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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에 가려진 자기계발 불황의 시대

연세대 경영혁신학회 34기 염민주


너도나도 '쇼펜하우어’


    “노력해서 불행을 개선할 수 없는 인생, 분투해서 정의를 이룩할 수 없는 나라”

    요즘 한국을 설명하는 말이다. ‘헬조선’이라는 대명사가 되어버린 시대 풍자적 유행어를 넘어서 이제는 희망과 발전, 성공을 할 수 없는 포기의 시대로 접어든 듯하다. 이런 시대 상황을 적나라하게 반영하듯, 염세주의 철학자로 이름을 떨친 쇼펜하우어의 책이 서점 곳곳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2024년 5월 교보문고 매대

    하석진이 방송에서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를 읽는 모습이 공개되면서 이 책은 순식간에 30만 부 이상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이를 기점으로 한국에는 니체에 이어 쇼펜하우어 붐이 온 듯하다. 철학 관련 책이 이렇게 많이 팔리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고 한다. 이 책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쇼펜하우어가 직접 쓴 철학 이론서가 아니다. 카테고리상 ‘철학’으로 분류되지만 내용상 현대의 저자(강용수)가 자신의 견해를 넣어 재해석한 자기계발서에 가깝다. 그리고 이런 포기의 시대에 우리는 ‘쇼펜하우어 붐’을 넘어선 ‘자기계발서 붐’을 경험하고 있다.




"자기계발은 불황을 모른다"


    사람들은 고통의 시간도 어떻게든 살아보려 한다. 이렇게 자신의 불안한 마음을 안정시키려는 태도는 자기계발서 시장의 호황으로 엿볼 수 있다.

    예스24 집계 결과에 따르면, 2022년부터 올해까지 매년 새해를 앞두고 자기계발 분야 도서 판매량이 증가했다. 2023년 12월과 올해 1월에는 전월 동기 대비 각각 15.4%, 13.7%의 상승세가 이어졌으며 2023년 예스24 종합 베스트셀러 1위는 <세이노의 가르침>이 차지했다.


[표1] 2022년~2024년 연말연시 자기계발 분야 월별 판매증감률
올 3월 2일 출간 직후부터 최근까지 무려 39주 연속으로 예스24 종합 베스트셀러 10위권을 유지한 올해 최대 히트작이다. <세이노의 가르침>은 순자산 천억 원대 자산가 '세이노'가 지난 20여 년간 발표해 온 주옥같은 칼럼들을 모은 책이다. 당연히 그렇다고 믿고 있던 것들에 'No!'를 외치고 제대로 살아가라는 뜻이 담긴 필명 '세이노(Say No)'처럼 날카롭고 직설적인 화법으로 인생의 통찰을 전한다.
(출처: 예스24)

[표2] 최근 3년간 종합 베스트셀러 1위 도서


    2022년과 2023년에는 힐링 소설이 종합 1위를 차지한 걸 생각한다면, 판타지 속 세계에 살던 독자들의 관심이 무섭게 자기계발서로 옮겨왔다는 걸 알 수 있다. 앞서 언급한 어려운 경제 상황 속 현실을 직시하고 내면의 안정을 찾으려는 시도 아닐까.

    2023년에는 불확실한 미래 전망 속 단단한 내면을 갖추려는 자기계발서가 지속적인 인기를 얻었다. 인문서 또한 자기계발서와 비슷한 목적성을 가진 도서가 상위권을 차지했고, 취업 및 이직을 위한 실용서들도 상위권으로 치고 올라왔다.


[표3] 2023년 종합 베스트셀러 20

| 자기계발서: <세이노의가르침>, <김미경의 마흔 수업>, <퓨처 셀프>, <원씽 THE ONE THING>, <역행자 확장판 유니버스 에디션>

| 인문서: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도둑맞은 집중력>

| 실용서: <ETS 토익 정기시험 기출문제집 1000 Vol.3 READING 리딩>, <ETS 토익 정기시험 기출문제집 1000 Vol.3 LISTENING 리스닝>, <해커스 토익 기출 VOCA 보카>, <2023 큰별쌤 최태성의 별별한국사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1,2,3급) 상, 하>


