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라는 말
1시간 뒤 나가려던 참이었다.
머리에 샴푸를 비비며 거품을 충분히 내고 있던 와중에 휴대전화가 울렸다.
처음 보는 집 전화번호였다.
1시간 뒤 나가려던 참이었다. 머리에 샴푸를 비비며 거품을 충분히 내고 있던 와중에 휴대전화가 울렸다. 손가락 끝에 거품이 잔뜩 묻어 있었고, 눈가로 거품이 흘러내려 따가웠다. 처음 보는 집 전화번호였다. 요즘 같은 세상에 집 전화로 오는 연락은 대개 스팸이어서, 받을까 말까 세어보듯 잠깐 망설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정말 이상하게도 받아야 할 것만 같았다. 그 예감은 늘 그렇듯 틀리지 않았다.
“여보세요?”
“네, 안녕하세요. 성민이 어머님이시죠?”
그 순간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눈이 따가운 것도 잊은 채,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이 시간에 학교에서 전화가 올 이유가 없었다. 아이가 아프거나, 무슨 일이 생겼거나. 머릿속에서 최악의 장면들이 빠르게 스쳐 갔다.
“저는 학교 보건교사인데요. 성민이가 지금 이마를 많이 다쳤어요. 꿰매야 할 것 같아서요. 바로 오실 수 있으실까요?”
“네? 안녕하세요 선생님. 네, 선생님. 바로 갈게요.”
학교가 집 바로 앞이라는 사실, 왜 바로 조퇴를 시키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잠깐 고개를 들었지만, 그건 정말 사소한 일이었다. 중요한 건 아이였고, 아이가 지금 아프다는 사실 하나였다. 머리를 감는 둥 마는 둥 헹궈내고, 무슨 정신으로 머리를 말렸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다. 괜찮겠지, 별일 아니겠지, 중얼거리면서도 발걸음은 자꾸 빨라졌다. 삼 남매를 키우면서 학교에서 전화를 받을 일은 거의 없었다. 늘 듣던 말은 아이들이 순하고, 말썽 없이 자기 몫을 해내는 아이들이라는 이야기였다. 막내 성민이는 사내아이라 걱정이 많았지만, 누나들 틈에서 자라서인지 집에서는 유난히 까불어도 밖에서는 조용하고 예의 바른 아이였다. 그래서 더 마음이 내려앉았다. 남자아이는 학교에서 이런저런 사고가 난다더니, 다섯 해를 잘 버텼다고 생각한 그때, 결국 전화가 왔구나 싶었다. 보건실 앞에서 담임선생님을 만났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어머님, 수업 중 조별 활동을 하다가요. 뒷자리에 있던 친구가 스테인리스 물병을 갑자기 휘두르는 바람에 성민이 이마에 맞았어요. 피가 많이 나서 성민이가 많이 놀랐을 것 같아요.”
보건실 문을 여는 순간, 저 멀리 의자에 앉아 있는 아이가 보였다. 이마에는 하얀 반창고가 크게 붙어 있었고, 엄마를 보자마자 아이의 눈에 금세 눈물이 고였다. 잘 울지 않는 아이였다. 아파도 참고, 놀라도 참는 아이였다. 그래서 그 눈물이 더 마음을 찔렀다.
“성민아”
이름을 부르자, 아이는 그동안 붙들고 있던 것을 놓듯 눈물만 뚝뚝 떨어뜨렸다. 나는 아이 앞으로 다가가 손을 잡았다. 괜찮아, 괜찮아,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손에 들어간 힘이 나 스스로도 느껴졌다. 보건선생님은 상처가 깊어 보인다며 미리 연락해 둔 외과로 바로 가라고 했다. 성민이 손을 꼭 잡고 보건실을 나서며 인사를 했다. 감사하다는 말이 자꾸만 목에 걸렸다. 차 안에서 아이의 얼굴은 잔뜩 겁에 질려 있었다. 세 살 때 뒤로 넘어져 뒤통수를 꿰맨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커서 겪는 사고는 처음이었다.
“성민아, 많이 놀랐지? 괜찮을 거야. 의사 선생님이 엄마가 부탁해서 예쁘게 꿰매 주실 거야.”
“..... 네.”
“어떻게 다친 거야?”
“잘 기억이 안 나요. 그냥 갑자기 물병이 날아왔어요. 피가 너무 많이 나서... 손으로 막아도 계속 흘러서... 피가 복도 바닥에 떨어지면서 보건실로 갔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 가만히 앉아 있던 아이에게 왜 물병을 던졌을까. 고의였을까, 실수였을까. 그 차이는 내 마음에서 아주 큰 경계선이었다. 아이 셋을 키우며, 내 아이도 실수로 누군가를 다치게 할 수 있다는 걸 알기에 웬만하면 너그러워지고 싶었다. 하지만 고의라면, 그건 다른 이야기였다. 어린 시절 ‘장난’이라는 말로 포장된 괴롭힘을 겪었던 기억이 나를 더 예민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병원에서 반창고를 떼자 상처는 생각보다 깊었다. 의사는 이마라서 미세봉합을 권했다. 비용이 더 들 수 있다는 설명을 들었지만, 망설일 이유는 없었다. 또 나중에 흉터가 생길 수 있다고. 그때는 레이저 치료를 해야 된다고.
