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날, 커피를 두 잔 더 샀을까

다정함도 불편함이 될 수 있는 것

by 빛날애

7년 전,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여름이었다. 첫째와 둘째 하원 버스가 도착할 시간에 맞춰 집을 나섰다. 햇볕은 망설임 없이 살을 태웠고, 가벼운 옷차림에 슬리퍼를 끌고 몇 걸음만 걸어도 땀이 금세 등에 붙었다. 숨이 턱 막히던 그때, 아파트 커뮤니티 카페가 눈에 들어왔다. 입주민을 위해 만들어진 작은 카페, 커피 값이 저렴해 가끔 들르던 곳이었다. 나는 잠시 서 있다가 자연스럽게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사장님~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주세요.”


주문을 하고 서 있는데 문득 하원 버스가 떠올랐다.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얼굴로 아이들을 데려다주는 기사님과 차량 도우미 선생님. 이 더위 속에서 버스를 오르내리며 아이들 손을 하나하나 챙기고 계시겠지, 그런 생각이 스쳤다.


“아, 사장님. 죄송한데요. 한 잔 말고 세 잔 주세요.”


별다른 결심이 있었던 건 아니다. 그저 그 순간, 커피를 더 들 수 있었고, 마음이 닿았을 뿐이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세 잔을 받아 들고 나왔다. 한 잔은 정류장에 도착하기도 전에 거의 비워졌다. 남은 두 잔을 들고 하원 버스 정류장 의자에 앉아 부채질을 하며 기다렸다.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열기가 종아리를 감쌌다.

“어, 민이 엄마. 벌써 와 있었네요?”
“네, 안녕하세요.”
“민이 엄마~ 안녕.”
“네, 안녕하세요.”


아이 친구 엄마들이 하나둘 모였다. 아직은 조심스럽고, 서로 낯선 눈빛이 남아 있던 시절. 그럼에도 이미 같은 시간을 통과하고 있다는 묘한 동질감이 그 자리에 있었다.

곧 버스가 도착했고, 문이 열리자 아이들보다 먼저 차량 도우미 선생님이 내려왔다. 나는 들고 있던 커피 중 두 잔을 자연스럽게 내밀었다.


“선생님, 더운데 고생 많으세요. 제 거 사면서 같이 샀어요.”
“아휴, 어머님. 안 주셔도 되는데, 고맙게 잘 먹겠습니다.”

기사님도 백미러 너머로 눈짓과 미소를 건넸다. 그날의 하원에 대한 내 기억은 거기까지였다. 정말로, 아무 일도 더 일어나지 않았다. 이 장면은 오랫동안 내 기억 속에서 희미했다. 특별할 것도, 굳이 되새길 이유도 없었다. 다시 떠올리게 된 건 바로, 지난주였다. 이제는 친언니라 불러도 조금도 어색하지 않은, 둘째 아이 친구 엄마 둘과 대학로에서 연극을 보고 늦은 밤 파스타를 앞에 두고 앉아 있을 때였다.


“근데 너, 그때 말이야.”
“응? 뭐가?”
“그 엄마, 너 엄청 질투했잖아.”


나는 웃으며 고개를 들었다.


“나를? 왜?”
“네가 차량 선생님 커피 사다 드렸던 날 있잖아. 그날 걔가 그러더라. ‘쟤 왜 저래? 자기 혼자 커피 사 오면 우리는 어쩌라고.’ 선생님들한테 잘 보이려고 혼자 단독 행동한 거 아니냐고.”


그 말을 듣는 순간, 얼굴이 확 뜨거워졌다. 머리를 한 대 맞은 것처럼 멍해졌다. 나는 말없이 컵을 내려다보며 다시 그 여름으로 천천히 돌아갔다.


“그렇게 생각할 수가 있구나.... 언니, 내가 잘못한 거야?”

조심스럽게 물었다.


“잘 보이고 싶었으면 담임 선생님들께 사드렸겠지. 오히려 그 엄마는 쿠키며 빵이며 자주 보냈잖아.”

옆에 있던 또 다른 언니는 짧게 말했다.


“아니야. 그건 질투야.”

언니도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그릇이 커. 그리고 걔는 그릇이 작은 거고.”
“그릇이 크다는 게 무슨 말이야, 언니”

언니는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넌 넓어. 사람을 대하는 마음이. 어른들 대하는 것도 그렇고. 네 나잇대 같지가 않아. 우리가 여섯 살이나 차이 나는데도 말이 통하잖아. 또 옛날 노래도 다 알잖아!”


그러고는 웃으며 덧붙였다.


“도대체 넌 어떤 인생을 산 거니?”

그제야 나도 크게 웃었다.


“이거, 칭찬인 거지?”
“그럼.”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날 여름을 다시 생각했다. 선생님에게 아이를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없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믿고 있었다. 아이를 향한 사랑은, 호의의 크기로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고. 학부모가 되고 나서 나는 마음속으로 정해두었다. 당장의 호의로 마음을 저울질하는 일, 눈앞의 계산으로 관계를 만드는 일, 그런 조삼모사는 하지 않겠다고.


나의 선의가 언제나 따뜻하게 받아들여지지는 않는다는 것, 누군가에게는 다정함이 누군가에게는 불편함이 될 수도 있다는 것. 그 사실은 조금 씁쓸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같은 선택을 할 것 같다. 여유가 있을 때 커피를 한 잔 더 사고, 마음이 닿을 때 조용히 손을 내미는 일. 모두에게 이해받고 싶어 하는 마음은 어쩌면 나의 욕심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나. 그 마음을 알아봐 주는 사람들이 내 곁에 있고, 나를 조금 넓은 그릇으로 바라봐 주는 시선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이 선택을 계속해도 괜찮다고. 그렇게 스스로를 조용히 설득해 본다.


우리는 모두 있는 그래도 존엄합니다.
어떻게 비교하느냐에 따라
달리 인식될 뿐입니다.
법륜 스님_탁 깨달음의 대화 중에서



매거진의 이전글덜 익은 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