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30th BITors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알파고? 알파로!

연세대학교 경영혁신학회 30기 박준형


알파고는 아니지만


    2016년 3월, 구글 딥마인드의 AI 바둑기사 알파고는 이세돌 9단과의 대국에서 5전 4승 1패로 최종 승리하며 AI 시대의 도래를 선언한다. 3년 뒤 2019년 8월 서울 특별시 서초구, 알파고와 이세돌의 승부만큼의 열기는 아니었지만 나름의 국소적인 관심 속에서 특별한 행사가 개최된다. 제1회 알파로 경진대회, 제한된 시간 내에 계약서를 읽고 자문 실력을 겨룬다는 점에서 여느 변론대회와 다르지 않아 보이지만 참가팀을 살펴보게 되면 조금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9개의 팀은 인간 변호사들로 구성되어 있었지만, 3개의 팀에서 인텔리콘 연구소가 개발한 법률 AI ‘C.I.A’와 인간 변호사가 합을 맞추게 된 것이다. 인간 변호사의 가벼운 압승이 예상되던 가운데 결과는 대반전, 블라인드로 진행된 채점 결과 AI를 사용한 팀이 우승을 차지한다. 



법률에도 테크가 붙을 수 있답니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인더스트리 4.0? 용어야 다양하지만, 세상은 이미 0과 1의 숫자로 가득하다. 그러나 청소 서비스부터 배달 음식까지 핸드폰 하나면 해결되는 2021년도까지도 디지털화의 물결에 거세게 저항하고 산업이 있다. 바로 법조계이다. 법정에 직접 서보거나, 교정기관에 다녀온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겠지만(부디 그러길 바란다), 우리가 함께 모여 살아가기 위한 가장 기초의 규칙으로서의 ‘법’은 이미 모두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러한 법의 성격을 떠올려 본다면, 법의 적용은 당연히 신중해야 할 것이며 그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경직성 역시 필연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언제까지 시대의 흐름에 역행할 수는 없는 법, 행운인지 불행인지 지난 몇 년 사이 법조계에서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변호사협회(ABA)에 의하면 2016년 기준 미국에 1,100여개의 리걸테크 기업이 등장하였으며, 2018년에는 미국 변호사 10명 중 1명이 법률 업무에 AI 기반 기술도구를 사용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산업이 안정화되기 이전의 단계로써 정확한 산업 규모를 추산하기는 어려우나 시장의 팽창 추세 역시 확인할 수 있는데, 리걸테크 산업의 글로벌 투자 규모는 2016년 2억달러에서 2019년 11억달러로 증가하며 연평균 약 80%의 증가율을 기록하고 있다. 


세계 각국의 리걸테크 기업들


    그렇다면 정확히 '리걸테크'란 무엇인가? '에듀테크', '핀테크', '프롭테크' 테크라는 단어 하나면 시장이 출렁이곤 한다. 어색할 수 있지만, 법률이라는 단어 뒤에도 테크를 붙여 볼 수 있다. 리걸테크란 법(Legal)과 첨단 기술(Technology)의 합성어로, IT 기술 등을 활용하여 제공되는 법률 서비스를 의미한다. 미국 스탠포드 대학교 로스쿨은 법률 문서 작성 자동화, 변호사 중개, 소송 통계·예측 등을 포함한 총 9개의 리걸테크 분류를 제시하였지만, 보다 간단하게 3가지 영역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1. 법률 데이터 분석 서비스

    먼저 IT 기술을 활용하여 법률 데이터를 검색하고 분석할 수 있다. 법조인이라고 하더라도 본인의 전문 분야가 아닌 이상 모든 법령을 외우고 있지 않기에 법률 사무에 착수하기 위해서는 법령과 판례를 검색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이 때문에 법률 검색은 법률 서비스에 소요되는 시간 중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게 되는데 AI 기반 검색 서비스를 사용할 시 키워드 검색 등을 통하여 원하는 데이터를 빠르게 수집할 수 있다. 미국의 Westlaw사와 Judicata사가 대표적이다.


2. 변호사 중개 서비스

    법률 서비스의 또 다른 문제점은 바로 접근성이다. 일반적으로 고객이 변호사의 경력, 수임 비용 등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채널은 한정되어 있고 이로 인해 정보 비대칭성이 발생한다. 리걸테크는 플랫폼 상에서 변호사의 정보를 공개하고 고객의 상황에 적합한 변호사를 중개해줌으로써 이러한 문제를 완화할 수 있다. 미국의 Lexoo사와 LawBooth가 대표적이고 후술할 로톡(로앤컴퍼니) 역시 이에 속한다.


