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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Make Noise Not Clothes

미학의 양면성을 담은 반항적인 혁신 정신에 대하여

연세대 경영혁신학회 32기 김도영


 

출처: 언더커버


     보편적인 경향과 다른, 다소 낯선 가치를 배타적으로 추구하고 향유하는 소수 집단의 문화, ‘컬트(cult)’. 공격적•반항적인 록(rock) 음악 장르 펑크 록의 정신을 공유하는 양식, ‘펑크’. 이러한 펑크의 의미를 종합해 사회 일반과 얼마간 동떨어진 반발적이고 과격한 문화의 형식을 대표하는 브랜드가 있다. 일본의 패션 디자이너 타카하시 준의 ‘언더커버(Undercover)’는 펑크라는 추상적 가치에 대한 새롭고 혁신적 정의를 통해 사회적 혼란의 시기에서 패션을 주축으로 한 종합예술로 개개인의 삶의 방향성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일본의 경제•문화적 과도기에서 발생한 사회적 혼돈: 1980년의 명과 1990년의 암] 

출처: (좌) hypebeast (우) Klublu/Shutterstock


    타카하시 준은 1969년 일본 군마의 키류 출신이다. 이러한 그의 출생의 시공간적 특성은 그의 언더커버의 탄생 및 언더커버가 담고자 표방하는 혁신에도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1980년대 일본과 1990년대 일본은 경제 상황의 급변으로 인한 괴리감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1985년 플라자 합의가 이러한 변화의 기점이 되는 사건이다. 일본은 1960년대부터 미군에 군수품 및 물자를 공급하며 확보한 자본을 바탕으로 제조업 부문에 투자했다. 그 성과로 오일 쇼크 등의 글로벌 경제 위기도 일본은 제조업 기반 대기업들이 기술력을 강점으로 확보한 수출 우위를 기반으로 극복하는 듯했다. 일본의 수출 호황으로 자산시장이 빠르게 활성화되던 중, 일본의 성장에 위협을 느낀 미국이 이를 저지하기 위한 행동을 취한다. 미국은 플라자 합의로 미국의 달러를 인위적으로 하락시켜 일본 엔화의 가치를 올리는 환율 조정을 진행했다. 플라자 합의의 영향이 일본 경제에 즉각적으로 나타난 것은 아니다. 일본 정부가 무역환경 악화로 인한 경제 악영향을 해소하기 위해 금리 인상을 펼치며 자산 시장의 비정상적 가치 상승이 발생했고, 위태로운 상태로 지속되던 자산 가격 폭등을 의미하는 일본 경제의 ‘버블’이 터짐과 동시에 1990년대 초반부터 일본 경제의 장기 불황이 시작됐다. 


[사회적 혼돈 속 개인이 겪은 혼란]


    이전에도 일본의 경제 호황은 지속적인 흐름이었지만, 1980년대 일본의 경제는 이상 수준까지 경제가 과열되어 있었다.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 초반에 탄생한 타카하시 준의 세대는 정체성이 형성되는 유년기 및 청소년기에 엄청난 경제적 호황을 경험한 한편, 사회인으로서 새로운 출발을 해야 하는 시점에 경기 불황의 시작을 마주해야 했다. 경제 이상이 감지되기 시작한 1980년대 말에도 4%를 유지하던 일본의 청년실업률은 2000년대에 접어들면 10%까지 치솟았다. 경제 상황의 급변으로 인해 어린 시절부터 정의하고 있던 국가 및 스스로의 정체성 기반이 흔들리며 개인들은 극심한 정서적 혼란을 겪게 된다. 실제로 취직에 실패한 청년들이 과거의 경기 호황과의 괴리감으로 인해 자신의 실패를 더욱 크게 받아들이며, 아예 구직을 단념하거나 은둔을 일삼게 된다. 이러한 문제를 겪는 개인의 수가 늘면서 ‘니트족(구직 단념자)’,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 등 이들을 지칭하는 단어가 생기고, 개인의 정서적 혼란으로 인한 일탈이 사회적으로 확대되어 사회문제로서 받아들여지기 시작한다. 


    타카하시 준이 태어난 군마의 키류는 실크, 레이스 등 서양식 직물제조로 유명한 곳이다. 패션 등의 의복 양식 뿐만 아니라 어휘 등 언어 양식까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양의 물질 및 비물질 문화가 전후 본격적으로 일본에 전면 유입되었다. 패션 서양 문물의 적극적인 수용이 본격화되었던 시기에 주요 가치관을 형성했던 타카하시 준은 펑크, 섹스피스톨즈 등 서양의 언더그라운드 컬트에 주목했다. 여기에 1980년까지 버블경제로 호황을 누리며 패션에도 아낌 없이 돈을 쓰던 일본 국민의 소비 경향과 맞물리며 일본 패션 산업은 다각화 및 고도화되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타카하시 준의 출생 및 성장 배경과 맞물려 일본의 디자인, 미국의 영감, 영국의 펑크가 결합된 양면적 정체성을 갖춘 언더커버가 탄생했다. 


