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겨울 저녁
말이 익는 시간을 믿기로 했다.
아이들의 기나긴 겨울방학이 시작되었다. 성장기 한가운데 서 있는 삼 남매의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나는 요즘 하루에도 몇 번씩 주방을 오간다. 오늘의 저녁 메뉴는 파스타. 냉장고에 남아 있던 양파와 버섯을 꺼내 먹기 좋게 썰고, 파스타를 삶을 물을 올렸다. 요리에 유난히 관심이 많은 막내는 오늘도 내 옆을 지켰고 잠들 때까지 꺼질 줄 모르는 막둥이의 오디오는 프라이팬 위에서 익어가는 재료들처럼 분주했다.
그러다 아이가 불쑥 말했다.
“엄마, 그거 아세요? 연예인 OOO가 인성이 안 좋대요.”
칼을 잠시 내려놓고 미소를 머금은 채 아이를 바라봤다. 어디서 들었느냐고 묻자 친구들이 그랬단다. 잘못해서 나락 갔다는 말도 덧붙였다. 나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아이의 말이 입안에서 어떻게 남는지 잠시 가만히 느껴보았다. 덜 익은 과일을 먼저 베어 문 것처럼 단단하고 떫은 말. 삼키고 나면 쓴맛이 남지만, 왜 그런 맛이 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말.
“민아.”
나는 다시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말을 골랐다.
“그런데 말이야. 그 사람이 인성이 나쁜지는 우리는 정확히 알 수 없는 거잖아.
우리가 직접 겪은 일도 아니고, 그 사람이 우리한테 나쁘게 한 적도 없는데?”
아이는 고개를 갸웃했다. 나는 다시 물었다. 네가 누군가에게 나쁘게 한 적이 없는데, 소문만으로 사람들이 모두 너를 욕하면 기분이 어떻겠느냐고. 아이는 잠시 말이 없더니 속상할 것 같다고 했다. 그렇지, 그래서 더 조심해야 한다고 나는 말했다. 설령 정말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이라고 해도, 그 말이 또 다른 누군가의 마음을 더 무겁게 만들 필요는 없지 않으냐고. 학교에서도 마찬가지라고. 누군가의 험담을 들을 때, 그건 네가 직접 겪지 않은 이야기이니 쉽게 동조하지 말라고. 사람에 대한 판단은, 내가 직접 만나고 겪은 만큼만 하는 거라고. 아이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눈을 몇 번 껌뻑이더니, 나지막하게 말했다.
“맞네요, 엄마.”
"근데, 왜 인성이 안 좋대?"
"저도 몰라요. 허허"
아이와 나는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마침 파스타 물이 끓기 시작했고, 주방에 김이 천천히 올랐다. 아이는 다시 장난스러운 말들로 공간을 채웠고, 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저녁을 마무리했다. 그렇게 하루는 평온하게 흘러가는 듯 보였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분명히 알게 되었다. 아이의 입에서 나온 그 말은 아이의 것이기만 한 말이 아니라는 것을. 이미 어른들의 말이었고, 세상의 말이었고, 아이에게 먼저 도착해 버린 평가였다는 것을.
말에도 조리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익을 시간을 건너뛴 말은 결국 누군가의 마음을 덜 익힌 채 건드리게 된다는 걸, 그 생각이 오늘 저녁 식탁 위에 오래도록 머문다. 아이를 키우며 알게 된다. 아이가 바라보는 세상과 그것을 천천히 곱씹어 먹으며 자라나는 아이에게 건네는 말은 조금은 차분해야 하고, 때로는 숨을 고르듯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나의 말 한마디가 아이의 세상을 뿌옇게도 만들고, 때로는 알록달록한 무지개로도 만들어 버릴 수 있기에 나는 자주 한 템포 멈춰 선다. 쉽게 덧붙이지 않고, 바로 판단하지 않고, 말 앞에 작은 쉼표를 하나 더 놓아본다. 진지하고 싶지 않았던, 어쩌면 서툴고 재밌지 않은 나의 말들이 아이에게 천천히 닿아 재미있게 익어 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렇게 서둘러 글로 흔적을 남긴다.
아이의 밥을 차리듯, 판단은 서두르지 않고 말이 익는 시간을 믿기로 했다.
"사막은 아름다워.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디엔가 우물이 숨어 있기 때문이야. 눈으로는 찾을 수 없어. 마음으로 찾아야 해." 어린 왕자 중에서_생텍쥐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