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미와 의미의 틈
나는 오늘도 의미와 무의미 사이를 오가며, 결국 인간이라는 이름으로 남는다.
겨울방학이 시작되자 큰아이는 말했다. 이번만큼은 자기 리듬으로 시간을 써보고 싶다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 말의 무게를 가볍게 여기지 않으려 애썼다. 며칠 뒤, 우리는 오랜만에 도서관에 함께 들어섰다.
각자 검색대 앞에 서서 찾고 싶은 책을 고르다 흩어졌다가, 멀리서 눈이 마주치면 손짓과 눈짓만 주고받은 채 다시 제 자리로 돌아간다. 소설이 있는 쪽으로 망설임 없이 걸어가는 아이와, 익숙한 숫자와 문장들이 모여 있는 서가 앞에 멈춰 선 나. 그렇게 우리는 도서관의 끝과 끝에서 각자의 시간을 고르고 있었다.
한참이 지나 아이가 나를 불렀다.
“엄마, 여기요.”
쭈뼛쭈뼛한 몸짓, 어색한 표정. 하지만 그 안에 숨겨진 뿌듯함만큼은 분명했다. 아이가 가리킨 손끝에는 내 책이『내향인 엄마는 어떻게 대표가 되었을까』놓여 있었다. 아이의 입가에 미소가 번지고, 나는 괜히 민망한 척 고개를 돌렸다. 우리는 그 자리에서 사진을 남겼다. 아이는 아마도 그 순간, 자기가 사랑하는 이야기들이 숨 쉬는 이곳 어딘가에 엄마의 문장도 함께 놓여 있다는 사실이 조금은 든든했을 것이다.
오래도록 마음속에만 넣어 두었던 장면. 아이와 함께 도서관에서 내 책을 찾아보는 일. 그 일은 잔잔하게, 그러나 확실하게 이루어졌다.
도서관에 들어설 때부터 풍기는 새 책 냄새가 좋다. 책을 읽는 사람들의 고요한 자세도 좋다. 어지러웠던 내가 잠시 씻겨 내려가는 느낌이 든다. 마치 초록 숲 한가운데에 들어선 것처럼 생각의 숨이 자연스럽게 고른다. 문득, 지리멸렬한 내 머릿속도 이 책들처럼 누군가에 의해 가지런히 정리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엉뚱한 바람이 스친다. 줄 맞춰 선 책들, 누군가 읽고 다시 제자리에 놓였을 책들, 의자 위에 책을 쌓아 두고 오래 머무는 사람들. 이곳에서는 생각마저도 잠시 제 자리를 찾는 것만 같다.
모든 것에 의미를 붙들고 살수록 마음은 오히려 더 바빠진다. 놓치지 않으려는 마음이 자꾸만 나를 앞질러 간다. 반대로 삶은 본래 무의미한 것이라 생각하면 생각은 뜻밖에도 단순해진다. 지금 해야 할 일과 지금은 놓아도 되는 일이 조용히 갈라진다. 밀란 쿤데라의 마지막 저서인 『무의미의 축제』는 그 지점에 오래 서 있다. 삶의 무의미함을 부정하지 않고, 그 안에서 가볍게 살아보라고 말한다. 무의미를 억지로 의미로 만들려는 시도가 삶을 더 무겁게 한다는 사실을, 그는 담담하게 보여준다. 많은 종교와 철학서에 말하듯 모든 것은 헛되다. 존재의 본질은 하찮고, 특별한 뜻을 품고 있지 않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하찮고 의미 없는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아이러니하게도 그 무의미함이야말로 삶을 이루는 가장 솔직한 재료인지도 모른다. 고쳐 쓰려 들지 않고, 설명하려 애쓰지 않을 때 삶은 조금 가벼워지는 걸까.
요즘 나는 머리가 자주 복잡해진다. 아이가 자기 시간 속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마음 한편에서는 괜한 질문들이 고개를 든다. 이 속도가 괜찮은 걸까, 혹시 너무 혼자 가게 두는 건 아닐까.
그럼에도 나는 믿기로 한다. 아이에게는 아이만의 길이 있고, 잠시 혼자 걷는 시간 또한 성장의 일부라는 것을. 나는 앞에서 끌지 않고, 뒤에서 재촉하지 않는다. 불안해질 때마다 한 박자 늦게 숨을 고른다. 아이는 자기 몫의 숲으로 들어가고, 나는 그 숲의 가장자리에서 불을 끄지 않은 채 기다린다. 그림자가 길어질 때 잠시 쉴 수 있는 그늘이 되어 주면 그걸로 충분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므로. 아이와 함께 내 책을 찾은 것만으로도 오늘은 충분하다.
무의미에 닿았다고 생각하면서도 끝내 그것을 이해하려는 나를 보며,
모순 투성인 나라는 존재를 다시 받아들인다.
나는 오늘도 의미와 무의미 사이를 오가며 인간이라는 이름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