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 천사가 되어볼게.

by 김몰라

나의 눈앞은 초록색으로 가득 찼다. 물소리가 들리고 새소리가 들린다. "오늘 너의 마음을 달래줄게"라고 말하는 듯하다.


친구들과 아이들을 데리고 자연 휴양림 '산림치유'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우리를 지도해 주실 선생님께서 신발과 양말을 벗으라고 하신다. 내 옆에 있는 딸은 왜 양말까지 벗어야 하냐며 투덜거린다. 발끝으로 자연을 느껴보라며 달래 보지만 딸이 이해하기엔 아직 어려운가 보다. 힐링을 하러 온 건지 아이의 투정을 받아주러 온 건지 모르겠다. 그래도 두 손을 꼭 부여잡고 잣나무 사이로 만들어진 데크를 맨발로 걷는다.


해가 뜨거워 바닥이 뜨거우면 어쩌나 했는데 키 큰 잣나무의 희생으로 바닥이 시원하다. 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이 송골송골 맺힌 땀을 식혀주고 운동화 속에서 힘들어하던 나의 발은 이제야 숨을 쉰다. 맨발 걷기를 마친 후, 따뜻한 물에 발을 담그고 눈을 감고 호흡을 하며 물속에 퍼진 라벤더 향을 느낀다. 등줄기를 따라 흐르는 땀과 함께 무거운 생각들을 버려 버린다.


"엄마! 물은 뜨거운데 발은 시원해."

"그렇지? 시원하지? 그래서 엄마가 반신욕을 좋아해."


이제 8살밖에 안된 딸도 자연 속에서 땀을 흘리니 시원한가 보다. 물기를 닦고 다시 신발을 신는다. 발의 부기가 빠졌는지 발걸음이 가볍다. 20여 분간 숲길을 걸으며 어린잎도 맛보고 다람쥐가 갉아먹은 잣나무의 열매도 구경해 본다. 역시 자연이 주는 이 편안함은 침대 위에서의 휴식보다 좋다.


산림치유 프로그램이 마무리가 되어가는 때, 정상이라 부르기에는 민망한 낮은 언덕 위에 올라 새총 쏘기를 했다. 아이들 먼저 다람쥐에게 먹이를 날려주고 아이들의 새총을 이어받아 어른들도 새총 쏘기를 해본다.


"아이들이 다람쥐에게 먹이를 충분히 줬으니까 어른들은 이 작은 잣 알에 버리고 싶은 마음을 담아 날리세요. 무엇을 버리고 싶으세요?"

내 어깨를 툭툭 치며 묻는다.


"저요? 음.... 무엇을 버리면 좋을까요?"


내 뒤에 서있던 딸이 나에게 말한다.

"엄마! 엄마는 꿀꿀이한테 화내는 것을 버려!"

"응? 엄마가 얼마나 화를 냈다고......"


새총을 하늘로 향해 겨누고 외치면서 당겼다.

"화~~~~~~~~~~ 저리 가버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아니 아이와 함께 살아가다 보면 이유 없이 웃는 날도 있지만 이유 없이 언성이 높아지는 날도 있다. 꼭 후회를 하면서도...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계속 반복된다. 남의 아이가 울 때는 안쓰러운데 나의 아이가 울 때는 "지금 왜 우는 거야? 그만 울어"라고 말하게 된다. 남의 아이가 말을 안 들을 때는 애니까 말을 안 듣지 하면서도 나의 아이가 말을 안 들을 때는 "엄마 말 좀 들어!"라고 외치게 된다. 아이의 마음을 알아주고 평소 쓰는 말투에 단호함만 얹으면 된다는데 그게 참 어렵다.




2학기 시작과 동시에 이전 담임선생님의 개인적인 사정으로 꿀꿀이의 담임선생님이 바뀌었다. 이전에는 학교생활에 대해 좀처럼 말이 없던 아이가 개학 이후 담임선생님에 대해 종종 이야기를 한다.


"엄마, 우리 담임선생님도 우리가 잘못하면 화를 내. 근데 화를 내지 않을 때도 화를 낼 때도 목소리는 똑같아. 근데 엄마는 무섭게 화를 내. 마녀 같아."


내가 그렇게 무섭게 화를 내나? 그럴 수도 있겠다. 표정에서부터 나의 감정이 드러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표정이 바뀌고 한숨이 나오고 말투가 바뀐다. 아이가 눈치를 보다가 눈물을 흘릴 때도 있다. 그런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픈데 아무도 모르게 나의 화를 꺼내어 버리기가 어렵다. 너 때문에 화가 났다고 격하게 알려주고 오늘도 화를 내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는 방법으로 끝맺음을 맺고 나서야 이 사건이 종결되고 만다. 부끄럽고 어리석은 방법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왜 이 방법을 택하게 되는 것일까?


아이에게 늘 평정심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실천하기가 어렵다. 알지만 실천하지 않는 것은 모르는 것과 같다고 하던데... 평상시와 같은 모습으로 화내는 방법? 마녀가 되지 않기 위한 방법? 자세한 방법은 모른다. 다만 아이가 오늘 숲길에서 느꼈던 편안함과 시원함을 나와 함께 나누는 시간에는 늘 느끼길 바라며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노력을 할 뿐이다.


"속상했구나. 그럴 수 있어."

"울고 싶구나. 울고 싶을 때 마음껏 울어도 돼."

"화가 나는구나. 무엇이 너를 화나게 했는지 알려줄 수 있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서둘러 줄 수 있겠니?"

"엄마 지금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 기다려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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