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경영혁신학회 34기 김지윤
Mon Ami, 나의 친구 '모나미'는 우리 모두에게 너무나 익숙한 브랜드이자 국내 문구류 업계 1위 기업이다. 이 모나미가 작년 기준으로 10년 만에 적자를 기록했다. 모나미의 지난해 매출액은 1415억원으로 전년(1495억원) 대비 5.3% 감소했고, 영업이익은 23억원 적자를 냈다. 영업적자를 기록한 건 2013년 이후 처음이다. 모나미의 위기설이 어제오늘의 일만은 아니다.
2012년(2625억원)까지 2000억원대였던 매출액은 2013년부터 1000억원대를 벗어나지 못하면서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모나미의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모나미의 위기를 시기에 따라 세 단계로 나누자면, 첫 단계는 2000년대 중반부터 이어져 온 문구제조 산업의 불황이다. 이때 가장 큰 타격을 준 건 국내 학령인구의 감소이다. 출산율이 떨어지면서 학용품의 주 소비 인구인 학령인구가 크게 감소하기 시작했다. 이와 동시에 컴퓨터가 대중화되면서 사무 현장에서 필기구를 사용하는 일도 크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문구류 산업을 사양 산업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확산되었는데, 당시 한국문구유통업협동조합에서는 문구류 판매가 매년 74.3%씩 감소할 것이라는 부정적인 전망을 예상하였으며, 실제로도 2003년 1236개였던 국내 문구류 생산업체가 2014년에는 539개로 줄어드는 결과를 보였다.
모나미도 시장 전체의 쇠퇴 분위기에 위기를 피할 수 없었다. 이에 모나미가 택한 방법은 사업 다각화였다. 문구류를 생산만 하던 모나미가 문구 소매 사업에 진출한 것이다. 펜을 만드는 잉크 기술과 관련이 높은 HP와의 제휴를 통해 프린터 서비스를 제공하는 문구점 사업을 시작하였다. 중대형 문구점인 ‘모나미스테이션' 안에 ‘HP 프린트 스테이션'을 만드는 shop in shop 형태였다. 결과는 꽤나 성공적이었는데, 2011년 초반까지 지속적인 사업 확장을 통해 최대 매출을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신사업의 달달함도 오래가지는 못했다. HP의 갑작스러운 수수료 인상과 문구 산업의 전반적인 하락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2013년 제휴 계약 종료와 함께 사업 철수를 택하며 적자를 기록하였고, 매출의 급격한 하락세가 시작되었다.
이처럼 모나미는 저물어가는 문구류 생산업에서 탈피해 야심차게 신사업에 도전하였으나, 결국 아픈 상처를 안고 다시 본업이었던 문구 생산에 집중하고자 한다. 다시 본업으로 돌아온 만큼, 이번에는 본업에서의 차별화를 꾀하였는데, 바로 필기구를 고급화하는 전략이다.
이 전략은 독일제 고급 펜 브랜드인 ‘라미’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스마트기기의 확산과 학령인구 감소라는 시장 전체의 위기 상황에도 불구하고 ‘라미'가 국내에서 큰 인기를 끈 것을 보고, 모나미는 이제 ‘펜’의 역할이 바뀌었다는 판단을 내린다. 단순히 필기용으로써 펜은 가치가 없으며, 액세사리, 애장품, 수집의 대상, 좋은 선물 등으로 가치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펜 자체를 고급화하는 전략으로 다양한 프리미엄 상품을 선보였다.
이 전략도 초반에는 성공적인듯 했다. 모나미 153의 탄생 50주년 기념 한정판으로 출시된 정가 2만원의 ‘모나미 153 리미티드 블랙 1.0’은 출시 2시간 만에 완판되고, 10만원에 중고거래가 이루어지기도 하는 등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60주년 기념으로는 정가 20만원의 제품이 출시되기도 하는 등 고급 제품을 지속적으로 출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 전체의 한계를 극복하기에는 역부족이었고, 거기에 중국 등 신흥국에서 유입된 저가 상품으로 인해 입지가 점점 약해져갔다.