    만화/라이트노벨 분야의 0권에서 21권으로의 성장이 슬램덩크 덕인 걸 감안하면, 자기계발 분야의 베스트셀러 비중은 굉장히 높다. 경제/경영 분야도 자기계발서와 비슷한 맥락으로 상위권을 차지했다. 투자나 재테크 관련보다는 <사장학개론>, <돈의 속성 300쇄 리커버> 등 자기계발 성격을 띠며 개인의 성장을 돕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실제로 ‘자기계발서’라고 분류된 도서 외에 인문이나 에세이 분야에서도 자기계발의 성격을 띠는 책들이 많은 것을 감안하면, 자기계발을 위한 도서는 그 어느 때보다 큰 붐을 이끌고 있다.




돈과 명예, 알겠는데 난 내 마음이 더 중요해


    불안한 마음, 외로운 마음, 슬픈 마음. 어떤 형태가 되었든 불완전한 마음을 극복하는 방법은 꽤 다양하다. 그리고 수많은 책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결책을 제시한다.

    2024년 5월 4주 기준, 교보문고 종합 주간 베스트* 1~20위에 이름을 올린 도서들의 홍보 문구를 적어봤다. (어린이 도서, 정치, 실용서는 제외했다.)그리고 이들이 자신의 불안을 ‘외부’에 귀인 하는가 ‘내부’에 귀인 하는가를 기준으로 나뉘는 현상을 목격할 수 있었다.

*오프라인+온라인에서 판매되는 도서와 eBook의 전주 수요일~금주 화요일간 가장 많이 판매된 순위 


[case 1] 1위_<불면의 법칙> 절대 변하지 않는 것들에 대한 23가지 이야기. “앞으로 십년 동안 무엇이 변할 것 같나요?” 

[case 2] 2위_<나를 소모하지 않는 현명한 태도에 관하여> “기분은 선택할 수 있어도 태도는 선택할 수 없다” 독일 최고의 언론인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의 삶과 행복, 태도와 성공에 대한 우아한 통찰 case 2

[case 2] 5위_<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 마음의 위기를 다스리는 철학 수업 /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라! 마흔의 삶에 지혜를 주는 쇼펜하우어의 30가지 조언

[case 2] 6위_<모순> 내 삶의 부피는 너무 얇다. 겨자씨 한 알 심을 만한 깊이도 없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일까.

[case 2] 7위_<하루 한 장 나의 어휘력을 위한 필사 노트> 할 말은 많지만 쓸 만한 말이 없는 어른들을 위한 숨은 어휘력 찾기. 니체에서 김예란까지, 동서고금을 아우르는 필사하기 좋은 작품 134편 수록

[case 2] 10위_<세이노의 가르침> 피보다 진하게 살아라

[case 1] 11위_<돈의 심리학> 당신은 왜 부자가 되지 못했는가. 전 월스트리트 저널 기자가 수많은 취재와 연구 끝에 깨달은 부의 비밀

[case - ] 12위_<나의 돈키호테> “그 시절 우리는 모두 주인공이었다” 2024년 봄, 또 한 번 찾아온 가슴 따뜻한 우리들의 이야기

[case 2] 13위_<어떻게 살 것인가> 여러분은 어떻게 살려고 하십니까? 아니, 어떻게 사려고 하십니까?

[case 1] 14위_<원칙으로 수익 내는 단타의 기술> “당신의 계좌가 자꾸 흔들리는 이유는 기준과 원칙이 없기 때문이다!” 100만 원을 20억 원으로 만든 전설의 대학생 트레이더 만쥬의 매매 기법부터 심법, 시장에 따른 전략까지!

[case 1] 15위_<밸류에이션을 알면 10배 주식이 보인다> “배터리 아저씨의 전략은 밸류에이션 투자였다!” 증시의 버블과 악재, 대중의 심리에 휘둘리지 않고 제2의 에코프로를 찾아 투자하는 법

[case 2] 16위_<나는 읽고 쓰고 버린다> “내게 독서란 책이 아니라, 사람을 남기는 것이다.” 손흥민의 축구 인생을 오나벽하게 구축한 아버지 손웅정의 독서 노트, 그 정중앙을 가로지르는 이야기!

