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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정 Dec 21. 2018

첫째는 은밀하다.

변태입니다.

여기서 첫째는 맏이를 말한다. 모든 첫째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죄송합니다.) 첫째 딸인 나는 적어도 그랬다. 아니 그렇다. 

'혼자서도 잘하네' '언니가 있어서 든든하네' '야무진 큰 딸이 있어서 엄마가 걱정이 없겠어' 어릴 때부터 '애어른'이라는 요망한 휘장을 두른 덕에 나는 혼자서도 다 잘 해내는 어엿한 아이였다.

맞벌이하는 부모님 대신 할머니와 동생을 살뜰히 챙긴다는 역할이 오고 가는 칭찬 덕에 싫지 않았고, 그 칭찬은 자부심으로 자라나 그 자부심은 묘하게 핀트가 어긋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선택을 주체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일은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 터졌다. 지역에 따라 희망 중학교를 적어 내야 하는데 부모님과 얘기했던 희망 학교를 1지망에 넣었다. 문제는 2,3지망이었다. 그다음 학교들은 아직 상의를 하지 않은 것이다.

집에 가서 다시 물어보거나 엄마 직장에 전화를 해서 확인을 해봐도 됐을 부분인데 '혼자서도 잘 하는' 나는 2,3지망 학교를 내 마음대로 적어서 제출했다. 독단의 결과는? 추첨으로 1지망은 떨어지고 2지망 학교에 입학하게 됐다. 그것도 전교에서 나. 혼.자. (팩트입니다.)

12년간 살면서 내가 스스로 했던 선택 중 가장 충격적이고 절망스러운 결과였다. 친구가 세상에서 제일 중요하고 인생 그 자체이던 시절 그들과 다 헤어진다는 생각에  그 지랄맞다는 사춘기를 부여잡고 매일 밤 서럽게 울었다. (누굴 탓하랴. 나의 선택인데.)


아무튼 이런 나의 행보는 (충격을 먹고 바뀔 만도 하련만) 나이가 들어서도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머리 좀 더 컸다고 내 멋대로 선택하는 건 당연하거니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어 거짓말까지 하는 교활함도 장착했다.

졸업 후 두 번의 인턴을 거쳐 겨우겨우 회사 생활에 발을 들이고 (부모님의 숨통이 트일 만할 때)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직장을 그만뒀다. 그런데 그만둬놓고 그만둔 것을 차마 말할 수 없어 회사 다니는 척(?)을 3개월 동안 지속했다. (나는 왜 이럴까...)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욕망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 무턱대고 저가 태블릿을 사서 손에 익히는 연습을 시작했고 그 연습 시간을 번다는 생각으로 매일 새벽 6시에 일어나 7시 20분에 집을 나와 집 근처 카페로 몰래 출근했다.

명예퇴직을 숨기려고 아침마다 출근하는 척 나와 떠도는 아버지들의 기분이 이랬을까. 하필이면 겨울에 일을 그만둬서 따뜻한 이불 속을 뒤로하고 눈을 펑펑 맞으면서 덜덜 떨며 걸었던 새벽길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이 또한 누굴 탓하랴. 나의 선택인데.) 아침에 카페로 출근하고 오후에는 다른 카페 혹은 도서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자기합리화일 수 있지만 정말 그때만큼 착실하게 연습한 적이 없었다. (말은 바로 하자. 그럴 수밖에 없었던 거지.) 그렇게 그 해 겨울을 나고 스케줄 근무로 그림과 일을 병행할 수 있는 직장을 찾은 뒤에야 일을 바꾸겠다고(얼씨구) 집에 얘기했다. 지금까지도 부모님은 3개월간의 내 은밀한 행보를 모르신다.


이런 내가 또 일을 벌였다. 오롯이 그림으로만 먹고산 지 2년이 지난 지금 그놈의 워라밸에 처참히 실패하여 기로에 놓인 순간 태국에서 한 달간 살기로 '내 멋대로' 선택했다. 역시나(?) 가족들에게는 아직 얘기하지 않았다. 이미 날짜도 확정했는데 '한 달 살기를 숙소를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이 있어서 고민 중이야'라고 에둘러 운만 띄워 놓았다.

숙소를 지원해주는 프로그램? 그런 게 있겠는가. 그런 거 없다. 있다 해도 나 같은 조무래기에게 그런 지원은 올 리 만무하다. 다 내 (바닥에 나뒹구는)돈으로 스스로 벌인 일이다. 이조차 있는 그대로를 말하지 못해 '혼자서도 알아서 잘하는' 큰 딸내미는 오늘도 거짓말을 했다.


두 번은 실수겠거니 하겠지만 세 번까지 오면 패턴이다. 나는 이렇게 생겨 먹은 사람인 것이다. 항상 내 멋대로 결정해야 하고, 그에 대한 책임도 오롯이 내가 진다. 그래야 마음이 편하다. (아 고루한 인간이여)

일을 벌여서 나를 극으로 밀어 넣고 어쩔 수 없는 강박을 느껴서 행동하게 하는 변태(!)다. 이렇게까지 몰지 않으면 하지 않는 나이기에. 그래서 나는 '뭐든 알아서 잘 하는 것처럼 보여야 하는' 콤플렉스가 나에게 그렇게 악이 되는 것 같지는 않다. (여태 악임을 증명한 것 같은데)


사실 순간적인 잔소리를 듣기 싫어서, 회피하고 싶어서 거짓말을 한다는 것도 맞다. 어차피 그래도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게 뻔하기에 그 흐름을 막는 장애물은 최선을 다해서 피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간사하다. 어쩔 수 없다. 이미 이렇게 살아온 나로서는 이게 나름대로의 (어리석지만) 최선의 방법이라고 결정한 것이다. (부모 입장에서는 복장 터질만한 자식임은 확실하다. 노파심에 덧붙이지만 아무하고도 공유하지 않고 선택하는 건 아니다. 생각보다 간이 콩알만 해서 비슷한 직종의 지인들의 의견을 굉장히 많이 구하는 편... 그냥 그렇다고요...)


그리고 그게 온전한 거짓말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 조금이라도 내 멋대로 또다시 노력을 하는 중이다. (뭔가 잘못된 것 같지만 이쯤 되면 작가 성격 가늠하셨으리라.) 프리랜서로의 마지막 발버둥인 만큼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보자는 심산과 의지가 가득한 상태다. 그래도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할 줄 아는 게 그림 그리는 것이라 태국에서의 생활도 그것으로 먹고살기 위한 방법으로 생각 중이다. (다음 편에는 그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써볼 참이다.) 한 달도 남지 않았다. 또다시 발등에는 불씨가 피어나는 중이다. 코너에 몰리는 그 쪼는 맛이 느껴진다. (변...ㅌ....)


이게 30년이 넘으면서 살아온 내 패턴에 대한 사례 보고이자 연구 결과다. 내가 나를 잘 알아야 내 삶이 온전히 내 것이라는 생각에 고찰해봤지만 결과는 콤플렉스 덩어리로 살아온 사람의 무식한 행보다. (실패로그로서의 한몫은 하는구나)

참 발전 없고 한결같은 통계이지만 어쩌겠는가. 내가 책임지고 보듬어야 할 나인 것을. 다음에는 또 어떤 선택을 할지 두렵지만 나조차 예상할 수 없는 미래에 가슴이 살짝 더 빠르게 뛴다면 역시 변태가 맞는 걸까.


그 전에 이번 코너링부터 무사히 넘기자.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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