이러한 위기 상황이 지속되자, 모나미는 기존의 프리미엄 전략에 더해 새로운 사업을 발굴하고자 하는 시도를 하게 된다. 2010년대 후반부터 다시 시작된 사업 다각화의 첫 번째는 패션 사업이다. 흰 상의와 검정 하의로 설명되는 일명 ‘모나미룩’을 직접 선보인 것이다. 이상봉 디자이너와의 협업을 통해 ‘모나미 패션 랩’에서 티셔츠, 스커트, 팬츠 등 18종의 모나미룩을 출시했다.
두 번째는 화장품 사업이다. 필기구를 지난 60년간 만들며 쌓은 색조 배합 노하우와 사출 금형 기술력 등을 활용하여 펜슬형 아이라이너, 아이브로우 등을 생산하는 화장품 OEM·ODM 사업에 착수했다. 다만, 사업 1년차였던 지난해 모나미코스메틱의 매출액은 3억 원에 그친 반면, 단기순손실은 32억 원에 이르는 결과를 낳으며 큰 재무 부담으로 작용한 동시에, 10년 만에 적자를 기록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더군다나 이미 포화 상태인 화장품 시장에서 모나미코스메틱이 살아남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마지막으로 오프라인 매장인 ‘모나미스토어’를 과감하게 늘리는 전략을 취했다. 경험소비에 대한 선호가 높아지는 최근 트렌드에 따라, 소비자 접점을 늘리기 위한 선택이다. 기존 문구 제품 뿐 아니라 ‘모나미 패션 랩’의 의류 제품 등을 포함한 다양한 디자인의 라이프스타일 상품을 함께 선보이고 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소비자 경험을 적극적으로 장려한다는 점인데, 잉크 랩, 노트 DIY 체험 등을 통해 나만의 제품을 커스터마이징해 볼 수 있는 서비스도 제공 중이다.
이렇게 사업을 확장하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지만, 이 시도가 성공적인 결과를 낳을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미지수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모나미는 학령 인구의 감소와 사무 디지털화에서 시작된 시장 전체의 한계 상황을 탈피하고자 본업인 문구 사업에서의 차별화와 동시에 타 산업으로의 진출이라는 두 가지 해결책을 병행하고 있다. 하지만 그 모든 방면에서의 노력이 매출 하락과 영업 적자의 구렁텅이에서 벗어나게 하지는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필자는 그 이유가 모두 모나미의 정체성을 살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친구'라는 뜻을 가진 기업명 ‘Mon Ami’에서 드러나듯, 모나미는 모든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편하고 친근한 이미지로 언제나 우리 생활 한켠에 존재해왔고, 이러한 강점을 기반으로 문구류 시장 국내 1위의 자리를 여태껏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 모나미가 보이고 있는 행보는 여기에서 크게 벗어났다고 느껴진다. 먼저, 펜의 프리미엄화 전략부터 살펴보자. 분명 50주년, 60주년처럼 시기에 맞게 이벤트성으로 출시하는 모나미펜이 대중의 이목을 끌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이벤트가 주목을 받는 것도 저렴하고 친근한 이미지의 브랜드인 모나미가 20만원짜리 비싼 펜을 출시한다는 그 이질감에서 비롯되는 관심이다. 이러한 관심이 단기적인 매출 상승에 도움이 될 수는 있겠지만, 이러한 현상을 모나미가 앞으로도 프리미엄화 전략을 유지해도 괜찮다는 신호로 이해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 기존의 브랜드 이미지와 정반대되는 행보가 계속된다면, 처음과 달리 이색적이라는 장점은 줄어들 것이고 장기적으로는 브랜드 정체성을 해치는 결과까지도 이어질 수 있다.