[case - ] 17위_<삼체 1: 삼체문제> 아시아 최초 휴고상 수상. 우주에 관한 대담한 상상력과 시간의 본질, 창세의 비밀에 대한 새로운 신화!

[case 1] 18위_<부자의 마지막 가르침> “인생이 바뀔 돈의 설명서가 이제야 등장했다!” 당신은 무자의 가르침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 삶의 자유를 위한 부의 알고리즘

[case 2] 19위_<삶이 흔들릴 때 뇌과학을 읽습니다> “우리가 알고 싶은 인생의 모든 해답은 ‘뇌’ 안에 있습니다”

[case 2] 20위_<일류의 조건> 시대와 세대를 초월한 자기계발 바이블. 독자 문의 쇄도 18년 만에 전격 복간


    1~20위를 살펴본 결과 20권 중 14권, 즉 70%가 카테고리 상 ‘자기계발’로 분류되어 있지 않아도 자기계발적 성격을 띠고 있었다. 그리고 그 14권 중 외부 상황을 해결하려는 case 1의 도서는 5권뿐. 금전적, 사회적 성공을 이루는 법을 이야기하는 책보다 마음에 집중하는 책이 더 많은 선택을 받았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정말 자기계발서로 ‘계발’하고 있을까? 불완전한 내 마음을 채우려는 독서는 얼마나 효과적일까? 그 어느 때보다 내 불완전한 마음을 채우려는 독서가 주목받는 지금, 자기계발서 호황이 자기 계발의 호황을 의미하는가?




다시, 쇼펜하우어


(왼)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 - 강용수 지음 / (오)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 쇼펜하우어 지음

    

    이 글을 처음부터 읽었다면 top 20 베스트셀러를 보며 눈에 띈 책이 하나 있을 것이다. 바로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 필자는 이 책을 살펴보며 앞선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한다.

    쇼펜하우어의 대표 저서인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는 1년 동안 100권도 안 팔릴 정도로 이해하기 어렵고 난해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를 풀어 쓴 <소품과 부록>을 출간하고 나서야 쇼펜하우어는 60을 넘어 자신의 전성기를 맞게 된다.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의 제목만 보더라도 의문이 드는 게 정상이다. 쇼펜하우어가 말하는 ‘의지’와 ‘표상’은 무엇이며, 그래서 ‘의지와 표상인 세계’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걸까. 일상적으로는 와닿지 않는 200년 전 천재의 이 심오한 철학이 현재 붐을 일으키고 너도나도 읽는다는 현상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는 철학책이라기보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현대의 저자가 자신의 생각을 엮은 자기계발서다. 그 책을 살펴보기 전에 쇼펜하우어의 진짜 목소리를 이해해야 한다.


산다는 것은 괴로운 것이다.

    

    염세주의자, 인생을 고통으로 설명하는 것으로 유명한 쇼펜하우어는 인생을 고통으로 설명하며 행복에 관해 이야기했다. 이 기이한 철학을 이해하려면 먼저 그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봤는지 이해해야 한다.

    쇼펜하우어의 ‘의지’는 무엇일까? 일단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의미의 ‘will’은 아니다.

출처: 네이버 사전


    그는 의지’가 ‘인간만이 가지는 숭고한 어떠한 것’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의지는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물질과 생명체를 통해 펼쳐지며, 모든 생명체 및 비생명체는 자신만의 고유한 의지를 가지며 욕망하고 행동한다. 사람이 모이는 것도 의지이지만, 중력이 물체를 끌어당기는 것도 의지다. 그리고 이러한 의지 때문에 의지를 가진 모든 것은 서로와 충돌할 수밖에 없으며, 이렇게 의지를 기반으로 욕망하는 과정은 필연적이기에 고통이 따른다.

    즉, 세상 그 자체가 거대한 의지이며, 인간은 그저 톱니바퀴 같은 존재인 거다. 쇼펜하우어는 인간이 이러한 과정을 이해하고 욕망 추구에 목매는 것을 멈추면 고통을 줄일 수 있다고 말한다. 듣다 보면 불교가 떠오르기도 한다.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 진짜 쇼펜하우어 맞아?


