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에 다시 읽은 『노인과 바다』

가치

by 빛날애

마흔에 이 책을 다시 펼쳤다.

사실은 둘째가 먼저 이 책을 읽고 싶다고 했고, 나에게 물었다.


“이 책은 어떤 책이에요?”


스무 해도 더 전에 읽었던 이야기가 나에게 어떤 얼굴로 남아 있었는지 잠시 생각했다.

“글쎄, 큰 바다에 맞서 싸우는 노인 이야기?”

용기를 주는 책이었을까. 그때의 나는 그렇게 대답했다.


어린 나에게 『노인과 바다』는 크고 넓은 광활한 바다와 큰 고기가 먼저 보였다.
맞서 싸운다는 이미지, 승부의 감각.


이번에 다시 읽었을 때는 노인의 자세가 먼저 보였다.
물살에 닳아버린 손과,
아무에게도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고독한 몸의 각도.


십 대의 나는 결과를 먼저 읽었다.
잡았는지, 졌는지,
승패가 문장의 끝을 장식한다고 믿었다.


마흔의 나는 시간을 읽는다.
버티는 시간, 아무도 보지 않는 자리에서
끝까지 무너지지 않으려는 태도.


노인은 끝내 고기를 온전히 가져오지 못한다.
그러나 바다는 그의 실패를 조롱하지 않는다.
마흔을 지나며 알게 되었다.
삶에는 종종 성과 없이도 견뎌야 하는 날들이 있고,
그날들 또한 존엄의 일부라는 것을.


아이들을 키우며,
사업을 꾸려가며,
하루를 무사히 넘기는 일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애쓴 날들이 있었다.
그런 날들에는 이상하게도
공허가 따라붙기도 했다.


그럼에도 다음 날이 오면
다시 노를 쥐었다.
대단해서가 아니라,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기 때문에.


이 책은 희망을 대단하거나 크게 말하지 않는다.
다만 오늘을 겨우 건너온 사람에게
내일로 갈 이유 하나를 남긴다.
손은 비어 있을지라도
태도만은 놓지 않았다는 조용한 증거.


마흔의 독서와 글쓰기란,
승리를 확인하는 일이 아니라
존엄을 점검하는 일이므로.

오늘도 나는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고,
응원하지 않는 바다로 나아간다.

파도는 여전히 대답이 없고
정답은 끝내 주어지지 않는다.

가끔은 이유 없이
걸음이 느려지는 날도 있고,
잘 해냈다는 말이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 날도 있다.

그래도 그날의 속도를 탓하지 않는다.

멈추지 않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한 날이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몸이 먼저 아는 방향의 노를

느슨하듯, 그러나 놓치지 않게 쥐어본다.
확신이 있어서가 아니라
이쪽이 여전히 삶 쪽이라는 것을
조용히 알고 있어서.

정답은 없지만
오늘을 건너가는 일만으로도
지금은 충분하다.



"인간은 패배하려고 태어나지는 않았지.
인간은 파괴될 수는 있을지언정 패배할 수는 없어."
노인과 바다_헤밍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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