“네, 선생님 미세봉합으로 해주세요.”
수술대 위에 아이가 누웠다. 얼굴 위로 초록색 천이 덮이고, 나는 아이의 작은 손과 다리를 잡았다. 마취 순간 아이는 발가락에 힘을 주며 몸을 움츠렸지만, 울거나 소리를 내지 않았다. 그 모습이 대견하면서도 마음이 아팠다. 여덟 바늘을 꿰맸다. 초록 천이 걷히고, 땀과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보자 나는 아이를 꼭 안아주었다. 말없이 견딘 시간들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비용은 오십만 원 남짓이었다. 순간 비싸다는 생각이 스쳤지만, 이마라는 사실 앞에서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잘 꿰맨 것, 그게 전부였다. 병원 아래 카페에서 아이가 좋아하는 쿠키 프라페를 건네자, 아이의 얼굴에 다시 아이다운 웃음이 돌아왔다. 긴장이 풀리자, 사고는 조금씩 뒤로 물러났다.
그날 담임선생님께서 다시 연락을 주셨다. 학교에서 다친 경우 학교공제회 보험이 적용된다는 이야기였다. 이미 신청은 해두었고, 며칠 안에 연락이 오면 보호자가 직접 접수하면 된다고 했다. 치료비의 상당 부분은 보상이 될 거라고 덧붙였다. 아이를 다치게 한 아이가 분명 있는데 학교 보험으로 처리된다는 사실이 처음에는 조금 낯설었다. 하지만 책임을 가르는 일보다, 상황을 더 키우지 않는 선택이 지금으로서는 가장 현실적인 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 무렵, 물병을 던진 아이 어머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성민이는 좀 어떤가요? 정말 죄송합니다.”
고의가 아니었다는 말, 성민이를 좋아하는 친구라는 말에 마음이 조금씩 풀어졌다.
“눈이나 코에 맞았으면 큰일 날 뻔했죠. 그래도 이만해서 다행이에요.”
그 말은 상대를 위한 말이면서, 동시에 나 자신을 진정시키는 말이었다. 괜찮다고, OO이도 많이 놀랐을 테니 마음 잘 달래 주시라며 전화를 마쳤다. 잠시 뒤, 생각지도 못한 과일 선물이 도착했다는 OO 어머님의 카톡 메시지가 왔다. 나는 아이에게 넌지시 물었다.
“OO이 어머님이 과일을 보내셨어. 받을까?”
“안 받았으면 좋겠어요.”
"응 그래."
나 역시 아이와 같은 마음이었다.
"OO이가 성민이한테 꼭 사과하고 싶대."
다음 날 아이가 말했다.
“엄마, 그 친구가 사과했어요.”
“그래서 넌 뭐라고 했어?”
“고의가 아니면 괜찮아, 라고요.”
그 말이, 그렇게 대견할 수가 없었다. 그 한마디가, 아이가 자라고 있다는 증거처럼 느껴졌다.
이주일 동안 아침마다 아이의 머리를 감겨주고, 소독하고, 밴드를 갈았다. 그 과정에서 이마에 뽀뽀를 한 번 더 하게 되었고, 머리를 말려주며 쓸데없는 농담을 하게 되었다. 사고는 지나갔지만, 그 시간 덕분에 아침은 조금 더 느려졌고, 조금 더 다정해졌다. 어떤 일들은 상처로만 남지 않고, 이렇게 조용히 마음을 넓히고 지나간다. 생각해 보면, 이 하루는 누군가의 실수와 누군가의 놀람, 그리고 그 뒤를 잇는 어른들의 선택으로 완성되었다. 화를 낼 수도 있었고, 책임을 따질 수도 있었고, 상처를 오래 붙들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아이의 얼굴을 떠올렸고, 아이가 이 일을 어떻게 기억하게 될지를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조금 더 천천히 말했고, 조금 더 낮은 목소리를 선택했다.
아이에게 남기고 싶었던 것은 상처의 크기가 아니라, 그 이후의 태도였다. 다쳤을 때 세상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누군가의 사과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그리고 ‘괜찮아’라는 말이 언제 가능한 말이 되는지. 그날 아이가 내게 보여준 한마디는, 어쩌면 내가 오래도록 연습해 온 삶의 방향이 틀리지 않았다는 작은 증거처럼 느껴졌다.
상처는 언젠가 옅어진다. 흉터도 시간 앞에서는 결국 자리를 비킨다. 하지만 어떤 순간에 건넨 말과, 그때 선택한 태도는 아이의 안쪽에 오래 남는다. 나는 그날, 아이의 이마보다 마음을 더 조심스럽게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아이를 키운다는 건, 아이보다 먼저 어른이 되는 연습을 반복하는 일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