3. AI를 활용한 소송 결과 예측·법률 자문

    리걸테크를 활용하여 직접적인 법률 서비스를 제공할 수도 있다. 판례 빅데이터 분석을 통하여 실제 소송 단계까지 가지 않고서도 형량과 승소 가능성을 예측해 보거나 특정 법률 전략을 개발할 수 있다. 직접 활용 단계까지 이르지 않더라도 AI가 제공한 결과를 바탕으로 보다 정확한 전략과 자문을 제공할 수 있다는 장점이 존재한다. 미국의 FiscalNote사와 Lex Machina사가 대표적이다.



이번 만큼은 후발주자 


<글로벌 리걸테크 시장 규모 및 유니콘 현황>  출처: 2020 스타트업코리아 보고서

    

    이처럼 리걸테크는 다양한 사업모델을 통해 세상을 바꿔나가고 있다. 아, 물론 외국에서의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국내에서의 리걸테크는 어떨까? '2020 스타트업코리아' 보고서는 국내 리걸테크 산업을 비대면진료, 인공 지능과 함께 개선이 시급한 영역으로 꼽고 있다. 북미에는이미 9개의 유니콘 기업과 11개의 이머징 유니콘 기업이 존재하고, 가까운 일본 역시 기업가치 2조원의 벤고시 닷컴을 배출해낸 상황 속에서 우리나라는 투자 규모에서부터 크게 밀리고 있는데, 2015년부터 2020년까지의 누적 투자 규모가 1,200만달러 수준으로 미국에 비하여 150배 이상 뒤처져있다. 이처럼 국내의 리걸테크 산업이 부진한 이유로는 크게 두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저울에 올라간 저울    


    먼저, 법조인과 비법조인의 동업 금지하고 있는 법령의 영향이 크다. 이 분야에 일말의 관심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지난 몇 주 간 쏟아져 나온 기사에서 ‘로톡’이라는 단어는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로톡은 현재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형량 예측, 변호사 중개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데 이러한 로톡의 영업은 국내 법제에 저촉될 가능성이 존재한다. 변호사법 제34조는 금품·향응 등의 이익을 받고 법률사무의 수임에 관하여 변호사를 소개·알선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는데, 비법조인으로서 변호사의 프로필을 게재하고 이를 소비자와 연결하여 이윤을 창출하는 로톡의 사업모델은 위 조항에 저촉될 수 있다. 얼핏 보면 법조계의 탐욕처럼 보이는 이 조항에는 나름의 타당한 이유가 존재한다. 국민의 기본적 권리를 보장해야 하는 영역이 자본시장의 논리에 잠식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 바로 그것이다. 변호사들이 영업에 뛰어들어 고객들을 끌어모으고자 혈안이 된다면 그 피해가 고스란히 국민에게 전가되고 법조 영역의 특성상 국민의 기본적인 권리까지 훼손할 수 있다는 논지이다. 비슷한 이유로 의료인이 아닌 자의 의료광고 역시 금지되고 있다. 해당 논쟁은 좀처럼 사그라 들지 않고 있는데, 변호사단체가 로톡 가입 변호사에 대한 징계에 착수하자 로톡이 헌법소원 심판 청구와 공정위 신고 등을 이어나가며 소송전으로까지 번지는 모양새이다. 다른 산업의 존폐를 가늠하던 ‘법’이 스스로의 운명을 저울 위에 돌려두게 된 것이다.


Not enough data


    두번째로, 리걸테크의 기반이 되어야할 데이터의 양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AI와 같은 기술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양의 학습 데이터가 확보되어야 한다. 리걸테크에서 요구하는 데이터란 결국 법원의 입장이 담긴 판례를 의미할 것인데, 현재 국내 대법원 판례 중 2~3%만이 공개되고 있는 실정이다. 각급 고등법원과 지방법원의 하급심 판결문의 경우 문제가 더 심각하여 사실 상 공개되지 않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이다. 이에 반해, 미국은 현재 판결문은 물론 소송 경과까지 모두 공개하고 있는데, 판례가 절대적 효력을 지니는 영미법계와 국내 법제가 답습하고 있는 대륙법계의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존재한다. 일반 대중이 소송 개시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 필요한 정보는 대법원의 최종심이라기 보다는 하급심 판결문이라는 점에서 문제는 심각성을 더 한다. 그러나 치밀한 법원 사람들, 이 역시 나름의 근거를 지니고 있다. 판결문에는 소송 당사자들의 개인정보가 포함되어 있기에 이를 비실명화 하더라도 개인정보가 노출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모든 것은 변하기 마련


