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경영혁신학회 26기 박지현
‘BC’가 더 이상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말이 아니게 되어버렸다. Before Corona, After Disease. 새롭게 정의된 AD 1년을 살아가는 우리는 많은 것이 변화한 세계를 살아가고 있다. 많은 기업들이 재택근무를 실시하고, 코로나라는 거대한 흐름에 맞추어 매분 매초 새로운 전략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방송계는 어떠한가. 사실상 ‘재택근무’라는 것이 불가능하다고도 볼 수 있는 방송국, 그중에서도 사람을 다루어야 하는 예능 프로그램들은 어떠한 전략을 취하고 있을까. 프로그램들의 특성을 바탕으로 분류해보았다.
1) 실외가 배경이던 예능의 경우
Ex. 끼리끼리, 맛남의 광장, 런닝맨
많은 프로그램들이 실내보다 야외에서 촬영을 진행해왔다. 이러한 경우는 초기의 컨셉을 포기해야 하는 경우가 많이 있지만, 그 변화는 생각보다 소극적이다. 대부분의 프로그램들은 실내 세트장을 (급하게) 마련해 촬영을 진행하거나, 제한된 공간에서 관리가 가능한 인원만으로 촬영을 진행한다. 휴게소의 음식을 판매하는 컨셉을 유지하던 맛남의 광장은 농어민들을 초청해 진행하는 특별 시식회로 촬영을 진행하는 식이다. 하지만 이러한 ‘스페셜’ 포맷이 과연 장기적으로 유효할지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이들이 초기에 보여주던 재미 요소가 장소나 인원이 바뀌며 퇴색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2) 해외의 장소나 출연자가 필요한 경우
Ex. 짠내투어, 배틀트립,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정글의 법칙, 비긴 어게인, 배달해서 먹힐까
몇 년 새 폭발적으로 늘었던 방송 형태의 하나이다. ‘여행’과 ‘외국인’이 재미 요소로서 기능하던 이 프로그램들은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배틀 트립과 짠내 투어는 결방을 반복적으로 선언하다가 종영했고, 많은 프로그램들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고 있다.
재미있는 점은 방송의 원 컨셉은 유지하되, 새로운 포맷으로 재미를 주고 있는 프로그램들이 생겨난다는 점이다.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는 외국인들이 한국을 관광하는 모습 대신, 한국에 사는 다양한 외국인들의 모습을 선보인다. 현지에서 먹힐까에서 파생된 스핀오프 프로그램 ‘배달해서 먹힐까’는 맛 하나로 진검 승부를 펼친다는 컨셉을 유지해 해외 푸드트럭 대신, 국내 배달 음식점을 시작했다. 단순히 장소나 인원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방송 포맷을 들고 왔다는 점이 핵심이다. 해당 사태가 장기적으로 진행될 경우 이들의 새로운 도전이 프로그램의 강점이 되어줄 것이다.
3) 일반인들의 존재가 방송 진행에 필수적인 경우
Ex. 전국 노래자랑, 도전 골든벨, 한 끼 줍쇼, 유 퀴즈 온 더 블록
이러한 프로그램들은 방송 촬영을 중지하고 스페셜 방송 등을 진행하거나, 포맷을 바꾸려는 노력을 보이고 있다. 전국 노래자랑이나 도전 골든벨과 같은 프로그램들은 그 역사가 굉장히 오래된 방송 중 하나이다. 이들은 뿌리 깊은 방송 컨셉을 유지해야 하기에, 유연한 대처가 거의 불가능하다. 이들은 그렇다면 이대로 코로나가 끝나기만을 기다려야 하는 걸까? ‘길거리에서의 우연한 만남’이란 콘셉트를 포기해야만 했던 유 퀴즈 온 더 블록은 실내에서 '영상 토크'를 진행하고, 음식점을 방문하는 대신 배달음식을 먹으며 대화를 나눈다. 비록 재미 요소는 줄어들었지만, 그 속에서 또 다른 웃음과 감동을 잡아내며 시청자들을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가 역사 깊은 프로그램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을까? 방송 특성과 시청자를 잘 고려한 변화가 필요할 것 같다.