    지금까지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를 계기로 자기계발서의 호황, 그 중에서도 주목받는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도서들, 그리고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살펴봤다. 이제 자기계발서 붐이 유용한지 알아보기 위해 ‘쇼펜하우어의 철학’과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를 비교해 볼 예정이다.

    다음은 교보문고 상세페이지에 들어가면 볼 수 있는 책 홍보용 인용구다.  

 

"산다는 것은 괴로운 것이다. 하지만 이 괴로움이 인생을 살아갈 힘을 준다."
"정신이 풍요로워질수록 내면의 공허가 들어갈 공간이 줄어든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나무도 튼튼하게 자라려면 바람이 필요하다. 인간도 건강하려면 운동이 필요하다."
"우리의 모든 불행은 혼자 있을 수 없는 데서 생긴다."
"오늘은 단 한 번뿐이고 두 번 다시는 찾아오지 않는 것을 명심하라."
"자존감을 갖고 살아라."


    해당 인용구를 지인 몇 명에게 전송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내용에 대해 무슨 생각이 들어? /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인 것 같아?" 대답은 다음과 같다.


"주어진 삶을 부지런히 열심히 살아온 사람 같아. 심신을 끊임없이 단련하면서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꿈을 이루려고 노력하는 사람."
"말만 보면 두 개 중에 하나인 거 같은데: 인스타 감성 교훈 문구 중독자 vs 뭔가 깨달은 사람. 근데 말마다 포인트 다른 거 보면 전자인 것 같아. 자기도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 것 같은데."
"전형적인 갓생러 느낌? 괴롭지만 바쁘게 사는 것을 추구한다는 생각이 들어. 근데 나한테는 ‘전형적인 갓생러’가 부정적이야. 괴롭고 바쁘게 살아서 얻는 게 뭔데 저렇게 살려고 하는 거지? 바쁘고 알차지만, 그걸로 괴로우면 나는 그게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해."
"되게 많은 실패를 겪어본 사람 같은데 그걸 강박적으로 더 많은 도전으로 메꾸려고 하는 사람 같아. 결과적으로는 본인이 원하던 목표에 달성한 것 같지만 어딘지 모르게 외로워 보이고.. 힘들어 보이고.."
"자기가 원하고 되고자 하는 자신의 이상적인 모습이 있는 듯. 그리고 그걸 위해서 노력하고 잘 안되면 힘들어할 것 같아. 이상에 현실을 맞춰가려고 계속 노력하는 느낌?"
"말은 쉽지."

    

    ‘강박,’ ‘목표 달성,’ 그리고 ‘이상’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인스타 감성 교훈 문구'라는 피드백이 나오기도 했다. 이런 답변들은 쇼펜하우어의 의지론을 이해해 그가 이 세상을 하나의 커다란 의지라고 보았으며, 인간을 톱니바퀴처럼 묘사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면 다소 어색하게 들릴 것이다. 즉,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가 집약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이 책을 가장 잘 설명하는 인용구들은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어느 정도 왜곡한다고 볼 수 있다. "말은 쉽지"라는 답변이 설명해주듯, 쇼펜하우어 철학의 이론적 맥락을 떼어놓고 결과만 말한다면 다소 평범하고 일상적인 격언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책을 안 읽어서 그런 거 아니야?


    책 소개글을 발췌해 불특정 다수에게 응답을 받은 것으로는 쇼펜하우어의 철학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음을 증명하기 어렵다. 책 소개 글만 읽는 것과 한 문장 한 문장을 곱씹으며 받아들이는 것은 너무나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 그래서 이번에는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의 독자들이 작성한 후기를 살펴봤다. 책을 읽은 사람들은 쇼펜하우어 철학의 이론적 맥락을 이해하고 있을까?

    네이버 블로그에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 후기’를 검색해 맨 처음 나오는 20개의 글**을 분석한 결과다.

**관련도순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정확히 이해하고 ‘삶은 고통이다,’ ‘행복은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이 없는 상태이다’ 같은 깨달음을 얻었다고 기록한 사람(=A)은 없었다. 다만 그의 철학을 잘못 이해한 리뷰(=C)는 6개였다.

