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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몰라 Dec 15. 2023

그래서 좋았다

하고 싶었는데 하지 못한 말 

 “레디.”

 “삐.” 

 출발 신호가 울렸다. 출발 손잡이에서 손을 떼고 두 발로 벽을 힘껏 밀었다. 입 안에 공기를 머금고 물속으로 들어가 두 손은 머리 위로 쭉 뻗었고, 두 발을 모아 위아래로 흔들며 출발선에서 최대한 멀리 벗어났다. “파~.” 숨을 내뱉으며 물 밖으로 나왔다. 두 팔을 번갈아 저으면서 그 박자에 맞춰 쉬지 않고 발차기했다. 나와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도착점을 향해 물살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초등학교 시절, 엄마의 권유로 수영을 배우기 시작했고 수업 시간이 끝나면 수영장으로 달려갔다. 옷을 갈아입고 준비운동을 한 뒤, 물속으로 풍덩 들어가서는 깔깔대며 웃었다. 코치님이 정해준 자리에 일렬로 길게 늘어서서 물 안으로 깊이 들어갔다가 물 밖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음~~ 파~~ 음~~ 파~~.”

 쉽지만은 않았다. 콧속으로 물이 들어와 눈물이 핑 돌기도 했고, 입 안으로 물이 한가득 들어와 락스 냄새가 내 몸 안을 채우기도 했다. 그래도 좋았다.

 재미로 시작했는데 어느 날 수영선수라는 타이틀이 내 이름 뒤에 붙었다. 매일매일 고되고 힘들었다. 영법이 흐트러질 때면 물 밖으로 나와 벽에 몸을 기대고 서서 자세를 고치는 일이 반복되었고, 최선을 다해 팔과 다리를 힘차게 움직였는데 생각만큼 앞으로 쭉쭉 나가지 않는 날도 있었다. 나의 평균 기록에서 한참 뒤처지는 날에는 코치님이 물속에 있는 나의 팔을 잡아 끌어올려 오리발로 등짝을 내리쳤다. 물과의 마찰로 느껴지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물안경에 가려 보이지는 않지만 나는 안다. 눈물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전국체전을 앞두고 강도 높은 훈련이 시작되었다. 앞사람은 뒷사람에게 잡히면 안 되고, 뒷사람은 앞서가는 사람을 잡아야 했다. 처음과 같은 속도로는 끝낼 수 없었다. 따라잡히든 따라잡든 해야 마무리하고 쉴 수 있다. 난 먼저 출발한 친구를 잡기 위해 있는 힘껏 팔과 다리를 움직였다. 따라잡아야 했다. 50M 레인을 몇 바퀴나 돌았는지 모르겠다. 어느 순간 내 손끝에 무언가 스쳐 지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앞 사람의 발끝이다. 다 왔다. 더 힘을 내야만 했다. 드디어 앞섰다. 친구에게는 미안했지만 짜릿했다. 코치님의 수고했다는 말을 듣고 옆 레인으로 넘어가 물 위에 누워 천천히 숨을 가다듬었다.

 집에서 혼자 뒹굴뒹굴하던 주말 오후, 전화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나야. 미주.”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미주의 목소리는 반가웠다. 주말이라 같이 놀자고 전화한 것 같았다. 무슨 일로 전화했냐고 물었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기다렸다. 

 “있잖아…. 우리 훈련받을 때 나 따라잡지 않으면 안 돼?” 

 “…….”

침묵을 깨는 한마디를 듣자 더 이상 입이 벌어지지 않았다.

 미주는 수영부 친구다. 앞사람 따라잡기 훈련받을 때 항상 미주가 내 앞자리였다. 그 훈련이 시작될 때면 승부 근성이 올라왔다. 늘 미주를 따라잡기 위해 애썼다. 미주는 따라잡혔고, 나는 따라잡았다. 그 덕에 나는 쉴 수 있었다. 따라잡힌 그녀는 계속 돌아야만 했다. 얼마나 힘든지 알고 있다. 그래도 싫었다. 미주의 제안을 받아들이면 내가 끊임없는 훈련을 받아야 했다.

 “생각해볼게.”

 수락도 거절도 아닌 모호한 말을 남기고 우리의 통화는 끝났다. 

 이날 이후 울먹이는 미주의 모습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신경 쓰이고 마음이 불편했다. 어떤 선택을 해야 우리 둘에게 좋을지에 대해 생각했다. 모르겠다. 잘해서 칭찬받고 싶은 마음과 친구하고 잘 지내고 싶은 마음이 계속 싸웠다. 정확히 어떠한 답변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미주가 여러 번 나에게 요구했던 기억이 있는 것으로 보아 나는 늘 그랬듯 애매한 답변으로 속에 있는 말을 정확히 표현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그동안 갈고닦은 실력을 테스트하는 날이 왔다. 체육관 가장자리에 자리를 잡고 돗자리를 펼쳤다. 이렇게 많은 선수가 모인 경기는 처음이었다. 코치님은 일정 확인 후 훈련 때와는 다르게 차근차근 설명해주셨다. 서로를 견제하며 묘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나는 배영 종목으로 출전했고, 우리 팀에서 나 혼자 결승전에 진출하게 되었다. ‘내가? 내가 결승 진출?’ 어안이 벙벙했다. 단지 물이 좋아 시작했고 멈추고 싶지 않아 계속했을 뿐인데…. 

 함께 훈련받던 선수들의 응원을 받으며 3위를 목표로 결승선에 섰다. 물속에 들어가 준비 신호를 기다렸다. 수영장에 울려 퍼지는 함성보다 내 심장 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듯했다.

 “삐.”

 경기가 시작되었다. 앞사람 따라잡기 훈련을 떠올리며 물살을 갈랐다. 마지막 터치를 하고 전광판을 바라봤다. 내 이름 옆에는 숫자 ‘4’가 적혀있었다. 4등. 아쉽지만 괜찮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기에 후회는 없었다. 

 결승전을 마치고 대기석으로 돌아온 나를 코치님이 안아주었다. 동료들은 수고했다며 격려해 줬다. 그들에게 감사했다. 특히 해맑게 웃으며 나에게 다가온 미주에 대한 나의 마음은 달랐다. 나라면 못했을 그 부탁을 미주는 했다. 많은 고민 끝에 용기 내어 했을 그 부탁에 흔쾌히 답하지 못한 나에게 먼저 다가와 줬다. 나를 미워할 거로 생각했다. 미안하고 고마웠다.

 부모님은 말했다. 건강하고 체력이 받쳐줘야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그래서 너희들에게 운동시켰던 거라고. 맞다. 그 어릴 때 수영선수로 살면서 큰 키와 지치지 않는 강철 체력을 얻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했던 것은 어쩌면 경쟁자이자 친구였던 그들과 함께 헤쳐나가는 힘 아니었을까. 지독한 비염과 전학으로 인해 나는 수영선수 생활을 끝내야 했고, 그때 함께 했던 나의 선의의 경쟁자들과는 연락이 끊겼다. 하지만 그들의 이름은 여전히 내 마음에 또렷하게 남아있다. 

 미주에게 이제야 나의 마음을 전한다.

 “그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던 내 마음을 이해해 줘서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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