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세상에는 먹어서 배부른 음식이 있고, 바라만 봐도 마음이 배부른 음식이 있다.
성인 둘에 아이 셋, 우리 집은 다섯 식구다.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치킨 한 마리는 눈 깜짝할 새 사라져야 할 간식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우리 집 식탁 위 치킨 한 마리는 늘 ‘완판’에 실패한다. 초등학교 6학년 막내아들은 친구에게 "우리 집은 한 마리도 남는다"라고 했다가 거짓말쟁이 취급을 받았다며 억울해한다.
가만히 이유를 짚어보니 두 가지 원인이 나왔다. 하나는 치킨을 ‘야식’이 아닌 ‘반찬’으로 대하는 밥 중심의 식문화요, 다른 하나는 서로의 입에 맛있는 것을 넣어주느라 바쁜 우리 가족 특유의 ‘입 짧은 배려’다.
특히 우리 집에는 철칙 같은 공식이 하나 있다. “닭다리 하나는 무조건 엄마 것.”
엄마는 괜찮다고, 너희들 먹으라고 손사래를 쳐도 소용없다. 잠시 물을 떠 오거나 주방을 갈무리하고 돌아오면, 내 밥그릇 위에는 어김없이 통통한 닭다리 하나가 배달되어 있다. 나는 피식 웃으며 슬그머니 남편의 그릇으로 옮겨 놓는다. 그러면 남편은 "에이, 여보 건데 왜!"라며 다시 내 그릇으로 골인시킨다. 닭다리 하나를 두고 벌어지는 이 눈물겨운 핑퐁 게임.
남편은 늘 아이들에게 강조한다. “무조건 가장 좋은 음식은 엄마 입에 먼저 넣어드려야 해.”
아이들은 그 말에 토를 달지 않는다.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엄마, 아~ 하세요!" 하고 달려온다. 매일 반복되는 풍경인데도 그 작고 따뜻한 손길이 내 입술에 닿을 때면 가슴 한구석이 뭉클해진다.
사랑의 언어를 행동으로 번역한다면 아마 이런 모습이 아닐까. 사랑이란 어쩌면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
거창한 말 대신, 서툰 손짓 하나로 번역되는 마음. 나는 이런 투박한 사랑이 좋다. 오늘은 닭다리 하나를 뜯다 말고 노트북 앞에 앉았다. 마음을 채운 장면들을 잊어버리기 전에 적어 두고 싶어서.
엄마를 생각하며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온 소설책 한 권.
현관문을 열자마자 "엄마마마!" 부르며 품으로 뛰어드는 온기.
내 품에 코를 묻고 "엄마 냄새 좋다"며 킁킁대는 강아지 같은 숨결.
그리고 마지막까지 내 밥그릇을 지키고 있던 닭다리 하나.
나는 오늘 세상에서 가장 소박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행복을 만끽하는 중이다. 닭다리 하나에 담긴 사랑의 무게가 이토록 다정하고 묵직해서, 비워지지 않은 치킨 상자 위로 이름 모를 문장들이 눈물처럼, 혹은 웃음처럼 자꾸만 고인다. 세상에는 배를 채우는 음식이 있고, 마음을 채우는 음식이 있다. 우리 집 치킨은 늘 후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