“염세주의자인 쇼펜하우어는 ‘의지’에 대해 굉장히 중요시 했었구나, … 의지가 또 어떻게 보면 심리적인 거니까” - 히위고 (2024.04.13)
“낙천적인 마음으로 고뇌하지 말고 매일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면서 살자!” - 하코코 (2024.05.27)

    그 6개 중 3개의 리뷰는 ‘나는 특별하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위로와 힐링을 경험했다고 기록한다.

“한 번 뿐인 내 인생! 남과 비교말고 원하는대로 즐기며 살자!! 연초 개인적인 사정으로 치유를 받고 싶었기에 “넌 네 삶의 주인공”이라고 말해준 그렇게 이해시켜준 책입니다.” - 호루스 (2024.04.01)

    나머지 14개의 리뷰는 책의 요약본이었다. 그리고 ‘내가 불행한 건 나의 잘못이 아니야. 인생은 원래 고통인 거야.’ 혹은 ‘고독은 오히려 기회라고 했어. 내가 외로운 건 나쁜 게 아니야’라는 식의 위로를 받았다고 기록한다.




"마흔에 읽는 강용수네요"


    물론 모든 사람이 그러진 않았겠지만 내가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의 독자로부터 느낀 건 ‘내가 중요해’라는 인식에 기반한, 성공의 기준을 남에게 맞추지 말고 나의 내면의 집중하자는 식의 위로를 받았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쇼펜하우어가 소소한 행복을 이야기하고 고통으로서의 삶을 이야기한 배경은 ‘너는 중요한 사람이야’가 아니다. 쇼펜하우어는 이 세계는 하나의 의지로 이루어져 있고, 그 의지는 너무나 다양하고 크기도 다르며, 인간은 어떠한 숭고한 목적의식이 있어서 태어나고 자유의지를 가지며 살아가는 존재들이 아니라 그저 수많은 형태의 의지 중 하나라는 것이라고 말한다. 즉 자신을 초월한 세계를 인식하는 것에서 오는 깨달음을 기반으로 한다.

    대다수의 사람은 이러한 일종의 허무함이나 초월, 깨달음을 얻었다기보다는 ‘지금 나의 불행하고 고독한, 소소한 행복뿐인 삶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받아 행복해하는 모습이었다. 이게 쇼펜하우어가 원한 행복이었을까?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의 리뷰를 읽던 중 공감이 가는 리뷰를 몇 개 가져왔다.



“철학에세이라고 해야 하나?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충실히 담은 것인지 조금 의심스럽다. 쇼펜하우어가 말한 <의지>란 칸트의 물자체와 비슷한 형이상학적 세계자체를 말하는 것인데 이 책에서 저자는 마치 인간의 삶에 대한 의지인 것 처럼 이야기하고 있다…” - sy***** (2023.12.19)
“마흔에 읽는 강용수네요” - je***** (2024.01.07)


    해당 리뷰들은 ‘좋아요 순’으로 나열했을 때 각각 1위, 5위에 위치한 글로, 많은 사람의 공감을 받고 있다.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공부함으로써 마음의 양식을 채운다기보다는, 저자가 느낀 쇼펜하우어 철학의 감상문을 읽는 듯한 느낌이다. 

    결론적으로 앞선 20개의 블로그 글 중 저자와 쇼펜하우어를 구분해 읽은 사람도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그렇다면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는 에세이에 더 가깝지 않을까.




'자기계발'이라는 이름의 현실 도피


    <당신은 결국 무엇이든 해내는 사람>은 에세이 분야 2023년 연간 베스트셀러 2위에 자리한 책이다. 제목만 들어도 내가 뭔가 된 것 같고 위로를 받는가? 이와 비슷한 부류의 에세이는 차고 넘친다. <잘될 수밖에 없는 너에게>, <좋은 일이 오려고 그러나 보다>, <그대는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다>. 전부 2023년 한 해 가장 사랑받은 에세이 분야 top 20에 해당하는 도서들이다.   