     여전히, 우리는 2021년을 살아가고 있다. 변화의 흐름을 잠시 거스를 수는 있겠으나, 사람들의 인식과 사회 제도는 미래를 향해 휩쓸려 나간다. 앞서 제시한 국내 리걸테크의 어려움 역시 어떤 방향으로든 해결을 목전에 두고 있다. 리걸테크의 변호사법 위반 소지에 관하여 먼저 말하자면, 2011년 법원이 법조인들 사이의 친소관계를 공개한 '로마켓'의 사업모델을 불법으로 규정했던 것과 달리 지난 8월 25일 법무부는 로톡 플랫폼이 변호사법을 위반하지 않았다는 유권해석을 내놓았다. 유사한 서비스인 '네이버 엑스퍼트' 고발건 역시 경찰 검토 결과 불송치 결정이 내려진 상황이다. 판례 데이터 역시 머지 않은 시점에 대중에게 공개되지 않을까 하는 조심스러운 전망을 더하고 싶다. 얼마 전 이루어진 '데이터 3법' 개정안을 통해 이러한 가능성을 점쳐볼 수 있을 것이다. '데이터 3법' 개정안의 골자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를 맞이하여 데이터 기반 산업에 보다 우호적인 환경을 조성해주기 위하여 '가명정보'의 개념을 도입하고 이러한 데이터의 거래를 용이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처럼 데이터의 자유로운 활용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입법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법원이라고 하여 언제까지고 판례 데이터를 숨기고 있을 수만은 없어 보인다. 200여년 전의 러다이트 운동이 산업혁명을 막지 못하였듯 법조계의 성토 역시 막바지를 향해가고 있다.  필요한가 필요하지 않은가, 옳은가 그른가의 당위 판단은 잠시 물러두더라도,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에게도 리걸테크와 함께 하는 세상은 기정 사실화 된 것이다.


    

<법률 서비스 시장 참여자들의 사회적 효용 증대 효과>  출처: 2020 스타트업코리아 보고서

   

     리걸테크가 확산되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달라 질 수 있을까? 사용자 입장에서는 법률 서비스를 보다 싼 가격에 쉽게 이용할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변호사에 대한 충분한 정보 없이 건당 300만원을 웃도는 수임료를 지불하는 것에 부담을 느낄 것이다. 리걸테크가 보편화되면 이러한 문제점이 상당부분 해결될 수 있다. 실제로 미국의 기업 법무 변호사 선임 비용은 건당 최대 6000달러 수준까지 형성되어 있지만 리걸테크 기업 '리걸줌'은 월 149~369달러에 기업이 원하는 법률 사무를 제공한다. 한달에 1회만 이용하더라도 80% 가량의 비용 절감효과가 따라오는 것이다. 그렇다고 변호사들이 무작정 희생해야하는 것도 아니다. 리걸테크의 도입을 통해 변호사들 역시 업무 시간을 보다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 된다. 현재 법령과 판례의 검색에 총 업무 시간의 20% 이상이 사용되고 있는데 이를 80%까지 절감할 수 있다. 단순 반복적인 업무에서 벗어나 보다 핵심적인 작업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사담: 법조계 얘긴줄 아셨나요? 


    당연히 맞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분명 법조계에 대한 이야기가 맞다. 그러나 국내 리걸테크의 도입과정에서 촉발된 플랫폼과 법조인 사이의 갈등이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미래의 축소판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스친다. 비단 법조계가 아니더라도 디지털트랜스포메이션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고 이미 수많은 산업군이 그러한 과정을 거쳐 재편되었다.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대두될 수 밖에 없는 것이 바로 기술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물음이다. 이제는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타다와 택시 산업계의 갈등 역시 비슷하다. 타다 대표가 기술의 밝은 면과 순수한 혁신을 이야기할 때 익명의 택시기사는 생존을 외치며 충돌한다. 새로운 기술은 분명 새로운 효용을 가져다 주지만 그 과정에서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기술이 인간을 완전히 대체할 것이라는 디스토피아적 전망을 내놓는 사람들 역시 존재한다. AI가 인간 전문가를 온전히 대신할 수 있다면 필자 역시 이 글을 끝으로 세계 여행이나 떠날까하는 마음도 든다. 쉽게 답을 낼 수는 없는 질문이겠지만 10년 뒤 우리가 어떤 미래를 살아가게 될지 또 20년 뒤의 우리는 어떠할지 생각을 해보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사념을 덧붙이며 이만 마친다.




연세대 경영 박준형

jhp9346@yonsei.ac.kr

매거진의 이전글 공간은 내가 만들게, 누가 뛰어놀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