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 밖의 계절
지난여름, 고시원의 좁은 복도 끝에서 영화 같은 장면이 펼쳐졌다. 한 입실자가 경찰관의 손에 이끌려 나갔다. 그의 손목에는 유난히 차갑게 번뜩이던 은색 수갑이 채워져 있었다. 짧은 소란 끝에 그가 내게 남긴 마지막 말은 투박하고도 간결했다.
"사장님 죄송합니다. 짐은... 잠시만 맡아주세요."
그가 떠난 방은 생각보다 쉽게 지워졌다. 창틀에 쌓인 먼지를 닦아내고 바닥을 쓸어 넘기자, 그가 이곳에서 보냈던 고단한 밤들의 흔적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내 새로운 입실자가 들어왔고, 방은 다시 누군가의 치열한 삶으로 채워졌다. 세상의 계절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무심히 흘러갔고, 나 역시 바쁜 일상 속에서 그의 존재를 잊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체함에 낯선 봉투 하나가 꽂혀 있었다. 보낸 이의 이름을 확인하는 순간, 잊고 있던 지난여름의 기억이 서늘하게 되살아났다. 떨리는 마음으로 봉투를 뜯자 그 안에는 놀라울 만큼 단정하고 아름다운 문체로 쓰인 편지가 들어 있었다.
그는 정중했다. 남겨둔 짐은 모두 버려도 좋으니, 다만 노란색과 검은색 점퍼 두 벌만 다시 보내줄 수 있겠느냐는 조심스러운 부탁이었다. 나는 그 정갈한 글씨체 앞에서 한참을 멈춰 서 있었다. 수갑을 찬 채 끌려가던 그의 뒷모습과, 종이 위에 단정하게 내려앉은 문장들 사이의 거리를 도저히 가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 점퍼 두 벌에는 그가 간절히 되찾고 싶은 생의 어느 평범한 날들이, 다시 건너가고 싶은 눈부신 계절 하나가 빳빳하게 접혀 있었을지도 모른다. 색깔마저 선명한 그 옷들은 차가운 벽 안에서 그가 세상과 연결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이자 다시 돌아와야 할 삶의 이정표였을 것이다.
고시원을 운영해 온 지도 어느덧 4년차. 그동안 나는 스스로를 '객관적인 운영자'라 정의하며 살았다. 늘 옳고 그름을 칼날처럼 가르려 애썼고, 사회가 정해놓은 선 밖으로 밀려난 사람들에게는 쉽게 마음의 곁을 내어주지 않았다. 그것이 이 좁고 치열한 공간에서 내 마음을 지키는 유일한 방패라고 믿었기 때문에.
하지만 이곳은 자꾸만 나의 방패를 무너뜨린다. 죄와 삶은 이성적으로 분리될 수 있을지 몰라도, 한 사람의 인생을 고작 한두 단어로 단정 짓기엔 그 속에 담긴 사연들이 너무도 깊고 무겁다는 것을 깨달아버렸기에. 정이 들면 안 된다고. 타인의 고독에 깊숙이 발을 담그면 결국 내가 힘들어질 뿐이라고 스스로 마음의 빗장을 걸어 잠그지만, 나는 오늘도 속수무책으로 흔들린다.
먼지를 털어내고 점퍼를 상자에 담으며 생각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겨울을 지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그가 다시 건너올 계절을 위해, 그가 부탁한 온기를 정성껏 포장해 보내는 것뿐이다. 나는 오늘도 그들이 남기고 간 서늘한 온기에 기꺼이 손을 데며, 사람이라는 미지의 문장을 다시 읽어 내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