이번 달 개정된 새로운 도로교통법 등 앞으로 퍼스널 모빌리티의 완벽한 대중화를 위해 거쳐야 할 단계는 산더미이지만, 이 과정에서 모빌리티 기업, 유저, 제도적 측면 모두가 지혜로운 방향성을 가지고 문제를 해결해가고, 결국 퍼스널 모빌리티가 줄 수 있는 거대한 편익을 더 많은 사람들이 누릴 수 있기를 기대한다.



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김태연

naty04@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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