2023년 종합 연간 베스트셀러 '에세이' 분야 (출처: 교보문고)

    

    자기계발서를 잘못 읽으면 근거 없는 자기애에 빠져 현실도피로 이어지기 쉽다. 그래서 필자는 이러한 ‘위험한 자기계발서’에 대척하는, 현실을 따끔하게 꼬집지만 현실의 고통으로부터 행복을 이야기하는 쇼펜하우어 철학의 붐이 반가웠다. 하지만 블로그 후기 분석에서 살펴봤듯이, 자세히 보니 쇼펜하우어 붐을 이끈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도 마찬가지로 잘못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쇼펜하우어가 말한 <의지>란 칸트의 물자체와 비슷한 형이상학적 세계자체를 말하는 것인데 이 책에서 저자는 마치 인간의 삶에 대한 의지인 것 처럼 이야기하고 있다”는 리뷰가 짚어준 것처럼 말이다.

    쇼펜하우어는 현실을 직시하게 하며, 인생을 고통이라고 말하고, ‘왜 인생이 고통스럽지 않아야 하는가?’라며 일침을 가한다. 쇼펜하우어를 읽고 현실 도피성 생각을 하게 된다니 아이러니하다.




"독서란 자기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대신 생각해 주는 것이다"


    쇼펜하우어는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렇다고 해서 다독만을 강조했다기보다 자신의 생각이 부족한 상태에서 남의 책을 읽으면 안 된다고 한다. 사유 없는 다독을 경계한 것이다.

    안타깝게도 자기계발서의 호황 속 그의 목소리는 그가 가장 우려한 방식으로 전달되고 있다. 쇼펜하우어 붐을 이끈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를 필두로, 이 추세에 힘입어 출판된 여러 아포리즘. 맥락도 모른 채 그저 쇼펜하우어 명언 덩어리로 양산되는 기이한 현상을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출처: Google Trends


    니체에 이은 쇼펜하우어 붐으로, 쇼펜하우어는 생전 그렇게 싫어했고 경쟁했던 헤겔에 2024년이 되어서야 승리했다. 그는 당시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로 인기를 얻지 못했고, 이를 풀어낸 <소품과 부록>을 출간하고 나서야 전성기를 맞게 된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이를 다시 한번 풀어낸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를 통해 주목받고 있다.

    자기계발서 그리고 다수의 에세이는 저자의 개인적인 경험을 가지고 보편 다수의 독자에게 해결책을 제시한다. 그리고 철학자 이름이 들어간 자기계발서는 언어의 번역을 넘어 ‘현대의 저자’라는 제2의 번역을 거치게 된다.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알고 나서 마음이 편안해졌어.’ 따위의 말을 하고 싶다면 최소한의 공정을 거친 그의 목소리를 들어봐야 하지 않을까?

    잘못된 자기계발서를 읽고 생긴 삐딱한 자아존중감은 쇼펜하우어가 강조한 독서와 거리가 멀다.




자기계발 불황의 시대


    ‘자기계발서’는 불황을 모른다. 그렇지만 ‘자기계발’은 불황일 수 있다. 자기계발서는 불티나게 팔리지만 실제로 자기계발이 되었는지는 모르는 일이다. 좋은 자기계발은, 그리고 이를 위한 알맞은 도서의 선택은 자신을 위해서도 타인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자신의 선택이 책의 판매 부수에 영향을 주고 결과적으로 타인의 선택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독자는 자신의 독서가 사색을 기반으로 했는지 끊임없이 확인할 의무를 진다.

    자기계발서는 상대적으로 진입 장벽이 낮은 도서 분야다. 그렇기에 우리는 더더욱, 저자가 하는 말에 귀를 쫑긋 기울이고 뭔가 잘못되진 않았는지 끊임없이 의심해야 한다. 사유하는 독서를 통해 나의 내면에 집중할 기회를 가지기 바란다.



연세대 언더우드학부 경제학과 염민주

minjooyoum@yonsei.ac.kr




참고 자료


장은수. (2024.02.23). [책과 미래] 쇼펜하우어 철학이 유행하는 이유. 매일경제.

임근호. (2022.07.08). [책마을] 쏟아지는 자기계발서…'유해한 동화' 될 수도. 한국경제.

예스24. (2023.12.04). 예스24 2023년 베스트셀러 트렌드 및 도서 판매 동향 - part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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