극단적인 사업 다각화도 마찬가지이다. 패션랩의 경우, ‘모나미룩’이라는 이슈에서 비롯된 잠깐의 관심을 끌 수는 있을 것이다. 대중적으로 화제가 된 이슈를 활용하는 마케팅으로써는 성공적이다. 하지만, 앞의 프리미엄 전략과 마찬가지로, 이를 패션 사업 진출로 연결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사람들을 ‘모나미룩'을 재미있게 받아들일 수는 있으나, 그 재미 요소만 가지고 지속적인 사업 확장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모나미가 시장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유지 및 확장이 가능한 전략을 선택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선택은 모두 단기적인 마케팅으로써만 적합한 선택이었다. 잠깐의 이슈가 계속되기를 바라는 것은 이루지 못할 꿈이다. 그렇다면, 모나미가 앞으로 장기적 성장을 위해 해야 하는 선택은 무엇인가?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브랜드 헤리티지를 살리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사업을 다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오랜 브랜드 헤리티지에 기반하여 점진적으로 새로운 세대, 그리고 새로운 시장에 다가가는 태도가 필요하다.
현재 가진 자산 중, 이러한 전략에 가장 적합한 것은 ‘모나미 스토어'이다. 오프라인 매장을 통한 다양한 직접 경험을 제공하며, 다시금 대중들에게 ‘친근함'의 이미지를 강조하는 것이 필요하다. 모든 세대가 함께 공감하고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체험 활동을 제공하며 오래 지켜 온 브랜드 이미지를 공고히 하고, 동시에 앞으로의 핵심 소비 세대층이 될 MZ세대에게 접근할 수 있는 ‘신선한' 이미지를 함께 전달해야 한다. 지금 시행하고 있는 잉크 랩, 노트 DIY 체험도 그 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최근에는 MZ세대를 중심으로 ‘다꾸(다이어리 꾸미기)’ 트렌드와 함께 글쓰기나 캘리그래피, 필기구 수집 등의 취미가 급부상하고 있다. 아날로그 감성이 다시 눈길을 끌면서 새로운 수요층이 늘어나고 있는데, 이러한 수요에 맞게 상품군을 다양화하고 ‘다꾸' 감성에 맞는 경험을 제공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예를 들어, 모나미 스토어에서는 다이어리 꾸미기 워크숍이나 캘리그래피 강좌를 열어 고객들이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모나미의 브랜드 헤리티지에 기반한 진출 분야로는 디지털 필기 도구도 있다. 사무 디지털화의 일환으로 최근에는 종이에 필기를 하기보다는 태블릿 PC에 필기를 하는 사람이 월등히 늘어났고, E-잉크에 대한 관심도 늘어나고 있다. 필기의 트렌드가 디지털로 이동하고 있는 시대에 모나미도 디지털 시대에 발맞춘 제품 다양화를 통해 지속적인 사업 성장을 도모할 수 있다. 기존 사업 분야와 전혀 연관이 없는 패션이나 뷰티 산업으로의 진출은 단기적인 관심을 끌 수는 있지만, 브랜드 헤리티지를 전혀 활용하지 못하여 소비자들의 신뢰와 지속적인 관심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필기와 관련된 산업이라면 다르다. 지난 60년 간 필기를 연구해온 기업이 새롭게 변화한 디지털에서의 필기로 진출하는 것은 오히려 그간의 브랜드 헤리티지와 신뢰를 활용함과 동시에 장기적인 성장까지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동시에 타겟하는 것이 어쩌면 역설적이라고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모나미의 오랜 역사와 현대적인 혁신을 동시에 포용하는 전략으로, 브랜드의 전통을 지키면서도 현대의 변화하는 소비자 요구에 대응할 수 있는 유연한 접근 방식이다. 이러한 이중 전략을 통해 모나미는 다양한 소비자층을 만족시키고, 지속 가능한 성장의 길을 열어갈 수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모나미는 브랜드 헤리티지를 유지하면서도 디지털 시대에 맞춘 혁신을 통해 새로운 시장에 진출하는 전략을 채택해야 한다. 이는 단기적인 성공이 아닌 장기적인 성장을 도모하는 방향으로, 모나미의 브랜드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는 길이다.
오랫동안 ‘우리의 친구'로 곁을 지켜온 모나미가 앞으로는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성장할 수 있을지 기대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연세대 경제학과 김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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