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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기군 Mar 22. 2021

군고구마 앞에서

시작은 불순했다. 군 휴학을 끝내고 복학하니 스물넷. 취업을 위한 스펙이 변변치 않아서 나중에 이력서에 봉사활동이라도 한 줄 쓰자는 생각으로 학교 봉사동아리에 가입했다. 인근 지역아동센터에서 교육봉사를 하는 곳이었는데 모임에 몇 번 참여해보니 나를 제외한 대부분의 멤버들은 참여 동기가 순수해 보였다. 나는 괜히 부끄러워졌다.   

   

동아리 활동은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과외로 다져진 1:1 교육 스킬은 교육봉사에서 나름 쓸모가 있었고, 동아리 멤버들과 예비군 훈련도 함께 가며 제법 어울리게 됐다. 날이 쌀쌀해진 가을의 끝 무렵. 동아리 형 한 명이 급하게 사람을 모집했다. 홍대 놀이터에서 ‘홍대 3대 여신*’ 으로 불리는 가수 타루가 군고구마를 파는 이벤트를 하는데 손이 필요하다고 했다. 타루라는 가수와 선배가 친한 모양이었다. 군고구마를 팔아서 생긴 수익금도 (잘 기억나지 않지만) 좋은 일에 쓰는 이벤트라고 했다. 나는 집이 근처라는 이유로 차출됐다. 사실 그보다는 나 같은 촌놈이 서울에 와서 (비록 인디씬에서 유명한 가수지만) 연예인을 언제 가까이서 보겠냐는 호기심과 기대감으로 손을 들었다.      

* 2000년대 후반, 홍대 인디씬에서 타루, 요조, 한희정이 ‘홍대 3대 여신’으로 불렸음       


날이 어둑해진 그날 저녁, 홍대 놀이터로 서너 명이 슬금슬금 모였다. 선배와 타루 가수님(지금 찾아보니 나보다 세 살 많다)은 미리 자리를 잡고 고구마, 군고구마통, 장작, 봉투 등 이벤트에 필요한 물품을 알차게 세팅해 놓고 있었다. 우리는 사람들이 적당히 싸다고 느낄 정도로 가격을 정하고 고구마를 굽기 시작했다. 초반에는 구워 놓은 고구마도 없고 손님도 없으니 군고구마통 주변에 모인 다섯 명이 특별히 할 일이 없었다. 선배가 열심히 불을 지폈다. 그런데 웬걸. 하얗고 매운 연기만 뻑뻑 날 뿐 장작은 시원하기 타지 못했다. 선배, 타루 가수님, 다른 멤버 모두 당황한 모습으로 홍대 놀이터 위로 피어오르는 하얀 연기만 쳐다보고 있었다.  

   

결국 소싯적 아궁이에 알밤을 집어던지며 놀던 내가 집게를 들었다. 군고구마 통 안쪽을 살펴보니 통은 좁은데 굵은 장작을 빽빽이 놓고 바람구멍 덮개도 제대로 열어놓지 않았다. 당연히 불이 제대로 붙을 리 없었다. 장작을 몇 개 빼고 남긴 장작도 서로 엇갈려 쌓고 바람구멍을 열었다. 곧 매운 연기는 사라지고 활활 불이 올라 고구마가 익기 시작했다. 곧 나는 불 담당이 됐다. 불도 관리가 되고 이윽고 군고구마 상품이 출하되기 시작하자 타루 가수님은 기타를 들고 노래를 시작했다. 오고 가는 젊은이들이 하나둘 관심을 보였고 판매도 조금씩 생겼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생산량만큼 고구마가 팔리지 않아 재고가 쌓이기 시작했다. 나는 화력을 줄였다.     


그때 두 번째 연예인이 나타났다. 개그콘서트에서 보던 사람이었다. 신인이었지만 이내 주요 코너에서 자리를 잡아 캐릭터를 만든 분이었다. 타루님과 친분이 있었는지 도와달라는 연락을 받고 왔다고 했다. 군고구마통 주위에 모여 있던 우리는 갑작스러운 연예인의 등장에 놀랐다. 나도 너무 신기했다. 티비에서 보던 사람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게 되다니. 개그맨 박지선을.     


