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이 필요한 시점이 왔다.
"공부 좀 해라!"
엄마의 잔소리가 시작되었다. TV를 보고 있던 나는 있는 힘껏 나의 두 발로 마룻바닥을 내리치면서 방으로 들어간다. 문을 걸어 잠그고 침대에 엎드려 책을 펼친다. 잠이 온다. 눈이 스르륵 감긴다. 기분 좋은 잠을 깨우는 소리가 들린다. 방문 손잡이가 덜커덩덜커덩. 요란스럽다.
"이놈의 기지배! 문 안 열어?"
책을 책상 위로 옮기고 거울로 나의 모습을 살핀다. 얼굴에 이불 자국이 선명하다. 긴 머리로 최대한 가리고 문을 연다.
"문 잠그고 뭐 했어? 또 잤지? 학교 다녀와서 TV 보고 잠자고 도대체 공부는 언제 할 거야? 커서 뭐가 되려고 그러니?"
귀가 아프다. 듣기 싫다. 입을 다물고 먼 산을 바라보게 만들어 버리는 엄마의 잔소리는 끝이 없다. 공부를 하라는 엄마와 싫다는 나의 끝없는 전쟁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끝이 났다.
그랬던 내가 지금 두 번째 대학생활을 하고 있다. 공부를 안 하던 내가 다시 대학생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다른 꿈이 생겼기 때문이다. 아이를 낳고 복직을 했는데 워킹맘으로 살아가는 게 너무 힘들었다. 일어나서 출근 준비를 하고 퇴근하고 아이를 돌보고 밀린 집안일을 하고 잠들고 반복되는 일상도 힘들었지만 더 힘들었던 것은 아이를 믿고 맡길 곳이 없다는 것이었다. 아이가 아프기라도 하면 할머니, 고모, 이모 온 가족이 돌아가며 아이를 돌봐줘야만 나와 남편이 출근을 할 수 있다. 그래서 택했다. 방송통신대학교 유아교육과. 워킹맘을 전적으로 지지하고 도와주고 싶었다. 졸업을 해서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목표도 없이 말이다. 일과 육아도 병행하기 힘들어하면서 공부까지. 무모한 선택이었다. 그렇게 2년을 다니다가 2년을 휴학했고 휴직을 하면서 다시 복학을 했다.
방송통신대학교는 온라인 수업으로 진행되지만 학기 중 1주는 오프라인 출석수업을 들어야 하는 과목이 있다. 출석수업은 이론 수업을 듣고 조별 과제 즉, 모의 수업 진행을 준비하고 실행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5~6명이 한 조가 되어 주제를 설정하고 목표를 잡고 유아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것이 가에 대한 계획안을 짜고 각자 교사와 유아가 되어 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늘 해왔던 것처럼 주제를 설정하고 각자 역할을 배분하여 계획안을 작성하고 취합해서 연습을 한다. 일을 하면서 공부를 하고 있는 학생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과제물의 완성도가 높기는 힘들다. 그냥 최선을 다할 뿐이다.
지난 학기까지만 해도 '수업 진행이 얼마나 유아 주도적으로 이루어졌는가'에 대한 평가가 주가 되었다. 유아가 무엇에 관심을 갖고 있는지 유심히 관찰하고 그 관심과 호기심을 해결해 주기 위해 교사는 어떤 지원을 해줄 것인가에 집중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 학기는 '이 수업의 목표는 무엇이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유아와 어떤 활동을 했는가'에 대해 집중적으로 보신 것 같다. 대부분의 조가 목표 따로 활동 따로였다. 목표를 정했으면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활동이 이루어져야 함은 분명했는데 놓쳤다.
대학교? 남들이 가니까 갔고, 대학 졸업 후 취업? 해야 한다니 했다. 대학교 학부 선택도 아이를 좋아하니까 아동학과에 가볼까 하고 생활과학부에 지원했다. 도면 통을 들고 다니는 선배들과 드라마 주인공이 그리는 설계도가 멋져 보여서 소비자주거학 학위를 따게 되었지만 말이다. 졸업을 앞두고 취업을 하게 된 것도 운전면허 시험 보러 가는 길 걸려온 친구의 전화 한 통으로 포트폴리오를 제출했고 덜컥 합격하여 일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첫 직장에서는 그래도 열정으로 시작했다. 그 열정이 금방 식어버리고 단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 되어버리게 되었지만...
학창 시절에도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뚜렷한 목표가 없었다. 목표 없이 남들을 따라 살다 보니 내 삶에 내가 없었다. 그래 놓고서 주변 친구들만 마냥 부러워하고 있다. 내 주변 모든 사람들이 나 빼고 성장하는 것이 보인다. 목표가 있고 왜 그 목표가 생겼는지 그리고 그 목표를 향해 해야 할 일과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실행하고 있다. 단지 '해보고 싶으니까 해볼까'라고 시작했던 나와는 출발점이 달랐던 것이다.
지난달 보물지도를 만들었다. 그 보물지도에는 바디 프로필을 찍어보고 싶은 마음과 내 집 마련에 대한 간절함, 그리고 가족과의 유럽여행에 대한 로망이 담겨있다. 이유 없이 만들었다. '그냥. 해보고 싶으니까. 집의 안정감을 느끼고 싶으니까. 여행? 가보고 싶으니까.'
독서지도사 강의도 신청하고 글쓰기 강의도 신청했다. 왜? 책 읽기가 중요한 것 같은데 그래서 아이에게 알려주고 싶은데 방법을 몰라서. 브런치 작가가 되었는데 어쩌면 나도 출간 작가가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무슨 글을 쓰고 싶은지도 모르면서 말이다.
이제야 생각한다. 뚜렷한 목표와 목적도 없이 활동만 이렇게 하겠다고 제출한 나의 인생 계획안 수정이 필요하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