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예쁜이 나왔어. 여보가 좋아하는 옥수수 사 왔어!”
남편은 여전히 나를 예쁜이라고 부른다. 이름보다 먼저 도착하는 호칭은 가끔 나를 나 자신보다 앞에 세워 놓는다. 아이들은 이제 그 말에 반응하지 않는다. “엄마, 얼른 나오세요. 엄마가 먼저 드셔야 먹죠.” 언제부터인가 우리 집에는 설명할 필요 없는 순서가 생겼다. 나는 그것을 오래 반복된 배려의 형태라고 생각한다. 말보다 몸이 먼저 기억하는 태도 같은 것.
손이 찬 나는 예고 없이 남편의 등에 손을 넣는다. 남편은 놀라거나 차갑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대신 내 손을 잡아 호호 불어준다. 발이 잘 붓는 나는 남편의 무릎 위에 다리를 올린다. 남편은 아무 말 없이 발을 주물러 준다. 고맙다는 말이 쑥스럽다. 이제는 굳이 고마움을 말로 확인하지 않아도, 서로의 감정을 알아차릴 수 있다고 믿고 싶다.
나도 남편을 사랑하지만, 유독 남편은 나를 꽤 많이 사랑한다. 혹시 바람을 피우면 어쩔 거냐는 질문에 그는 웃지 않는다. 농담으로 넘기기엔 지나치게 무서운 진지한 말을 하고, 내가 죽으면 자기도 같이 따라가겠다고 말한다. 아이들보다 내가 더 보고 싶다는 말도 아무렇지 않게 한다. 주변에서는 그를 사랑꾼이라고 부른다. 나는 그 말이 맞다고 생각하면서도, 사랑은 대체로 그렇게 요란한 이름 없이 존재한다고 느낀다.
나는 애교가 없지만 남편은 애교가 많다. 그는 매일 춤을 추며 현관으로 들어온다. 볼록한 배를 꿀렁이며 추는 춤은 여전히 어설프고, 여전히 웃기다. 나는 고개를 젓다가 결국 웃는다. 그 웃음이 사라지기 전에 다음 날이 오고, 우리는 다시 같은 자리에 선다. 만난 지 스물다섯 해, 결혼 16년 차. 함께 있으면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이 늘어났고, 나의 어두운 마음을 굳이 밝히지 않아도 괜찮아졌다. 우리의 사랑은 대체로 조용하고 편안하다. 그래서인지 나는 이 당연한 사랑을 종종 잊는다.
오늘은 남편의 뒷모습이 유난히 눈에 들어온다. 가엾다. 축 처진 어깨 위에 하루가 그대로 얹혀 있는 것 같았다. 늘 가볍게 웃던 사람의 어깨가 조금 무거워 보였다. 내 마음이 자주 가라앉던 시기가 있었다. 이유를 정확히 말할 수 없는 우울과 무기력이 몸보다 마음에 먼저 내려앉던 때. 그 무렵, 나는 문득 남편에게 말했다.
“여보, 미안해.”
남편은 물었다.
“뭐가 미안해?”
“나랑 사는 게, 요즘 쉽지 않을 것 같아서.”
그 말이 진심이었는지, 나 스스로를 먼저 밀어내려는 자조적인 습관이었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남편은 잠시도 고민하지 않고 말했다.
“여보랑 결혼한 나는 행운아인데 무슨 소리야. 괜찮아질 거야. 내가 있잖아.”
그 말에는 해결책도, 위로의 기술도 없었다. 다만 그 자리에 있겠다는 태도만 있었다. 그날 나는 조금 따뜻해졌다.
서로가 필요할 때 손을 뻗으면 닿는 사람, 집으로 오는 길이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 혼자 욱했다가 혼자 가라앉아 먼저 미안하다고 손 내미는 사람, 연민이 많은 내가 가장 큰 연민을 느끼는 사람, 말도 안 되는 말장난을 툭 하고 건네면 톡 하고 받아주는 사람, 때로는 대범하게 내가 나 자신에게 하지 못한 말을 대신 건네는 사람. 끓지도 식지도 않은 사랑, 차가운 손을 말없이 주머니에 넣어주는, 아무 일 없어도 하루를 무사히 건너게 해주는 마음.
중년의 사랑은 아마 이런 모습일 것이다. 불이 활활 타오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쉽게 꺼지지도 않는 상태.
바람이 불면 서로의 쪽으로 몸을 조금 기울이는 일. 나는 요즘 사랑을 믿기보다 함께 남아 있는 시간을 믿는다. 설명이 줄어든 자리에서,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지금, 그런 사랑을 하고 있다.
나보다,
당신이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