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사진을 꺼내어 보다, 글이 쓰고 싶어졌다.
여섯 살의 나는 분명 외향인이었다. 아끼는 인형을 옆구리에 끼고 골목으로 나서면 세상은 온통 나의 무대였다. 동네 언니들에게 인형을 뺏기기도 했지만, 대장은 못 되어도 쫄병 노릇은 톡톡히 해내던 활발한 말괄량이. 낯선 이에게도 스스럼없이 말을 건넬 만큼 세상은 내게 다정한 놀이터였다.
유치원 입학은 내 인생 첫 번째 축제였다. 얼기설기 얽힌 골목길 끝, 언덕 위로 이어진 계단에서 엄마가 가리킨 곳. “빛날 아, 저기가 네가 다닐 고려유치원이야.” 그 말에 세상을 다 얻은 듯 방방 뛰던 장면은 지금도 낡은 필름처럼 선명하다. 이제 막 태어난 동생을 돌보며 집 안 마당에서만 놀던 내가, 대문을 나서 유치원에 간다는 것은 정말 신나는 일이었다.
유치원 시절의 정점은 생일잔치였다. 바쁜 엄마 대신 쪽진 머리에 은비녀를 꽂은 친할머니가 오셨다. 젊은 엄마들 사이에서 고운 한복 차림으로 서 계시던 할머니는 유난히 당당하고 멋졌다. 낡은 사진 속 나는 그런 할머니의 볼에 입을 맞추며 세상을 향해 환하게 웃고 있다.
하지만 변화는 예고 없이 찾아왔다. 느닷없이 선생님의 부름을 받고, 아무런 준비도 못한 채 머리를 갸우뚱하며 찍은 사진 한 장. 그것이 나의 유치원 졸업사진이었다. 일곱 살, 너무 이른 나이에 국민학교라는 거대한 세계로 던져졌다. 어제까지 ‘언니, 오빠’라 부르던 이들과 하루아침에 짝꿍이 되어야 했던 당혹감. 그 어색한 공기 속에서 나의 외향성은 조금씩 숨을 죽였다. 말괄량이 소녀는 어느새 엄마의 품이 그리워 매일 눈물을 찍어내는 ‘울보’가 되어 있었다. 비가 내리는 날이면 혹시나 일하는 엄마가 와 있을까 싶어, 이루어질 수 없는 기대를 품고 빗속의 교문을 두리번거리며 달렸다. 세상을 향해 먼저 말을 걸던 아이는, 이제 세상이 내미는 손길이 두려워 자꾸만 뒤로 숨는 아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지금의 내 성격이라는 외곽선이 뚜렷해졌다. 겉으로는 조용하고 소심한 아이였지만, 나의 내면은 언제나 흔들리는 꽃이었고 자유로운 바람이었다. 사람들은 나를 ‘말 없는 아이’로 보았을지 몰라도, 내 마음의 정원에서는 여전히 수많은 이야기가 꽃피고 있었다.
마흔을 넘긴 지금, 문득 내 안을 들여다본다. 그곳에는 여전히 여섯 살의 내가 살고 있다. 골목길 계단에서 유치원 가방을 메고 방방 뛰던 아이, 세상을 향해 거리낌 없이 웃던 그 명랑한 소녀가 여전히 내 안 어딘가에서 숨 쉬고 있다고 믿는다. 이제 와 다시 여섯 살처럼 살 수는 없겠지만, 나는 이제 ‘명랑한 내향인’이 되고 싶다. 타인에게 나를 과시하지 않아도 내 안의 꽃과 바람을 즐기며 조용히 미소 지을 줄 아는 사람. 마흔 넘어 명랑해지고 싶다는 이 소망이 어쩌면 누군가에겐 바보 같은 고백처럼 들릴지 모르나, 나에게는 내 안의 소녀와 다시 손을 잡으려는 가장 용기 있는 화해일지도 모른다. 빗속을 서성거리던 일곱 살의 나에게 이제야 우산 하나를 건네는 일- 오랫동안 빗소리에 잠겨 있던 마음의 문을 열자, 그 시절 숨겨두었던 꽃과 바람이 비로소, 내 마흔의 생 위로 아스라이 흩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