타루님의 노래를 배경으로 박지선 님(나보다 한 살 많다)이 호객을 시작했다. 인기 연예인의 지명도, 개그맨의 재능과 친화력은 대단했다. 쌓여 있던 군고구마는 금방 팔렸고 수요가 공급을 넘어서기 시작했다. 나는 장작을 추가하고 화력을 올렸지만 늘어난 손님을 따라갈 수 없었다. 심지어 군고구마를 기다리는 사람도 생겼고 연예인 박지선과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도 생겼다. 박지선 님은 화면에서 보던 모습 그대로였다. 꾸밈도 없고 군고구마 주위를 지나는 모든 사람과 밝은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박지선 님의 서포트 이후, 지지부진했던 군고구마 장사는 날개를 달았고 준비한 고구마는 금세 동이 났다. 애초에 많이 준비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현장에 모인 모두가 뿌듯해진 순간이었다.      


두 번째 연예인은 자리에 있던 동아리 멤버들을 한 명씩 짧게 안아주는 것으로 작별 인사를 했다. 여느 연예인에게서 기대하기 힘든 모습이었다. 예의가 있고 배려가 있고 다정했다. 나도 잔불을 정리하다 어정쩡한 자세로 연예인과 포옹을 했다. 내게 고구마 굽느라 고생했다는 인사도 잊지 않았다. 두 시간 넘게 불 앞에 앉아 있었던 탓인지 아니면 처음으로 연예인과 포옹을 한 쑥스러움 때문인지 광대가 발개졌다.      


오늘 체육관 옆자리에서 운동을 하던 어떤 분이 아버지의 전화를 받고 급하게 체육관을 뛰쳐나갔다. ‘아빠, 어쩐 일이세요?’로 시작한 통화는 놀람, 당황, 비명으로 이어졌고 이내 황망한 표정으로 가방을 들쳐 매고 체육관을 뛰어나갔다. 뒤따라간 트레이너는 그분이 운전을 하지 못하게 막고 택시를 태워 보냈고, 나는 트레이너의 요청으로 체육관 옆 손세차장에 있던 그분의 차를 체육관 건물 주차장으로 옮겼다.     

 

묻지 않았지만 가족 중 누군가에게 슬픈 일이 생겼으리라. 그분이 통화 중에 처음 비명을 지를 때 나는 가만히 체육관을 뛰어다니던 둘째 아이를 멈추고 품에 안았다. 나도 언젠가 겪어야 할 장면, 내 아이도 언젠가는 맞닥뜨릴 순간을 그분은 방금 마주했을 것이다.        


가족은 아니지만 몇 달 전 슬픈 소식을 인터넷 속보 기사로 접했다. 군고구마를 함께 팔았던 그 날의 두 번째 연예인의 소식이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뉴스였고, 아무도 그녀의 고통을 짐작하지 못했다. 많은 이들의 추모가 이어졌고 그녀가 등장했던 많은 프로그램은 그녀를 추억하는 자료화면과 애도의 인사를, 연말 시상식 무대에 오른 그녀의 동료들은 수상의 감사함 대신 그녀에 대한 마음을 전했다. 그녀의 따뜻한 마음과 웃음을 추억했다.      


그날 저녁, 군고구마를 사 가던 사람들은 그녀와 사진도 함께 찍었지만 장작불을 만지느라 바빴던 나는 정작 연예인과의 사진 한 장 남기지 못했다. 봉사동아리 멤버들과 교류도 끊어져 함께 추억할 사람도 없다. 그 일을 추억할 수 있는 자료는 순전히 내 기억뿐이다. 故 박지선 님의 생전에 그녀가 웃는 모습 뒤로 어떤 아픔이 있었는지 나는 헤아릴 재간이 없다. 다만 잠시 만났던 팬 중 한 명으로서 고인의 명복을 빈다.     


가족과 친지와 친구와 동료들과 팬들의 수없이 깊고 넓은 추모 속에, 하찮은 기억 조각이지만 이렇게 글로 내 기억과 애도의 마음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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