[언더커버의 가치관 혁신: 개인의 개별성 획득 권리를 위한 외침] 


    경제/문화적 괴리감으로 인해 일본의 기성 세대가 정서적 혼란을 겪던 1990년대, 타카하시 준의 언더커버가 세상에 나왔다. 언더커버의 혁신은 펑크라는 추상적 가치의 새로운 개념화를 통해, 혼돈의 시대적 흐름 속에서 개인의 정체성에 대하여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을 제공함으로써 개인이 겪던 정신적 혼란을 극복할 수 있는 여지를 주었다는 데에 있다. 


    언더커버는 펑크를 특정 문화 양식으로 정의하지 않는다. 언더커버가 정의하는 펑크가 혁신적인 것은 펑크를 생활양식 전반으로 보아 사업을 전개했다는 점과 이를 바탕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며 교류할 수 있는 문화로 만들었다는 두 가지 지점에 있다. 언더커버가 의류/패션 브랜드로서 출발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타카하시 준은 이를 의류에 국한하지 않고, 뮤직비디오나 화보 같은 영상/지류 매체 제작의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 그리고 다국적 음악 아티스트 에이전시인 UNDERCOVER RECORDS까지 연결 지어 사업을 전개했다. 뿐만 아니라, 기존의 마냥 과격하고 반체제적이라는 펑크의 이미지와는 다소 다르게, Madstore UNDERCOVER 등의 하위 브랜드 설립을 통해 베이직 라인 제품들을 판매함으로써 생활 양식으로서의 펑크가 더 많은 대중에게 전달될 수 있는 사업을 전개했다. 그리고 타카하시 준은 개별 사업으로 전개하던 다양한 생활양식으로서의 펑크를 다시 언더커버의 패션 컬렉션에 녹여내어 보여주었다. 이는 사람의 일상에 가장 가까운 곳에 존재하는 생활양식 중 하나인 의류에 대해 기존의 의류가 중심이 되던 컬렉션을 탈피하는 혁신적 접근법을 적용한 것이다. 그리고 그 대신, 언더커버의 컬트인 펑크를 생활양식으로서 대중에게 보여주는 시도를 거듭하고 있다. 일례로, 언더커버의 2020-21 A/W 컬렉션 ‘Fallen Man’은 일본 영화계 거장인 쿠로사와 아키라(黒澤 明) 감독의 영화 ‘거미의 성’을 재해석하여 전개됐다. 이 재해석에는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에 대한 현대 음악가 론 모렐리의 리믹스 버전 등이 포함되었고, 생활양식 전반으로서 펑크의 재해석과 사람들과의 공유라는 가치를 담고 있는 사례이다. 

출처: 언더커버


    다양한 문화예술의 세부 양식까지 펑크에 통합해 해석한 타카하시 준은 예술 경향 또한 본인의 브랜드에 반영해서 혁신적 메시지를 전달한다. 타카하시 준이 정의하는 펑크의 기반이 되는 예술 흐름은 ‘해체주의(deconstruction)’이다. 해체주의란 전통적인 구조주의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한 흐름으로, 그 비판의 방법으로 단순한 고정관념을 깨트리는 모든 수단을 차용한다. 해체주의 예술의 특징을 단편적으로 가장 잘 설명해주는 키워드는 ‘탈형식주의’와 ‘콜라주’이다. 23년도 언더커버의 파리 컬렉션에서도 결과물들이 공통점을 갖지 않고 독창적 기법으로 제작된다는 탈형식주의가 잘 드러난다. 의복의 좌우, 상하가 데칼코마니처럼 정확히 들어맞지 않고, 오히려 컷팅 디테일이나 디자인 등이 불규칙하게 들어간 언더커버의 코스튬은 반체제를 반항으로 표현하기보다도, 다원화된 현대사회를 의미하는 것으로 다가온다. 한편 단편화된 이미지를 재구성하여 조합함으로써 새로운 이미지를 형성하는 콜라주는 언더커버의 음악 및 영상 사업에서 두드러진다. 음악과 의류, 영상과 의류처럼 서로 다른 문화 양식의 조합과 재구성을 통해 개별적인 가치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처럼 언더커버는 과도기의 사회경제적 혼란 속에서 함께 개인의 정체성에 대한 혼돈으로 고통 받던 개인들에게 개별성과 독창성의 가치와 메시지를 다양한 문화양식으로 강렬하게 전달함으로써 혁신을 일으켰다. “우리는 옷이 아닌 소음을 만든다”는 언더커버의 캐치프레이즈 속에는 패션산업 및 펑크라는 컬트에 대한 혁신적 정의를 기반으로 펑크에 대한 통념인 단절이 아닌, 오히려 소음으로 소통하자는 메시지가 담겨있다. 결국 언더커버는 생활로서의 펑크를 담은 메시지로 혼란한 현대 사회 속 개인들이 교류하고 소통할 수 있는 비상구를 확보하는 혁신을 일으킨 기업으로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연세대 정치외교 김도영

doyoungkim111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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