4) 관객이나 방청객이 존재하던 경우
Ex. 뮤직뱅크, 유희열의 스케치북과 같은 음악 프로그램, 코미디 빅리그, 복면가왕, 슈가맨
다수의 관객이나 방청객이 필요한 프로그램들의 경우 대인원을 한 장소에 모이게 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는 점이 문제가 된다. 사실 대부분의 경우 방송 자체는 크게 변화하지 않고 있다. 그저 ‘봐줄 사람’이 없어지는 것뿐이니까. 방청객의 투표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복면가왕이나 슈가맨과 같은 경우, 연예인 판정단을 늘리거나 방청객에게 깔때기와 마이크 커버를 제공하여 기존 포맷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눈여겨볼 점이라면 방청객의 참여가 하나의 재미 요소로 화제가 되었던 코미디 빅리그가 코로나에 대처하는 방식이다. 이들은 방청객을 없애고, 방청객의 자리에 개그맨들을 앉혔다. 방청객처럼 능청스럽게 리액션과 애드립을 선보이는 이들은 프로그램의 새로운 웃음 포인트이다. 빈 객석을 채워야 한다는 궁여지책에서 출발했지만, 이제는 “코너 경쟁만큼이나 리액션 경쟁이 치열해졌다”라고 할 만큼 중요한 요소가 된 것이다.
코로나로 인해 방송의 분위기도 많이 달라지게 되었다. 말하자면 방송의 ‘명분’을 찾으려고 한다는 점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직격탄을 맞은 자영업자를 돕기 위해 ‘놀면 뭐하니’에서는 치킨을 판매하고, 판매처가 줄어 매출이 급감한 농가의 어려움을 덜기 위해 ‘끼리끼리’는 일손을 돕고 홈쇼핑에서 농산물을 판매한다. ‘맛남의 광장’에 출연하는 백종원은 인맥(?)을 활용하여 신세계 백화점에 고구마 450톤을 팔았다. 화훼 농가를 돕기 위해 ‘지구방위대’에서는 ‘플라워 버킷 챌린지’라는 캠페인도 벌이고 있다.
시청자들에게 착한 소비를 이끄는 이러한 방식 이외에도 의료진과의 영상 인터뷰를 통해 사태의 어려움을 알린 ‘유 퀴즈 온 더 블록’이나, 코로나19와 관련된 서적이나 역사 이야기를 다루며 화제와 공익성을 동시에 잡은 교양 프로그램들도 있다. 이 시국에 가장 영향을 받지 않을 것만 같은 ‘삼시세끼’도 사회적 거리두기로 침체된 현 상황에 시청자의 대리인이 되어 힐링을 제공하겠다는 메시지와 함께 방송을 시작했다.
극단적 재미를 추구하며 자극적으로 변모하던 예능계가 현 상황을 인지하며 저 뒤편으로 아득히 사라지고 있던 ‘휴머니즘'을 끌어오게 된 것이다. 이들의 가치가 사회적 거리두기와 불황 등에 지친 삶을 위로하고 공감과 재미를 선사한다. 막대한 영향력을 가진 미디어가 할 수 있는 일과 해야 하는 일이 오랜만에 일치했다. 이가 부디 앞으로도 긍정적인 시너지를 내기를 바란다.
사실, 이러나저러나 방송국의 예능 프로그램들은 예전부터 위기를 겪어 왔다. 거시적으로 바라본다면 시청률은 거의 0에 수렴하고 있다도 할 수 있을 정도로 하락했다. 많은 예능 프로그램들이 유튜브로, 다시 보기 서비스로 수익을 낸다고 농담을 주고받을 정도로 예능계는 이미 침체기를 겪는 중이다.
코로나로 인해 변화하고, 사라지고 있는 예능 프로그램들에게 코로나는 어쩌면 새로운 기회일지 모른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많은 프로그램들의 시청률은 상승했다. 그 폭은 다를지 몰라도, 사회적 거리두기를 진행하며 많은 사람들이 TV를 켜게 된 것이다. 방송계에 실속주의 분위기가 만연하다는 것도 잘 이용하면 기회로 이용 가능하다. 위에서 언급했듯, 줄어든 제작비와 여러 가지 상황에 맞춰 방송들은 변화하고 있다. 경쟁적으로 몸값이 높은 출연자를 선보이던 기존의 방식을 포기하고 새로운 시장 기회를 탐색한다. 앞서 이야기한 휴머니즘이 하나의 예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넷플릭스와 같은 OTT 서비스의 이용률이나 유튜브 시청 시간 등도 폭등했다는 점을 무시할 수는 없다. 현재 시청률 양상을 보면, 꽤나 양극화되어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는 선택의 폭이 넓어지면서 입소문을 타고 재미있다고 소문난 프로그램들에는 시청자가 몰리지만, 그렇지 않은 곳에는 관심조차 주지 않는 ‘옥석 고르기’가 심화된 탓이다. 말하자면 온라인 미디어와의 정면 경쟁이 시작된 것이다. 같은 조건에서, 오직 컨텐츠만으로 승부한다. 여기서 어떤 결과를 보여줄지는 앞으로의 변화에 달렸다.
성장해가는 온라인 미디어와 혼란스러운 시기에 일명 ‘명예로운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 아니면 지루한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아 과거의 명예를 회복할 것인가.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박지현
zxcvje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