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 몸에 머무는
수돗가 마당 한켠에는 깊은 고무대야가 늘 자리했다. 그 안에 담긴 물에서는 햇볕에 데워진 고무 냄새에 우물 냄새가 겹쳐 올라왔다. 그 냄새를 오래 맡고 있으면 잠이 쏟아졌다.
정전이 되면 지하수를 퍼 올리던 전기 펌프도 함께 멈췄다. 그럴 때마다 그 물로 채소를 씻고 남은 설거지를 했다. 다행히 전기는 하루를 넘기지 않고 다시 들어오곤 했다.
수도를 오래 틀면 차가운 지하수가 나왔다. 우리는 그 물을 스테인리스 컵에 받아 마셨다. 입술에 닿자마자 목으로 흘러 내려가는 물에는 아무 냄새도 없었다.
한동안 고무대야의 물을 쓰지 않으면 버리고 새로 받아 두었다. 수돗가 지붕 아래 그 물은 늘 조용히 고여 있었다.
처음에는 두 손을 담가서 동생과 함께 손장난을 쳤다. 그러다 어느 날은 작은 장난감을 띄워 놓고 해적선 놀이를 했다. 낮에는 구름이 비치고 밤에는 달이 떠올랐다. 물이 흔들릴 때마다 다른 이야기가 따라왔다.
물이 지저분해진다며 혼을 내던 어른들도 한여름이 되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고무덮개를 활짝 열어젖히고 통 안을 들락날락했다. 샌들을 한켠에 벗어두고 맨발로 수돗가를 뛰어다녔다. 시멘트 바닥과 흙바닥 사이의 경계를 넘나들다 그대로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물방울이 튀어 오르고 몸은 금세 젖었다.
물놀이가 시들해지면 우리는 샌들을 신고 마당으로 뛰어나갔다. 햇볕 아래에서 옷은 저절로 말랐다. 그을린 피부 아래 주름지게 마른 옷에서는 진한 햇살 냄새가 남았다.
고무대야에는 다시 물이 담겼다. 여름이 다 지날 때까지 그 물은 자주 채워지고 또 금세 비워졌다. 마른 줄 알았던 몸에서는 물 냄새가 오래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